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서울, 서울성곽 순례길

2008.12.02 | 미분류

걷고싶은 서울, 서울성곽 순례길

서울성곽을 아시나요?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 생태축을 따라 이어지는 18.2km의 서울성곽은 600년 도읍지 한양의 도성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빛을 발할 우리의 유산입니다. 녹색연합은 서울의 옛 이야기와 현대의 삶이 공존하는 서울성곽을 따라 순례하는 길을 찾고 시민과 함께 걸으면서 서울의 역사와 생태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찬바람이 살을 에이던 지난 11월 29일.

함께 걸었던 서울성곽 순례길 북악산 구간의 모습과 느낌을 전합니다.

스모그로 둘러쌓인 잿빛 하늘, 마치 컨테이너박스를 일렬로 세워놓은 듯한 아파트.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주차장인 듯 도로위에 길게 줄서있는 자동차들. 시끄러운 음악.

내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유쾌하지 않다. 그저 빨리 뜨고 싶은 동네일 뿐.

항상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내게 서울성곽을 걷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권유가 들어왔고 딱히 할 일이 없기에 ‘갈게요!’ 녹색연합 홈페이지에 신청을 하게 되었다.



11월 29일 오후 1시 성북구에 위치한 녹색연합 본부에 도착. 성곽 걷기에 참여한 시민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서울 과학고를 시작으로 창의문까지 걷게 되었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살이 아프긴 했지만, 하늘이 정말 맑았고, 걷기 좋은 날씨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걷기라 심심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땅과 하늘, 성곽, 식물들을 보며 그리고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친구삼아 잘 걸었다. 서울성곽의 유래와 여장의 구멍이 다른 이유 등 성곽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난 성곽이 평평할 줄 알았다. 대하드라마에서 처럼, 그저 평평한 땅을 둘러싼 벽돌처럼… 하지만 아니었다. 성곽은 산을 따라 쌓았고, 단순한 산책일 줄 알았는데 거의 산행에 가까웠다. 편하게 생각했던 성곽 걷기는 편하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계단과 군사시설. 높이 올라갈수록 힘들고 다리가 아팠다. 이틀이나 지난 지금도 아프다. 운동부족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쾌청한 날씨 덕분에 옛 한양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숲도 볼 수 있었다. 하늘이 정말 예뻤고, 찼지만 바람 또한 좋았다. 산등성이까지 자리한 집들과 전혀 예쁘지 않은 빌딩들, 여전히 일렬로 늘어선 차들로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것만 빼면 아름다운 서울이었다. 아직도 산 위에서 본 서울의 하늘을 잊을 수 없다. 어떤 사진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광경이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성곽에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서울에 대해 한국에 대해 조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좋았다. 만약 외국인이 서울에서 좋은 관광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난 서울성곽 길을 추천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했던 남대문은 불에 탔고, 전통이 살아 숨셨다던 인사동은 악세사리, 음식점 등 상점으로 가득 찼고 경복궁과 창경궁 같은 궁은 규모면에서 중국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서울성곽을 따라올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힘이 든다는 것만 빼면 성곽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래서 난 서울성곽이 관광코스로 적극 홍보되기를 바란다.



사실, 난 걷기 전에 ‘제대로 경치를 봐야지’ 결심 했다. 하지만 끝없이 늘어선 계단을 지나 정상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 여러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뒤쳐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조바심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빨리 걷게 된 것 같다. 나중에 다시 걷는다면 천천히 걷고 싶다.

서울성곽 순례길의 취지는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등산으로 인해 산이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을 분산시키고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정도의 코스와 풍경이라면 많은 등산객들이 충분히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성곽이 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등산객들이 찾지 않는 이유는 인위적으로 만든 계단과 좁은 통로, 어쩌면 산에 오름으로써 등산객들은 자유와 평화를 느끼는데 신분 확인과 군인들, 보안장치 때문에 답답함을 느껴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는 그저 작은 생각이 든다.

그런 답답함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기에 난 이런 추억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녹색연합에게 고맙다.

글 : 최수림(참가자)

사진 : 박상언(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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