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4월 21일자, 정부 담화문)에 대한 반론

2003.04.22 | 미분류

—선진국들은 원자력에서 탈피하고 있다—

1956년 영국에서 60MW급 칼더홀 원전이 가동된 후 상업용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흘렀다. 상업 원전 등장 초기에 수십년 내에 원자력으로 모든 전력을 공급하리라는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원전은 1990년대 들면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특히 북미와 서유럽 지역에선 1990년 이후 원전 추가 건설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1998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 29개국 중 원전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불과하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호주 등 13개국은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있으며 발전에서 원전의 비중이 높은 독일(30%), 벨기에(58%), 스웨덴(47%), 스위스(36%)와 네덜란드는 가동 중인 원전을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나머지 9개국도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은 없는 상태인데 얼마 전 영국이 원전 확대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프랑스도 원전 추가 건설 중단의사를 밝히는 등 선진국들 내에서 원전 탈피 흐름은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들에서 원자력발전이 홀대받는 것은 핵사고의 위험, 핵무기 확산, 핵폐기물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발전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지구환경보고서 2003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선 외부비용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원자력발전은 킬로와트시당 10-14센트(120원에서 170원)로 천연가스 3.4-5.0센트/kWh, 풍력 4-6센트/kWh, 바이오매스 7-9센트/kWh, 수력 2.4-7.7센트/kWh 에 비해 훨씬 비싸다. 발전비용은 각 나라의 환경기준, 안전기준, 인건비 수준 등에 따라 다른데 미국이나 유럽의 원전 발전비용이 한국보다 크게 높은 것은 원전 폐로 비용이나 핵폐기물 관리 비용 산정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폐기물의 마땅한 처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에서 대부분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갔으며 스웨덴의 포스마크 처분장이 해저에 세워진 이유 중의 하나가 만일의 경우 방사성 물질 유출시 해수에 희석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원전 위주의 전력 정책부터 고쳐야 한다—

원전 건설보다 공급 위주의 전력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 이미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 원전 설비 보유국이다. 총 18기가 가동중이며 원전 발전량이 전력공급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거기에다 2015년까지 10기 (1160만kW)의 원전이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미 한국민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1인당 GDP가 한국의 2배가 넘는 영국을 넘어 3배 가까운 독일 수준에 이를 만큼 한국의 전력낭비는 심각하다. GDP당 에너지소비량이 서유럽 국가들의 2배에 이른다.
더군다나 정부 계획대로 발전 설비가 늘어나면 2015년엔 한국민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이 50% 더 늘어난다. 유럽과 일본 등에선 전력소비가 정체상태라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의 전력정책은 경제개발협력기구 내에선 이미 원칙과 상식을 크게 벗어났다. 전원설비 확대를 주장하기 전에 전력낭비를 조장하는 공급 위주 전력 정책부터 고쳐야 한다.

—핵폐기장은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핵폐기물 처분 방식과 부지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기 전까지 핵폐기물은 지금처럼 발전소에 보관해야 한다. 정부와 한전은 1994년에도 2001년이면 발전소 내 폐기물저장고가 가득 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굴업도 핵폐기장 추진 계획이 활성단층의 발견으로 백지화되자 1997년 한전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유리 고형화를 통해 압축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발전소 내부의 폐기물저장고 수명을 크게 연장할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하였다.
   설령 정부와 한전의 주장처럼 임시저장시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포화될 수 있지만 핵폐기물 처분 방식과 부지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할 때까지 임시저장시설을 증설하여 이를 보관하면 별 문제는 없다.

1966년부터 상업용 원전을 가동한 독일은 1998년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집권을 하면서 가동 중인 20기의 원전을 지난 해부터 폐쇄 중이다. 지금까지 변변한 핵폐기물 처분장 하나 없던 독일은 원전 폐쇄 결정 후 핵폐기장 처분 방식과 부지를 정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참여한 공개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1차 보고서를 펴내는데 4년이 걸렸다.
핵폐기장 처분에 관한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지를 정해서 추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은 원자력발전소를 받아들이고 여기서 나온 전기를 써 온 국민들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다.  한국에서도 핵폐기물 처분 방식과 처분장 부지를 결정하기 위해선 원자력발전의 지속 여부를 포함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두 번의 국민담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는 2월 5일,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를 발표하며 7개 부처 공동의 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담화에 환경부 장관의 이름은 빠졌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에 확인한 결과 「1차 국민담화 때 담화의 내용이 환경부의 입장과 달라서 환경부 장관은 참여할 수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4월 21일 10개 부처 장관과 한수원 사장 공동 명의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일간지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번 일간지 광고에도 환경부 장관의 이름이 빠졌다.
이번에도 산자부와 과기부의 잘못된 주장에 들러리 설 수 없다는 환경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환경사안인 핵폐기장 건설에 대한 두 차례의 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환경행정의 수장조차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국민에게 발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참여 정부는 정부 내부에서 먼저 원전 확대와 핵폐기장 건설 강행 정책이 타당한 지 진지한 검토와 토론에 착수해야 한다.  

문의 : 녹색연합 에너지담당 이버들 (02-747-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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