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한겨레21]북핵 위기 이어 남핵위기(2003/03/05)

2003.04.27 | 미분류

정부의 핵폐기물 처분 건설 후보지 선정에 국민적 저항은 다시 시작되고,,,

북녘 땅에서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무력충돌까지 운위되는 사이, 남녘 땅에서는 핵폐기물 처분장 문제로 환경단체·지역주민과 정부 사이에 폭풍전야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북핵 위기의 초점으로 떠오른 폐연료봉 역시 핵발전소 가동 뒤 나온 폐기물이고 보면, 한반도의 남과 북이 모두 핵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15년간 정부는 바뀐 게 없다”

지난 2월4일 정부는 ‘최장기 미제사업’으로 꼽혀온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후보부지를 발표했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52차 원자력위원회 보고를 거쳐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후보지로 △경북 영덕 △경북 울진 △전남 영광 △전북 고창 등 동·서해안에 각 2곳씩 모두 4곳을 선정했다. 산자부는 또 향후 1년간 정밀 지질조사와 지역협의를 거쳐 내년 3월 정부·학계·시민단체로 구성되는 부지선정위원회에서 최종부지를 동·서해안에 각 1곳씩 모두 2곳을 정하기로 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기존 계획에는 1개 부지만 선정하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2개 부지를 선정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초 최종부지로 선정된 2곳에는 각각 30만평 규모의 입지에 7500억원씩 모두 1조5천억원을 투입해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시설을 2008년까지, 사용후 연료의 중간저장시설을 2016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자금에는 해당지역 2곳에 3천억원씩 지원되는 지역지원금도 포함돼 있다.

정부의 발표가 나온 뒤 예상대로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격한 반응을 토해냈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신임 사무총장은 “15년 전부터 정부에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핵발전소를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근본적 에너지 수급대책을 마련한 뒤, 기존 발전소에서 나온 폐기물 처리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정부는 폐기물 처분장 건설의 시급성만 강조한 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국민의 반발이 거세면 물러나는 일만 반복해왔다. 또다시 주민의 뜻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이번에도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과 관련한 정책 마련에 나선 것은 지난 1984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해 10월 원자력위원회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해서는 유지처분을 원칙으로 하고, 원전부지 외부에 집중식으로 건설한다”는 정책방향을 내놨다. 이후 과학기술처 주도로 시작된 사업은 1988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중장기계획’ 확정 이후 폐기장 건설 논의가 본격화했다.

그러나 1989년 경북 영덕·울진 등에 대한 부지조사가 주민 반대로 중단된 것을 시작으로, 후보지로 특정지역이 거론될 때마다 해당지역 주민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선정과 철회를 반복해왔다. 특히, 1990년 11월에는 벌어진 이른바 ‘안면도 사태’는 핵폐기물 처분장 논란이 안고 있는 폭발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주민 일부가 ‘안면공화국 독립’을 외칠 정도로 집단반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학생들의 등교거부와 관공서 점거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폭동화 조짐까지 보인 것이다. 이에 놀란 정부가 주무부처인 과기처 장관을 해임하는 등 불끄기에 나서면서 사태가 간신히 진정됐다.

저장능력 포화상태, 끝없는 거짓말

거듭되는 주민반발로 고심하던 정부는 1994년 12월 인천 옹진군 굴업도를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지구로 지정·고시했다. 이듬해 부지 특성조사 시작과 함께 주변지역 지원을 위해 덕적복지재단을 설립해 특별지원금 500억원을 출연하면서, 폐기장 건설은 가시권으로 접어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이 굴업도의 지질학적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투쟁에 나선데다, 실제 정부의 정밀 지질조사 및 환경평가 과정에서 활성단층이라는 사실을 확인되면서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1997년부터 주관부처가 과기부에서 산업자원부로 이관되고 근거법률이 원자력법에서 전기사업법으로 바뀌었으며 수행기관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으로 넘어갔다. 사업주체가 바뀐 뒤인 2000년 6월 산자부는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유치를 위한 공모작업을 벌였지만, 희망지역이 없어 무산됐다. 이에 따라 사업자 주도방식으로 부지선정 방식을 바꾼 뒤 민간업체에 후보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을 맡겨, 최종 후보부지를 선정했다.

산자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1978년 고리원전 가동 이후 생긴 방사성 폐기물은 현재 4개의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에 보관 중이다. 그러나 중·저준위 폐기물은 2008년 울진을 시작으로 월성·영광·고리 원전이 잇따라 포화상태가 된다는 것이 산자부의 주장이다. 또 고준위에 해당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2006~2008년에 저장시설 포화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원전 내 저장능력을 확충하더라도 2016년 이후가 되면 더 이상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폐기물이 쌓여가는데 폐기장을 짓지 못하면 원전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전기 없이 살 수 있는 국민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환경단체의 설명은 이와는 다르다. 황성원 청년환경센터 대표는 “그동안 정부는 저장능력 포화상태에 대해 끝없이 거짓말을 해왔다. 80년대 말에는 90년대 중반이면 꽉 찰 것이라고 주장했고, 90년대 초반에는 90년대 말이면 더 이상 저장할 공간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번에도 정부는 현재의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어쩌란 말이냐며 국민과 주민을 협박하고 있다. 더 이상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원자력발전의 대안은 정녕 없는가

지난 2월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환경연합·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4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 추방 반핵국민행동’ 출범식이 열렸다. 법복을 곱게 차려입은 원불교 성직자들과 지역주민·환경단체 회원 등 집회에 참석한 300여명은 “핵발전소는 여의도로, 핵폐기장은 청와대로”라는 격한 구호를 쏟아냈다. 이날 집회에서 이선종 원불교 교무는 “정권 말기에 서둘러 후보부지를 선정한 것은, 누구의 동의도 얻을 수 없는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어떻게든 핵폐기장을 먼저 건설하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는 처사”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원의 약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공급량의 약 40%를 떠받치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폐기장 후보부지 주민과 환경단체는 “핵폐기장은 혐오시설이 아닌 살인시설이다. 주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지 말라”고 반박한다. 치명적인 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환경오염 없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수급대책을 마련할 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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