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대화마당> 취재기

2003.02.12 | 미분류

한동안 언론에서 멀어졌던 새만금 논의가 다시 표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말 명지대 김석철 교수가 “갯벌도 살고, 정책도 사는” 새만금의 대안으로 해양도시론을 제안하였다. 시민방송 R-TV에서 ‘새만금 대안은 있다’라는 10부작 연작물을 선보였고, 지역에선 해양도시론을 전면 반박하는 글들이 쏟아지면서 2003년을 맞았다.



새만금 유랑단이 지역주민과 함께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보름간의 일정으로 짱둥어의 목소리로 걸었다. 대통령인수위원회의 환경마인드는 아직도 일천한 수준으로 노 당선자의 취임이 임박하고 있다. 이러한 차기정부 인수 교체의 틈을 타, 농업기반공사는 죽어가는 새만금의 남은 4km 숨통까지 막으려하고 있다.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새만금 사안에 대한 현실 인식으로, 지난 7일 원주 토지 문화관에서 열린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대화마당>은 ‘이번이 새만금사업을 저지할 마지막 기회’로서 발동된 기운을 집결하고자 마련된 장이었다.

다시 새만금 갯벌이다!!!
“사소한 것에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기도와 내면의 폭파만이 새만금의 대안이다.”
새만금을 대신할 대안은 없다.
새만금의 마지막 숨통 4km를 틀어막지 마라.
새만금간척 중단만이 살길이다!

이날처럼 시민단체, 언론계, 국회의원, 예술계, 종교계, 학계, 각계 주요 인사들이 거의 다 모이기 힘들고, 몸만이 아니라 마음과 열의도 이렇게 모이기 힘들다는 인상이 강한 자리였다. 그만큼 새만금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다. 날을 넘겨서라도 뭔가 새만금을 위한 근본적이고도 결정적인 행동 대안을 만들어내야만 하겠다는 의지 하나가 100여명의 참석자들을 묶어내고 있었다. 이날 논의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해 당초 계획된 6시까지의 일정을 넘어 자정까지 이어졌다. 일몰까지는 새만금간척의 부당함을 재확인하고 이에 대응할 태도와 방법들에 대한 지혜가 오갔고, 일몰후 각 분과별로 구체적인 행동안을 모았다. 다음날 8일 오전 결의문이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한 원주 선언 2003의 이름으로 선언되었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참가자들의 지혜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자.



박경리 소설가
“사소한 것에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정치지도자들의 한 표에 흔들리는 거지근성, 환경적 무지를 질타했다. 바로 새만금이 그들의 정치놀음으로 탄생한 비(非)적소의 사생아가 아니던가. 왜 그들은 토지의 생산성, 심미적 가치를 간과하는가? 왜 국민의 창조적 힘을 시궁창 정치세력화에 말아먹는가? 왜 그들은 결코 생명과 호흡으로 살아 숨쉬는 자연과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가?”



신형록 새만금사업을반대하는부안사람들 대표
“계화도에서 재작년까지 잡히던 모시조개, 맛이 작년에는 거의 절멸하다. 지역주민은 자포자기 절망에 빠져들고 있다. 오히려 갯벌에게 화풀이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생태, 경제, 가정은 하나다. 나의 호흡을 아들에게 맞추려 노력한다.” “주민의 삶이 건강해야 갯벌이 살 수 있다.”

김정욱 서울대 교수
“새만금 개발의 중단과 장미빛 청사진의 허구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새만금간척중단은 불가능하다. 전북도민의 의식전환이 우선 필요하다.”

제종길 한국해양연구소 연구원
“농지를 목적으로 한 간척을 제고해야 한다. 간척지의 쌀 농사는 농업기반공사의 홍보와는 달리 농약 사용이 증가할 것이며, 따라서 쌀값은 하락할 것이다. 농지확보 위한 간척을 주업무로 탄생한 농업기반공사의 설립목적의 타당성을 의심한다.”

박병상 풀꽃세상 대표
“인간중심이 아닌 생태중심적 사고가 필요하다. 정부의 새만금 합의 과정은 미래세대와 생명체를 고려하지 않았다. 새만금 대안의 기준은 후손과 생명에 대한 배려이다.”



임옥상 화가
“전국단위의 문화운동이 제기될 때이다. 즉 새만금의 경제적 가치 외에 정서적, 미학적 가치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생명, 영혼의 목소리를 들어라. 갯벌과 바람의 흐름을 느껴라.’새만금100인체험단’의 구성을 제안한다. 새만금의 현장을 방문하는 상시적인 프로그램으로 갯벌의 지렁이와 뒹굴어라. 음악, 문학, 미술 등 예술계 전반이 총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새들의 운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바로 염치없는 인간이다. 장미빛 청사진의 어리석은 환상에 빠져 삶의 터전을 버리는 지역주민의 인식전환이 급박하다. 갯벌도 썩어 죽고, 주민에게도 피폐한 노예적 삶만이 주어질 것이다. 정말 ‘넌센스 중의 넌센스’다. 사람들의 마음을 좀더 부드럽게 하고, 새들의 운명을 고려할 방법으로 ‘기도’를 제안한다. ‘기도와 내면의 폭파’ 만이 새만금의 대안이다.”
“현재의 환경문제, 특히 새만금 문제는 정치적 이슈파이팅만으로 풀 수 없다. 풀뿌리부터 교육, 문화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르조아적인 접근만이 생명운동의 전부인양 환원하지 말라. 새만금살리기 전국행진을 제안한다. 한발짝 한발짝 생명의 소원을 담아 서서히 거대한 물결을 만들자. 이것이 기도의 일환으로 자기내면 폭파의 행동실천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이번 새만금간척의 실질적인 결정권자는 대통령, 전북지사, 농업기반공사 등의 개발론자들이다. 만약 새만금이 시화호와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고, 정책의 실패를 또 다시 경험할 때에는 개발론자들의 사유재산몰수 등과 같은 법적인 조치를 행할 필요가 있다.”

최종덕 상지대 교수
“역사상 환경과 개발의 대립구조에서 생명운동이 성공하는 사례는 늘 희생이라는 피의 대가이다.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타협을 버리고 싸움을 시작하자.”



최성각 소설가
“이제 새만금 저지는 환경운동단체만으로는 힘들다. 생명을 업으로 삼는 종교인과 풀뿌리 민초의 역할이 필요하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90%이상 진행된 상태다. 방조제가 완성되면 새만금은 끝장이다. 우선 물막이 공사를 중단시켜야한다. 새만금 살리기의 상징적 직접 행동으로 ‘방파제 햄머질’을 제안한다. 현장에서 방파제를 햄머질한 후 해창산으로 돌들을 옮겨 새만금생명성지, 기념관을 조성하자.”

김지하 시인
“뭇생명이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자세에서부터 출발하자. 인간과 자연사물에게 영성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한다면, 계속적인 타격과 비판 일변도의 편향적 운동만으로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삶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인식, 즉 세계관을 생태적으로 바꾸는 운동이 필요하다. 방법적으로는 지속적인 문화운동, 문화혁명을 중요하게 제안하며, 문화운동의 장기적 호흡을 갖추어야 한다. 생명을 값없이 여기는 것에 대한 문화전쟁이다. 생명운동을 새만금으로 한정하지 말라. 생명운동을 문화혁명으로 제안하는 근본의도는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농업과 유목을 포괄하는 다양성의 존중에 있다.”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행동모임’을 제안한다. 기존의 새만금반대를 주도해온 환경운동세력뿐만 아니라 새만금 반대의 행동의지가 있는 모든 이들이 조직의 구성원이어야 한다. 딱딱한 조직구성은 피하자.”

이날 새만금 살리기 실행위원회와 전국단위의 행진, 햄머질 행동 등이 제안되고 학계의 ‘Working Group’도 계획되어, 종교계와 문화 예술계, 환경단체와 교육계, 학계와 법조인의 연대로 실행단위가 구성되었다. 구체적으로, 새만금에서 살아야 하는 생명의 심장소리를 대변하는 ‘생명의 북소리 운동’으로 전국민적 의식의 시발이 될 것이며, 새만금 갯벌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새만금 걷기와 갯벌체험 프로그램과 새만금을 다시, 제대로 보기 위한 홍보활동을 재정비하여 체계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운동세력의 다양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운동가 중심의 환경운동만이 대안이 아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김종철 교수가 핏대 세워 얘기한 것처럼, 나는 이 땅의 기운생동한 생명의 목소리를 부르주아적 환경운동만으로 치부, 환원시켜버린 것은 아닌가. 녹색은 생활이다. 그렇다. 일상의 생활과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보이는 감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녹색은 시작된다. 운동가들의 이슈파이팅과 생활의 조율은 따라서 필연적이다.

[결의문]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한 원주 선언

12년에 걸친 새만금 간척사업.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결연한 의지를 갖고 모였습니다.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이 곧 인간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되고, 인간 삶의 발전이 되고 있는,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을 거역할 수 없기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단지 어느 한 지역, 어느 하나의 개발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위기를 막음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발전을 여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온 국민의 간절한 여망에 부응하고 세계사의 발전에 기여하는 일입니다. 자연과 인간 경제와 문화가 상생하고, 새로운 틀로 탈바꿈해 가는 이 시대의 필연적 흐름에 따르는 것이고 시민 삶의 발전이라는, 생존의 필연적 요구에 따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미래를 맞이할 단 하나의 길입니다. 시민들에게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한 저희들의 행동에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진지하게 결단을 할 것을 엄중히 촉구합니다.

그동안 새만금 간척에 대해서 수많은 저항이 있어 왔습니다. 학자들은 새만금 간척 강행을 위해 간척지의 경제성을 높여서 평가했던 부당한 평가방법에 대하여, 강행 결정의 부당한 행정 절차에 대하여 분노했습니다. 뜻있는 지역 인사들이 너무도 자명한 수질오염과 지역파괴의 위험을 장미빛 개발의 환상으로 눈가림해 온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여론 주도층에 대하여 항의했습니다. 생업 터전의 파괴와 생존권의 박탈을 앞두고 절규해 온 어민들이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새만금간척 현장을 들르고 눈물 흘렸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농업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식량안보의 명분으로 갯벌을 볼모잡았습니다. 그것도 국토의 숨통이라 할 강 하구를 볼모잡았습니다. 이제는 그 간척의 명분과 목적까지 상실하였습니다. 정부는 쌀 증산 정책을 포기하였고 경작을 축소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불합리할 뿐인 간척지의 농경을 우량농지라는 명분으로 덮어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지역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간척지가 농지로 쓰일 것이라는 예측도 기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큰 환경파괴의 징후가 최근 그린벨트 해제의 지역정책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간척 강행 당시 정부 스스로가 내걸었던 약속조차도 이행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이 무모한 비합리성과 허구적 욕망을 끊어야 합니다. 그간 처절하게 진행되었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개혁이란 막힌 것을 뚫고 맺힌 것을 푸는 일입니다. 허구 위에 올려놓은 지역개발의 환상을 과감히 깨고, 진정한 발전의 물꼬를 트는 일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여 뜨거운 가슴과 지혜를 모았습니다. 그 결과 새만금 간척사업은 마땅히 중단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시 한번 도달했습니다. 아직은 새만금 갯벌을 되살리고 주민 삶을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이 충만합니다. 어려움을 겪은 지역이기에 오히려 더 깊은 혜안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과 함께 생명의 소리를 울리기로 했습니다. 새만금갯벌에서 머리숙여 생명의 존엄함을 터득했던 세계 곳곳의 벗들과 함께 생명의 소리를 울리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희망의 신호가 되고 깃발이 될 것입니다. 국가가, 지켜야 할 국토를 앞장서서 파괴하는 어리석은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노무현 당선자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국가와 사회를 구하는 길이며, 새만금 지역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2003년 2월 7일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대화마당 참석자 일동

※ 취재, 기록 : 윤상훈(녹색연합 자연생태국), 윤지선(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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