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 정말 헷갈리나

2004.02.06 | 미분류

시민단체들의 낙천명단 발표가 연일 이어졌다. 4일에는 총선환경연대와 총선여성연대가 5일에는 총선연대의 발표가 있었다. 총선환경연대는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 핵폐기장 같은 국가환경 현안과 관련, 친환경적인 정책과 법안을 반대한 전·현직 의원 6명의 이름이 담긴 ‘반환경 정치인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공개했고, 총선여성연대도 양성평등관련 법안 및 정책 찬반여부, 여성 비하적 발언여부, 가부장적 여성상 강화 발언여부 등을 분석해 ‘공천 부적격 반(反)여성 후보’로 현역의원 8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총선연대는 낙천 대상자 선정에 있어 부패·비리행위, 헌정파괴·반인권 전력, 경선불복 및 반복적 철새정치 행태, 당선무효형 이상의 선거법 위반행위를 우선 기준으로 적용했다.

각 시민단체들의 명단발표와 선정 기준이 공개되자 낙천 대상자인 의원들과 언론들은 낙천발표가 다양하게 쏟아지다보니 유권자들이 ‘헷갈려’한다고 보도하고 나섰다.
총선환경연대 낙천명단 발표가 있었던 4일 당일 석간인 <문화일보>는 <막오른 낙선운동... 유권자 "헷갈려">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였으며, 5일에는 조선일보는  <낙선운동 봇물 '리스트' 남발>, 중앙일보는 <명단 봇물… 유권자 "헷갈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낙선-낙천명단 봇물 …유권자들 󰡒헷갈려요󰡓>라는 기사를 내 보냈다. 6일에는 서울신문은 <당·낙선 유권자 헷갈린다.>, 경향신문은 <낙천운동 객관성 유지돼야>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명단 발표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목을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언론들은 시민단체들이 낙천 명단 발표가 유권자들을 판단을 헷갈리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보도 일색이다.

2000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자의적 판단으로 ‘마녀사냥식’ 정치심판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에 비해서는 훨씬 유화적이고 세련된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시민단체들의 선정 근거가 공정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을 잇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유권자의 입장은 ‘그럴 것 같다’는 식의 짐작형 보도로 변한 정도이다.  

언론이 우려한 대로 유권자들이 헷갈릴지 의문이다.
총선환경연대, 총선연대, 총선여성연대가 각기 다르게 발표한 명단에는 지역구가 중복되는 명단이 없다. 한 선거구에 낙천 명단이 2명 이상인 지역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낙천 명단이 포함된 선거구에는 1명의 낙천명단만 있어, ‘이 후보는 안된다’는 유권자들의 판단은 오히려 명확할 수 있다. 특히 총선연대와 총선여성연대 낙천명단 중 중복 대상자는 5인, 총선환경연대와는 2인이 있어, 오히려 해당 대상자는 낙천의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을 뿐이다.

총선 투표는 유권자들의 지역에 출마한 후보만를 대상으로 판단한다. 지역구에 낙천대상 후보가 있다면 판단하기 더욱 쉬울 것이다. 후보자가 국가정책 및 사회현안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낙천명단 공개는 투표 행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언론이 사실과 다르게 유권자 판단을 근거로 공정성 문제를 삼는 것은 시민단체의 유권자운동을 흠집 내려는 속내를 드러내 것 같아 씁쓸하다.

유권자들은 선거와 투표행위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참여와 후보자에 대한 가치판단을 동시에 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이다. 하나의 기준으로 사회 전체가 평가된다면 그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숙이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이 사회 전반에서 함께 논의되고, 토론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본다면 다양한 가치 제시가 문제라기보다 다양한 가치 논의를 막는 전체주의적 발상을 경계해야 한다.

선거가 정책 선거, 정책대결로 되기 위해서는 각 후보자들의 정책적 입장이 무엇인지 공개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환경문제의 경우, 잘못된 개발입법 추진과 대규모 환경파괴가 불가피한 국책사업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공개하는 일은 미래와 환경을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꼭 필요한 일이다.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이 한창일 때 2004년에 일어날 일을 예언이라도 한 듯 중앙일보는 2000년 1월 15일자 사설<낙선운동의 적정수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합지졸의 ‘떼거리 연대’ 가 아니라 정통성 있는 시민단체의 원래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 차별성을 갖는 게 긴요하다… 여러 단체가 한꺼번에 모여드니 기준이 너무 다양하다는 것도 문제다. (총선)시민연대가 내놓은 ‘반환경’ ‘반여성’ ‘반교육’ ‘반인권’ ‘반개혁’ 등의 기준 중에서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둬야 하는지 시민단체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설립 취지에 맞게 환경단체는 ‘반환경 정치인’을, 여성단체는 여권운동에 이해가 없는 의원들을 낙선 대상으로 삼는 게 옳다고 본다…”
이 사설은 부문단체들이 정치인들의 ‘정책 견해’에 대해 서로 다른, 차별성 있는 낙선운동이 필요하다며 󰡐따로 똑같이󰡑운동의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즉 단체의 특성과 해당분야에 따라 다양한 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분야별 명단발표가 오히려 유권자들을 “헷갈려”한다고 교묘하게 몰아세우고 있는 꼴이다.

글 : 총선환경연대 홍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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