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지난 6년간 7차례 핵폐기물 저장고 빗물누설 은폐

2003.02.21 | 미분류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중저준위)을 보관하는 임시저장고가 여러차례 대량의 빗물에 의해 누수된 사례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수년동안 은폐해왔던 사실이 작업자들의 제보로 폭로되었다. 19일 녹색연합(사무처장 김제남)과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당선자 서주원)은 한수원의 핵폐기물저장고 관리 하청업체(한국원자력) 작업자들의 증언을 인용, 경북 울진에 위치한 울진핵발전소 핵폐기물 임시저장고에서 지난 1997∼2001년 기간동안 적어도 4차례, 지난 2002년 한해에만도 3차례나 대규모의 빗물유입이 발생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들은 이 같은 대규모의 빗물유입은 저장고내 방사성 폐수들이 빗물을 통해 외부로 유출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는 철제 드럼의 부식과 침식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저장고내 폐기물들은 철제 드럼에 담겨있으나, 방사능에 오염된 여러 가지 장비 등을 세척하고 남은 폐액이 저장고 바닥에 고여 있도록 설계되어있기 때문에 저장고내로 들어온 빗물이 외부로 나갈 경우 방사능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한수원, “빗물유입 없었다”에서 “세 차례 정도 있었다”로 바꿔 해명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애초 “빗물유입은 없었다”고 지역주민들에게 홍보해오던 한수원 울진원자력본부는 제보내용이 지역언론(매일신문)에 알려지자 지난 14일 ‘제2저장고 방사성 폐기물 저장고 현황과 해명자료’ 등을 통해 “작년 한 해 동안 제2저장고에서 모두 3차례의 누수현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수원측은 “작년 1월 9일과 집중호우가 내린 7월 5일,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휩쓴 8월 30일 등 모두 3차례 누수현상이 발생했으며, 빗물이 저준위 드럼 저장지역인 1층 옥상과 2층 외벽 연결부위 등을 통해 스며든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또한 한수원측은 “누수량은 약 1.5  정도의 극히 미미한 양으로 오염되지 않았으며 이것도 모두 수거해 발전소 액체폐기물 처리 계통을 통해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한수원이 이 같은 사실을 지난 6년동안 지역주민들은 물론 규제당국인 과학기술부에도 철저히 은폐해왔다는 측면에서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고 비난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유입된 빗물량은 지난해 7월의 경우만 하더라도 “최소 0.5톤 이상으로 양수기를 동원해 퍼내야할 정도로 양이 많았으며, 퍼낸 빗물은 곧바로 저장고 인근 잔디밭으로 버려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빗물유입은 지난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며, 제보자들이 알고 있는 한 최소한 4차례가 더 있었다고 제기한다. 심지어 원자력안전기술원 관계자도 “빗물누설량은 한수원이 보고한 1.5 보다 많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게다가 해당 지자체인 울진군청 진상조사단이 지난 14일 확인한 결과 울진핵발전소 핵폐기물 임시저장고 관리용역업체인 현대원자력측의 근무일지에는 지난해 단 한차례의 누수도 없는 것처럼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한수원측이 지난해 세 차례 누수가 있었다고 스스로 밝힌 작년 1월9일과 7월5일, 8월30일 등의 일지 ‘누수여부란’에도 ‘양호’라고 표기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황을 미루어볼 때, 한수원의 이 사안의 실질적인 규명보다는 그동안 철저히 은폐해오던 사실을 더 이상 감추기 어려워지자 사안을 임기응변적으로 축소시켜 공개함으로써 면피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임시저장고 규제조항 마저 없는 규제당국, 한수원 보고만 듣고 “문제없다”

사안이 이 정도로까지 진행되도록 규제당국인 과학기술부는 규제조치는커녕 사태파악조차 전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안이 지역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지난 14일에 이르러서야 한수원으로부터 지난해 빗물누설 사실에 대한 보고를 받았지만, 이의 사실관계를 입증할만한 기초자료나 방안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고 있어 형식적인 응답만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빗물 누설량이나, 이 빗물의 방사선 오염수준이 한전의 보고내용과 같은 것인지 측정을 할 수 있는 증거나 제도적 도구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부의 핵발전소 안전규제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은 핵폐기물 임시저장고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어 한수원의 <방사선관리절차서>를 준용하여 검토해보았으나, 이는 규제당국의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발전소 부지내에는 방사능 감시기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임시저장고에서 방사능물질이 유출될 경우 모니터가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1995년 6월에 발생한 고리 핵발전소 방사성폐액 누설사건을 볼 때, 이 같은 규제당국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고리핵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을 부지내의 핵폐기물 저장고로 옮기는 도중 방사능 폐수가 흘러 부지가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나, 1개월간이나 한전의 담당자들이 이 사실을 은폐하는 동안 주변의 방사능 감시기기들은 전혀 이를 감지해내지 못했다. 결국 한달 뒤인 7월에서야 우연히 주변을 지나가던 원자력안전기술원 직원이 휴대하고 있던 계측기에서 방사능이 측정되어 이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당시에도 이런 사실을 한달이 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던 과학기술부가 전문성과 책임감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었다.

환경단체, 지역주민 “이번 사건은 미래의 핵폐기장 사고 예고판” 우려

최근 울진군이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핵폐기장 후보지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단체인 <울진핵발전소반대 투쟁위원회>의 황천호 대표는 한수원이 “임시저장고 하나 안전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마당에 영구 핵폐기장을 짓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들은 프랑스, 영국 등 이미 핵폐기장을 운영해본 국가들의 경우 핵폐기장에서 지하수 용출 등 저장고의 누수로 인해 주변환경으로 오염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도 이 번 사안은 “한국 핵산업계의 핵폐기물의 관리실태와 정부의 규제능력이 어느 정도로 낙후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과거 발생한 핵폐기물 저장고 누설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사항 : 문제의 핵폐기물저장고는 울진핵발전소내 건설된 두 개의 저장고중 지난 1997년 준공된 제2저장고로서 저장용량은 1만 드럼(드럼당 200 )으로 현재 저장량은 5천668개이며 이곳에는 방호복 등의 잡고체, 농축폐액, 폐수지, 폐필터 등 중준위 및 저준위 핵폐기물이 임시 보관돼 있다.

관계기관 연락처
원자력안전기술원  (담당 주운표 울진원자력 사업총괄팀장)   042-868-0249
과학기술부           (담당 원자력안전과 김승봉과장)             02-503-7650
한국수력원자력     (담당 대외협력실 백훈과장)                   02-3456-2494

추가적인 내용문의 : 녹색연합 석광훈 정책위원 ( 02-747-8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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