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한겨레신문](사설) 서울에 핵폐기장을! (2003/02/06)

2003.04.25 | 미분류

“그렇게 안전하다면 대덕 연구소 앞에 핵발전소를 세우고, 서울 여의도에 핵 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지요.” 1993년 여름에 경남 고성군의 핵폐기장유치 반대대책위 공동대표였던 이현복씨가 한 말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찬핵논자들의 주장대로 핵발전소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당연히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곳에 핵발전소를 세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핵폐기장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당연히 핵발전소 옆에 핵폐기장을 세워야 한다. 정말로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이 안전하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히 경제적으로도 옳은 것이다.

핵발전소는 모두 소비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소비지까지 거대한 송전탑을 세워서 전기를 보내야 한다. 이렇게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돈이 들어야 한다. 핵발전소를 소비지에 세운다면, 당연히 이런 송전탑을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송전탑이 빚어내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막대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송전탑은 자연경관과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한다. 핵발전소를 소비지에 세운다면 송전탑이 빚어내는 이런 파괴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정부와 한전은 이렇게 분명한 해결책을 내팽겨친 채,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해서 엉뚱한 해결책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한전은 왜 이렇게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걸까

10년 전의 일이다. 정부와 한전은 소비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핵폐기장을 세우려고 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엄청난 반발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정부와 한전은 똑같은 정책을 다시금 추진하면서 마찬가지로 엄청난 반발과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똑같은 것은 잘못된 정책의 내용만이 아니다. 그것을 추진하는 잘못된 방식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사회를 분열시키고, 지역개발이라는 미끼를 던지고, 지역이기주의라는 비난을 가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도 변했건만 어쩐 일인지 이 나라의 핵정책은 그 내용과 방식이 모두 도무지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핵발전은 낡은 시대의 거대한 상징이다. 그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잘못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데, 왜 정부와 한전은 낡은 시대에 머물려고 하는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부와 한전의 과제가 아닌가 정부와 한전은 왜 낡은 시대의 상징을 계속 지키려 하는가

환경정책의 대원칙은 혜택을 입는 사람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핵발전소는 소비지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핵폐기장은 그 옆에 세워야 한다.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지역의 순서로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유치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졸지에 핵발전소로 바뀌거나 핵폐기장으로 바뀔 위협에 처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서울에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세울 수 없다면, 정부와 한전은 핵발전의 절대적 위험을 분명히 시인하고, 지금의 위험한 핵정책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태양의 시대로 나아간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잘못된 핵정책을 바로잡는 데에 있다. 지금의 위험한 핵정책을 고수하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고 낡은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홍성태/상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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