한미 FTA- ‘생명의 가치’를 대신할 최상의 협상은 없다

2006.10.27 | 미분류

9월 5일, 한미 FTA 웬디 커틀러 미수석대표는 “미국 입장에서는 의약품, 자동차, 농산물, 위생.검역 분야가 주요한 도전 과제”라고 발언했다. 위생검역이 미국의 관심분야라는 뜻인데, 미 무역대표부가 의회에 전달한 협상개시 통보서한을 보면 미국은 한국의 위생검역을 ‘부당한 규제 조처’로 보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FTA협상을 통해 한국의 위생검역 관련 법률과 행정에 대해 대폭적인 간소화 내지는 기준 완화를 요구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조시 부시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2006년 무역장벽 보고서’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승인하지 않은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농ㆍ수ㆍ축산식품의 수입 통관 절차 간소화, 최대 농약잔류량제한 검사 완화, 미국 식품의약청에 의해 안전하다는 합격증(GRAS, Generally Recognized as Safe)을 받은 제품에 대한 한국의 별도 인증절차 적용 제외, 유전자 조작식품 라벨링 요건완화, 기능성 건강보조식품 규제완화, 미국유기농프로그램(NOP, National Organic Program) 인증 부착 조기 시행 등을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GRAS 기준을 통과한 식품에 대해 한국이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같은 식품이라 하더라도 각 나라의 기준은 다르다. 미국에서는 수확 후 저장 목적으로 살균, 살충 등의 일반 농약의 사용(소위 Post-Harvest)을 인정하고 있으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축산물에 성장촉진 및 질병예방, 치료용의 광범위한 항생물질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식 표준을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각국의 식품안전 정책에 대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올해 1월 미국과 엘살바도르는 미-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발효를 앞두고 SPS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미 농무부가 자체 승인한 도축장에서 선적한 모든 육류와 가금류에 대해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 별도의 검역 없이 바로 수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엘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CAFTA어디에도 미국의 검역시스템을 승인한다는 서명은 없으며, 불평등하게도 미국은 중앙아메리카로부터의 모든 육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며, 각국 고유의 검역절차 고수를 주장했다.

무역장벽보고서는 ‘한국의 유전자조작 라벨링이 미국의 유전자조작 식품 수입에 걸림돌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최대의 GMO생산국이자 수출국이며,  ‘GMO농산물의 위험성이 어디에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며 우호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2005년 말 미국에서 재배된 콩, 옥수수, 목화의 87%, 52%, 79%가 유전자변형작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미국은 3차 SPS협상에서 동물검역 및 생명공학 분야의 전문기술가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우리정부의 전략은 무엇인가? 현재 양국은 WTO의 SPS 협정 준수에 합의했으며, 남아있는 최대 쟁점은 상설위원회 설치여부이다. 한국은 SPS 분쟁이 발생했을 때 문제해결 주체를 접촉선(contact point)정도로 미국은 상설위원회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상설위원회를 통해 SPS에 대한 실행력을 높이고 SPS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다루길 원한다. 한국의 검역빗장을 풀고 문턱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정부의 목표는 최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막는데 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협의채널에 대한 서면 질의에 대해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서 구체적 SPS 사안을 논의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FTA 협정에서 SPS 조치에 관한 협정문은 일종의 국가간의 협정을 담은 법률문서이기 때문에 문서화될 내용은 간단하다. 그러나 SPS조항이 현실에서 적용되는 것은 간단치가 않을 것이다. 한미FTA의 SPS협정은 WTO SPS협정보다 더한 규제완화를 요구할 것이다. 국내에 비해 오염물질의 허용치가 높거나 국내에서는 허용치가 설정되지 않은 미국산 식품들이 국제 규격임을 내세워 마구 들어올 경우 이를 저지하기가 어렵다.

WTO에서도 SPS에 관한한 한국은 미국의 먹잇감이었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WTO ‘SPS협정’체결 이후 한국은 미국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소비자의 건강보호수준이 낮아진 대표적인 사례로 분석했다. 미국의 문제제기를 통해 식품관련 규정이 바뀐 사례는 ․수입식품 유통기한 30일에서 90일로 연장 ․농산물검역체계 선통관 후 검역체계로 전환․수입냉장쇠고기의 유통기간을 1996년 7월 1일부터 30일에서 90일로 연장(일본은 45일) 등이다. 이처럼 미국이 SPS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한국정부는 제소를 피하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한국이 수입식품검사제도를 개정해 매년 196종의 농약잔류허용치 검사를 실시하자, 미국은 한국의 이러한 개정조치는 SPS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한국은 검사대상 농약수를 196가지에서 47가지로 축소하였다. 이렇게 한국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야금야금 검역기준을 완화해 온 것을 국민들이 알 리가 없다.

또 하나의 협상쟁점은 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이다. WTO SPS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할 국제법상 권리가 있다. 2003년 12월 미국 워싱턴 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2006년 3월 6일 한국 정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상의 쇠고기 수입금지 대상지역에서 미국을 제외시켜 주는 조치를 취했다. 생후 30개월 미만인 쇠고기 중 뼈를 제외한 부분에 한해 수입을 재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3월 미국 앨러배마에서 3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소비자단체들의 안정성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농림부는 9월 8일 최종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방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달 미 농무부는 공문을 통해 뼛조각, 연골, 척추돌기와 같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 검역 과정에서 발견되더라도 수입을 승인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양보가 어디까지 갈지 지켜볼 일이다.

한미FTA 협상개시 선언이후 미 재계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도 식품업계의 반응은 유난했다. 심지어 돈 불, 미돈육생산자위원회장은 “하루 육류단백질 섭취량의 44%를 돼지고기에 의존하는 한국 시장 진출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식품에 대한 미국 의존도는 높다. 2003년 가공식료품 전체 수입의 44%가 미국산이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7%수준이고, 쌀을 제외하면 3~5%에 불과하다. 수입식품이 식탁의 절반 이상을 뒤덮고 있다.

식품 수입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입식품에 대한 검역을 까다롭게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식품 수입국은 ‘예방의 원칙’과 ‘생산자 안전성 입증의 원칙’을 내세우게 된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검역에 대한 기술, 인력, 시설, 체계가 모두 열악하다. 2003년 농림부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식물검역 인원은 2001년 304명으로 1993년에 비해 140명이 증가하였으나 1인당 검역건수는 2.8배(433건에서 1882건) 증가했다. 우리나라 식물검역원의 업무가 일본보다 28%나 많다.

한국정부는 한미FTA로 인해 소비자의 식품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지고 값이 싸진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식품에 있어서는 선택권보다 기본적인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다. 소비자와 환경단체들이 정부의 SPS협상을 보면서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체결이 국민들에 생활과 건강에 미칠 세부영향을 연구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협상의 방향을 설정하는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

협상 이전에 ‘식품안전’에 대한 국가 정책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너무 때늦은 일인가? 과연 우리 자신들의 건강과 미래세대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식품에 대한 접근권이 한미FTA의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는가도 되짚어봐야 한다. ‘생명의 가치’를 포기한 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협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글 :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 이글은 뉴스한국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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