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이 특별히 잘못된 법이 되지 않아야…

2007.05.28 | 미분류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이는 요순 시대에 불렸다는 격앙가이다. 왕이 있어도 왕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시대를 태평성대라고 한다. 오늘날 신문 지면을 가득 덮고 있는 정치 기사와 사람들의 정치에 관한 높은 관심을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격양가를 부를 수 있는 요순시대가 아님은 분명하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독배를 들었다. 소크라테스의 이 유언을 우리는 열 살이 될 즈음에 배우고 어릴 때부터 법의 절대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과 외경심을 습득하게 된다 악법도 법이라는 사실을 반증할 수 없는 명제처럼 우리는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법이 과연 우리의 존경을 받을 가치와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로마의 법학자이며 정치가인 키케로는 (Cicero, 106-43, BC) 국가에 의해 효력이 부여된 악법이 법이라고 불리워질 가치가 없는 것은 도둑떼가 회동하여 통과시킨 규칙이 그렇게 불리워질 가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하였다. 각국의 관습이나 법에 있는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것을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보았던 키케로의 이런 믿음은 입법부에서 통과된 법률 그리고 계류 중인 법안에 대하여 시민들의 모니터링이 20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필요함을 알려준다. 3시간 30여분동안 이루어진 토론회 “특별법 난립을 통해 본 특별개발정책에 대한 진단”은 키케로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5월 23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 귀빈 식당 3층에서 김규복 녹색연합 공동대표의 “특별법이 특별히 잘못된 법일 수도 있다”라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특별법 난립을 통해 본 ‘특별개발정책에 대한 진단’이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우원식 국회의원과 녹색연합의 주관으로 개최된 이 토론회는 동국대학교 산림자원학과의 오충현 교수를 좌장으로 박서진 법무법인 정민 변호사,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을 발제자로 , 이순태 한국 법제연구원 연구위원, 정연경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사무국장, 곽현 우원식 국회의원 보좌관, 임항 국민일보 환경전문기자,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이 지정토론자로 참석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서진 변호사는 지역 개발과 관련된 특별법을 ‘개발 특별법’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개발 특별법’은 소외되었던 지역개발의 욕구 분출과 참여 정부의 개발 정책이 결과라고 진단하였다. 박변호사는 개발 특별법을 ‘지역 개발 정책의 추진 수단으로 제정된 특별법’과 ‘특정 지역 개발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으로 분류하면서 이 개발 특별법들은 중첩적인 입법이며 이러한 중첩적 입법은 더욱 강화된 정부 지원과 특례를 규정하는 특별법을 불러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박변호사는 연안권 개발 특별법 (안) 에 대해서 국토의 40%를 규율하는 법을 ‘특별법’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희극적인 상황이며, 비연안권 즉 내륙지역의 주민들이 ‘왜 우리만 제외하느냐’라면 다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전국토가 특별법 아래에 규율될 것이며 더 이상 특별법을 특별법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라고 현재의 특별법 난립 상황을 꼬집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진섭 생태지평 연구소 부소장은 특별법이 ‘낙후된 지역 발전’, ‘국가 균형 발전’, ‘국제 관광 도시’등의 화려한 수식어로 대단한 목적과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발의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 완화’와 ‘국고의 원활한 사용’이 목적이라며 발제를 시작하였다.

박진섭 부소장에 의하면, 각종 개발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 소요 추정액은 남해안 개발의 경우, 41조원, 동해안 8조원, 서남해안 36조원 새만금 개발 20조원이며, 지방 자치단체들은 이러한 예산의 대부분을 민자유치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기반 시설 비용부담에 대해서는 국고지원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특별법안에 규정되어 있어서 남해안 개발의 경우 전체 사업비 41조원 중 30조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박진섭 부소장은 이러한 특별법 대상 지역, 특히 기업도시 시범사업 지역의 경우, 지가의 상승이 평균치 보다 3배이상의 변동했고, 무주의 경우 지가 상승률이 전국 평균의 7배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특별법의 문제점 지적에 이어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지역 스스로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의 문화를 살릴 수 있는 발전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지역 개발이 외부의 투기 자본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지역발전이 그 문화와 특성을 잃고 획일적인 대도시형 모델을 따르고 있어 지역 공동체 붕괴까지 불러오고 있다며, 지역주민들에 의하여 자연유산 등재를 이루어낸 시레토코 지역의 사례를 들며, 생태적이고 지역 주체의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를 이에 대하여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최처장은 21세기가 환경의 세기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녹색의 가치가 논해지고 있는데로 한국 정부는 아직도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토기본법과 국토종합계획을 녹색국가의 모델에 맞게 수정,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지정토론자들의 개발 특별법에 대한 비판 또한 매서웠다. 이순태 박사(한국법제연구원)은 특별법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며 적법절차의 원리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규제를 통해 지켜져야하는 공익들이 특별법에 의하여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경 환경소송센터 사무국장은 특별법은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환경정책에 반하며 특별법의 성립 조건과 대상들을 제안하는 ‘특별법 제안법’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내 놓았다.

지역의 의견을 제시한 이상석 순천 참여자치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과연 누가 이러한 특별법을 막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개발 특별법에 대하여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의 현황을 비판하였다. 이상석 국장은 특별법을 중앙의 건설세력과 광역시의 이중주라고 하면서, 개발 특별법의 논의 주체에서 지역 주민들은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며, 수요 창출에 급급한 광역시를 비난했다.

국민일보의 임항 환경전문기자는 개발특별법이 발호하는 것은 지역에 친 개발 특별법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여론을 개발세력과 국회의원이 이용하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이어서 임기자는 균형발전에는 동의하지만,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인프라 구축으로 농어촌 직불 보조금을 제안하였다.

곽현 보좌관은 입법부의 시각에서 토론에 참가하였다. 곽 보좌관은 개발 압력으로 우리 사회가 자유롭지 못하며, 국회 내의 생태적 합의의 수준이 높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친환경적 결단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지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지정토론자로 나선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우리가 아직 군부 독재 개발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정부의 개발 드라이브가 지역의 욕구를 수면위로 나타나게 했으며 개발특별법이 주는 특혜는 오랜 시간 동안 시민사회에서 어렵게 이루어 놓은 환경 영향 평가, 사전 환경성 검토 등의 성과를 무효화하고 있다며 이미 만들어진 각종 개발특별법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직접 검증에 나서야 하며, 개발 특별법 입안자 들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무엇이든 필요하면 법을 만드는 법률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이제는 제대로 된 법을 중심으로 법도 수요관리가 필요하다고 끝맺었다.

특별법이 가지고 있는 이런 문제점을 살펴볼 때, 우리가 격앙가를 부르면서 편히 살 수 있는 요순시대에 있지 않음을 자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실 수 있을 만큼,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과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님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입안자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제대로 된 법을 만들 것을 노래해야 하고, 만들어지는 법 하나 하나를 도둑떼가 회동하여 통과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요순과 소크라테스의 시대는 갔다. 키케로의 시대가 온 것이다.

■ 글 : 녹색연합 정책실 모영동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