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마치 반핵운동가 초청토론회 녹취록

2001.10.19 | 미분류

마키마치(卷町) 반핵운동가 초청토론회(서울)

연사 : 마키원전설치반대회의 나카무라 마사토시(中村正紀) 사무국장
장소 : 한국YMCA 전국연맹 회의실
일시 : 2000년 2월 29일 오후 2시

초청인사 이력

– 나카무라 마사토시(中村正紀) 사무국장 : 1942년생, 현직 교사, 지난 1971년 도호쿠(東北)전력의 마키핵발전소 계획이 공개되자마자 마키원전설치반대회의를 결성하여 30년간 반핵운동을 해오고 있음.

– 나카무라 가츠코(中村勝子) 의원 : 1941년생, 현직 마키마치(卷町) 의회의원, 나카무라 사무국장의 부인이자 평범한 주부로서 생활해오다가 지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민운동에 참여, 다음해 지역의회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

– 사또 다이스케(佐藤大介) 반핵아시아포럼 일본위원회 사무국장 : 1957년생, 현직 공무원(오사카의 니시나리 노동복지센터 근무), 아시아지역의 반핵운동 국제연대를 위해 활동하고 있음.

한국에서 핵을 없애기 위해 열심히 싸우시는 환경단체 여러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이번에 초대해주셔서 오게된 나카무라 마사토시라고 하고, 제옆에 앉아 있는 제 아내이며, 마키마치 의회의 의원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맞고 있습니다. 21세기는 핵을 없애고 환경과 인권을 위한 세기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핵을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3월 4일까지 저희는 한국에 체류하며 간담회를 열려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키마치에서는 30년전에 핵발전소 건설이 고시되었습니다. 저도 30여년동안 반핵운동을 계속해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간단하게 소개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이후 토론을 통해 자세히 말씀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30여년전부터 핵발전소계획이 발표되고 지금까지 계속 핵발전소 반대운동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주민들의 힘이 매우 약했을 때인 그 시절에도 우리는 반핵운동을 진행했습니다. 핵발전소는 국책사업으로서 정부가 권력을 발동해서 시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경찰한테 체포당할뻔했던 경우가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그러한 괴로운 투쟁과정속에서 점점 주민들이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참여하는 폭이 커져왔습니다.. 4년전에는 드디어 주민들이 궐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마키마치에서는 처음으로 주민투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정(町) 주민의 태반이 핵발전소가 필요없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정부는 지금도 “핵발전소가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정세를 볼 때 마키핵발전소의 건설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국가와 전력자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단결된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투쟁이 열매맺을 때가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2년 내에 승리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 미에현(三重縣)의 아시하마 핵발전소 문제는 계획이 발표된지 35년이 넘은 곳입니다. 주민의 힘이 승리해서 미에현의 지사가 철회 요청서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여 정부도 전력회사도 이 계획을 철회하기로 발표하였습니다. 반드시 주민들의 힘이 마지막에는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 서로 가집시다. 별 힘이 없는 저희들의 운동이지만 여러분들이 핵에 대항해서 싸워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저희들의 경험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4년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주민과 의회가 일체화되어 싸운 결과였습니다. 여러 가지 투쟁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토론과 회의를 통해 좋은 투쟁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는 제 아내인 나카무라 가츠코의원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소개받은 나카무라 가츠코입니다.
남편이 가끔씩 얘기도 하고 회합에도 참여하여 반핵운동에 대해 가끔씩 접해본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라 매스컴이나 여론이 주민들의 반핵운동에 대해서 협력해주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살던 지역에서는 무언가 반대운동을 한다는 것에는 좋지않다는 눈초리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핵발전소 건설추진파가 강했던 지역이었습니다. 30여년전에 갑자기 저의 남편이 반핵운동에 관계하게 되고, 저자신도 관련되었지만 제가 지금처럼 의회 의원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원후보에 출마하라고 할 때,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해야 했기 때문에 할수 없이 출마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질의 및 응답

질문 1.

과천에서 시의원을 하는 최경송이라고 합니다. 저는 선거때, 저희 지역의 고압송전선로 건설문제로 주민대책위가 결성되어 후보로 나와 의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장소환운동을 할 때,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텐데 어떻게 이를 성사시켰는지 궁금합니다. 정장소환이라는 것은 정장으로서 엄청난 일로서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었을텐데..

> 응답 (나카무라 마사토시 사무국장)

22명의 정의회 의원중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과반수 진출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정장은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입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의회의 과반수 의원이 주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건설문제를 결정하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의원이 제안한 주민투표조례안을 의회에 제출하여 이를 결정하였습니다. 주민투표조례안이 가결되고 나서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일부 주민들이 주민투표조례의 개정안을 제출하여 이를 무력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제정된 조례는 주민투표의 기일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개정된 조례안은 그 기일을 무한정 연기시킬 수 있도록 만든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의회를 경시하는 것이고,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장에 대한 리콜 즉 해직청구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해직청구서명을 받고 있을 그 당시에 몬쥬고속증식로에서 냉각재 누출사고가 일어났었고, 이를 은폐하려던 핵산업계의 시도들이 폭로되었습니다.
결국은 주민들의 힘, 그리고 조례를 정한 것, 몬쥬의 냉각재누출사고 등이 누적되어 정장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2. (한국여성환경운동본부 박정희 회장)

원전을 막은 이후 전력정책에 대한 대안을 말씀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응답(나카무라 가츠코 의원)

일본은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 아직 완전히 경제적이지는 않지만 이들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전력회사들과 지자체들이 대체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현재 마키마치에서도 주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가 필요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정장이 선출되었습니다. 그래서 핵발전소를 대체할만한 전력원을 확보하려고 하느데, 우선 지자체의 공공시설에 태양광발전시스템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만, 핵발전소 건설추진파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부결되었습니다. 추진파 의원의 주장은 예산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민들은 이러한 의원의 태도에 분노하였습니다. 결국 정민들은 자체적으로 기부금을 모아 이를 마키정에 기부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부금까지 모아져 정장이 태양광발전을 마키정 공공시설에 설치하자고 제안하자, 추진파 의원들은 다시 이마저도 부결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태양광이 실제로 설치되면, 태양광발전이 핵발전을 대체하는 전력원으로 각광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주택지붕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할 때 정부가 절반을 지원하게끔 되어있습니다. 마카마치에서는 중앙정부의 지원이외에 추가적인 지원을 하려고 있습니다. 지금 마키마치에서는 상당수의 가정들이 자비로 태양광발전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에 설치해놓고 보면, 자기집만 쓰기에는 너무많이 전기가 남아돌아 이제는 남는 전기를 전력회사에 팔고 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로는 80%이상의 국민이 핵발전소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핵발전소를 대체하는 전력원을 개발하는 노력들이 기업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3.

청년환경센터에서 일하는 김민정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마키마치의 결과는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할거라고 생각됩니다. 마키마치의 결과를 두고 일본에서는 어떻게 반핵운동에 활용할 것인지, 이와 같은 운동을 어떻게 확대시킬 것인지 의견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응답(나카무라 마사토시 사무국장)
마키마치에서는 주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반대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일본국내에서도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핵발전소에 대한 주민투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죠. 이후 전국 각지에서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주민단체들이 강연회나 간담회를 요청하였고, 저뿐만 아니라 마키마치에서 반대하는 주민들이 일본 각지의 주민들이 불러준 덕택에 그결과 주민투표는 마키마치뿐이었지만, 산업폐기물처리문제라든지, 하천의 제방건설문제라든지, 환경을 파괴하는 공공사업에 대해 주민주권을 찾으려고 하는 정치풍토가 일어나기 시작해Tt급니다. 이것은 마키마치에서 착실하게 파급시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운동을 계속 해나가겠지만, 마키마치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주민투표결과를 정부는 인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전력회사가 주민투표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키마치에서 주민투표를 실행했다는 것의 성과로는 핵발전소에 대한 주민의 의사를 표시했다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생활, 생명에 관련한 것, 재산에 관련한 것 등에 대해서는 주민들 스스로 정한다 즉 주민자치의 사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말그대로 주권재민이라는 사상을 새삼스럽게 크게 파급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4. (의견제출)

저는 원자력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주권행사를 한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인드를 확장시킨다면, 단지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환경과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있었던 생명공학에 대한 합의회의같이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5.

이영선 한국반핵운동연대 위원장입니다.
30년동안 반핵운동을 하는 동안 수많은 박해를 받았을 것이고, 주민대다수가 정부입장을 절대적으로 찬성하던 시대에 어떻게 운동을 해올 수 있었습니까?

> 응답 (나카무라 마사토시 사무국장)

하나는 아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30년전 반핵운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일본의 정치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당시 저희같이 정부정책에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범죄자취급을 받았습니다. 저희들은 압도적으로 소수파였습니다. 마을안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지원이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하나 반핵운동은 국가정책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했기 때문에, 경찰로부터 경계대상이었습니다. 밤늦게 회의를 하게 되면 반드시 미행을 당해야 했고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에 대해 경찰들이 추궁하고 다녔습니다.
핵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수순이 있습니다. 대부분 해안에 위치하게 되죠. 체르노빌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경수로 타입이므로 대량의 냉각수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해상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다음단계가 공청회를 통해 지역의견을 수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을 동원해야만 하는데요, 이 때 저희들은 이러한 공청회를 저지하려 했고 경찰들은 이러한 저희들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도 여러차례 체포되기 직전상황까지 가보았습니다. 그런 기나긴 어려운 시절이 있었는데, 역시 지탱해준 것은 함께 싸웠던 동지, 그리고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해입니다.

질문 6. (환경과공해연구회 권기태간사)

마키마치에서는 주민투표를 추진하자고 결정한 이후부터 실제로 실행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있었을텐데,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듣고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 운동을 도입한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 응답(나카무라 마사토시 사묵구장)

도호쿠 전력은 처음 대관광단지를 만들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97%의 토지를 이미 매수해버렸습니다. 이때 남은 토지 3%가 매각되면 핵발전소가 실제로 건설되므로, 핵발전소를 건설할 것인가 말것인가라는 중대한 사안은 주민들이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핵발전소 건설여부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정장에게 맡기고 싶지않다는 취지에서 주민들측에서 투표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주민투표로 정하자는 운동의 모임이 그 때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주민투표실행을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이 때 주민들이 정장을 교섭해서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정장은 일본의 민주주의 제도는 의회제이므로 의원이 의회에서 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의원이 의회에서 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정할 필요없다고 말했습니다. 주민투표를 실행하는 모임에서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힘으로 하겠다는 취지에서 자치적으로 주민투표를 준비하여 실행했습니다. 이것을 저희들은 자주관리 주민투표라고 합니다. 그당시 자주관리로 그 투표에는 마키정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방해공작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런 투표에 가지 말라는 압력, 지역 기업의 사장이 주민투표에 가면 해직시키겠다, 친척을 통해 회유하여 투표장에 나가지 말라는 등 여러 가지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역에서 갖가지방식으로(통역, 한국으로 치면 통반장까지 동원하여)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전력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뒤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실시하여 2월 5일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2월 10일에는 전력회사가 마키마치에게 남은 3%의 부지를 매각하고 요청하였습니다. 의원 22명중 20명이 핵발전소 추진파였고, 겨우 2명이 핵발전소에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전력회사라는 자본만이 우리의 상대가 아니고, 핵발전소는 국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에는 나라를 상대로 싸움을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겠지만, 주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정치구조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정치적 원점에서 기본을 되찾는 싸움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주민자치의 중요성이라고 하는 것을 주민여러분에게 호소하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 마키마치도 아직까지 불충하지만 여러분과의 교류를 살려가면서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아, 한가지 잊은 것이 있었는데, 마키마치가 승리하게 된 것은 여성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전까지는 여성들은 선거에 전혀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의원선거에서 제 아내를 포함해서 1,2,3위가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여성후보들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여성의 참여가 저희 운동이 승리하는 데에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주민투표를 시행한 지역은 여성의 참여가 막대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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