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보도자료]당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준다는데 왜 막는 것인가!

2003.03.25 | 미분류

2003년 3월 25일 오전 11시. 녹색연합 활동가 12명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이 국회에 모였다.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표결에 부칠 임시국회를 방청하기 위해서다. 방청이란 국회의 회의 공개 원칙에 따라 본회의에서 국회의원의 국정심의과정을 일반국민에게 직접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 ‘파병동의안’ 반대 집회] 참가기
당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주겠다는데 왜 막는 것인가!”



방청권은 12세 이상의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다. 허나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들은 국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방청권을 들고 입장을 기다리는 우리 앞에서 셔터는 내려졌고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방청권을 손에 들고 한 시민이 물었다. “저 문 안에 계신 분들이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몇 번이나 확인해주셨습니다. 방청권 가지고 오면 방청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방청권을 가지고 왔는데 왜 들어갈 수 없습니까?” 계속된 시민들의 질문에도 그는 안에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빙글빙글 입가를 떠나지 않던 그 성의 없는 웃음이라니.

국회 민원실 앞에 모여있던 이들은 이어 “국회 방청 허용하라”, “파병 동의안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민주정치의 핵심기관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80% 이상이 이라크전 파병을 반대하는 상황 속에 국회는 25일 파병안 결의를 위한 표결에 부치려 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국회의 주인은 아니다. 그들은 국민의 대표로 세워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을 그대로 담아내야 할 터다. 그들이 애써 외면하려 하기에 우리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려 했을 뿐인데 그들은 이들의 접근마저 우리가 쥐어준 권한으로 거부했다. 시간은 2시 30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도 대지 않은 채, 우리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무리를 지어있던 시민들이 의사당 진입을 시도했으나 달려든 경찰들에 의해 무참히 저지당했다. 완력으로 밀어내는 그들에게 한 활동가가 소리쳤다. “부시가 무서워 대통령이 노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야기해주겠다. ‘국익’ 앞에서 당신들이 자신의 소신을 말하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대신 반대를 외쳐주겠다. 그 누구도 당신들을 대표로 세우며 당신들의 신념과 도덕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주겠다는데 왜 그것조차 막는 것인가!”



차량으로 연행되는 동안, “우리를 무슨 근거로 연행하는가?”에 대해 단 한마디도 답변하지 못했다. 상부의 명령이라는 말 혹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을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한 쪽에서는 토론문화를 일으키자고,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목소리 높여 떠들고 있는데 일선에서는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3시40분부터 1시간 가까이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비롯한 12명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감금돼 있었다. (다른 차량에도 다수의 활동가가 붙잡혀 있었으나 정확한 숫자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국회 100m 이내에서 시위를 하는 건 불법입니다.” 차량에 오른 한재필 경사가 말한다. “시위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히 국회 방청하러 갔을 뿐이다. 방청권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일방적으로 입장을 막은 것은 그 쪽이다. 분명히 출구가 셔터로 막혀 있었다. 그쪽에서 먼저 룰을 어기지 않았는가” 이에 돌아오는 한 경사의 답변이 걸작이다. 똑같이 방청을 하더라도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안 된단다. 목적이 다르다니? 우리의 목적을 그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머리 속을 검열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오늘 국회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따라서 회의 진행을 방해한 적도 없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 혹시 우리가 피울지도 모를 소동을 막기 위해서라 말할 텐가?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다. 예방 전쟁을 치르고 있는 조지 부시를 우리나라 공권력이 닮아가는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내달 2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연설 이후로 표결을 연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청량리 경찰서로 향하던 차량은 우리를 길거리에 내려놓았다. 국익을 핑계로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이들을 다음 총선에서 응징하겠다는 시민들의 압박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여아 각 당의 국회의원들은 명심하길 바란다. 그들은 국민 전체의 대표로서 국회의 의사형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국회의 의사를 형성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고 오만이다. 앞으로도 우리 시민사회는 이를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글 : 이정아 (작은것이 아름답다 글메김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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