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한겨레]핵폐기장 예정지 부안군 위도를 가다.

2003.09.01 | 미분류

   핵폐기장 예정지 부안군 위도를 가다
   진초록 청정섬, 수달도 예 숨어있었구나 (한겨레 08/27)

   “환상의 섬, 위도에 와 보셨나요?”

   지난달 15일 핵폐기물 처리장 예정지로 전격 선정된 전북 부안군 위도가 천연기념물의 보고이자 생태학적으로 뛰어난 보호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22일 아침 변산반도의 서쪽 끝인 변산면 격포항에서 14㎞, 여객선으로 40분 남짓 만에 도착한 파장금리 선착장은 낚시 피서객의 대목이 지난 탓인지 비교적 한산했다.
   주민 대다수의 반대 여론을 뒤집은 군수의 기습적 유치 신청 이후 ‘고슴도치 섬’이라는 이름처럼 갈가리 나뉜 찬반여론 탓에 ‘핵폐기장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곳이란 긴장감도 찾기 어려웠다. 선착장 곳곳에 걸린 노란색 반핵 깃발과 핵폐기장 유치 반대 표어들이 ‘3천억원 현금보상 기대 무산’ 이후 달라지고 있는 민심을 짐작하게 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도 아침 일찍 건너편 방파제 주변 해안에서 2~3마리를 봤지라. 그란디 해달(수달)이 노는 것을 찍을라면 여름보다는 춘 겨울이라야 써라. 먹을 것이 귀해지면 양식장으로 왔다가 그물에 걸려서 올라오기도 하니께.”
   파장금항의 한 여객선 출장소장이자 바다낚시점을 하고 있는 장정근씨는 “천연기념물이어서 함부로 잡아서도 안 되지만 옛날부터 온 섬에 수달이 흔해서 사진을 찍어두거나 역시로 잡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선착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5분 남짓 거리인 진리에 이르자 최고봉인 망월봉(254.9m) 아래로 완만한 해안선을 따라 아담한 마을전경이 펼쳐졌다. 민가 주변 밭둑이나 산기슭 곳곳에 무리를 짓거나 홀로 우아하게 솟아 있는 하얀 꽃송이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마침 제철을 맞은 위도상사화였다.
   1985년부터 섬 답사를 해온 전북대 김무열 교수(식물분류학)는 “당시만 해도 해안선을 따라 주변 산기슭이나 작은 골짜기에 무리져 있었는데 서해훼리호 사고 보상으로 섬 일주도로가 건설되면서 대규모 군락은 많이 파괴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수백년 묵은 팽나무의 그늘에 위도상사화 꽃밭을 만들어놓은 토박이 주민 김성무씨는 “꽃이 예뻐서 밭을 갈거나 길을 낼 때 발견된 알뿌리를 옮겨다 놓았다”고 말했다. 분재와 수석을 가꾸고 있는 김씨의 집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수달의 암수 박제 한쌍도 볼 수 있었다. “5년 전쯤 겨울에 먹이를 찾으러 양어장에 나타난 수달을 진돗개가 물어서 잡았다”는 그는 야행성인 수달이 밤에 해안도로에서 차에 치여 잡힌 적도 있을 정도로 흔해서 박제를 해 둔 집이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95년 전북대 이원구 교수팀(동물분류학)의 ‘위도의 포유류와 조류상’ 조사 보고서도 벌금리와 치도리의 주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박제 수달 6마리를 기록해 놓고 있다.
   수달의 존재는 핵폐기장 시설이 들어설 예정지로 알려진 치도리 깊은금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민박과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신아무개씨는 “여름 피서철만 지나면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제법 덩치 큰 수달들이 짝을 지어 나타난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물고기가 풍부한데다 오염원이나 천적도 없으니 수달이 살기에 안성맞춤 아니겠냐”고 나름대로 서식 배경을 설명했다.
   해안선이 뭍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깊은금(지풍금)이란 이름을 얻은 해수욕장은 때마침 새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빛이 선명한 날씨 덕분에 투명한 물빛이 동해안을 보는 듯했다. 모래톱 위에 말려놓은 생선을 뒤집고 있는 동네 할머니의 등 너머로 대여섯의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는 전경은 ‘청정위도 파괴하는 핵폐기장 결사반대’라는 펼침막과 묘한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기도 했다.
   섬을 거의 한바퀴 돌아 벌금리와 진리 사이 도재봉 자락의 능선에 있는 당숲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서해훼리호 사고의 충격으로 희생자의 유족들을 비롯한 상당수의 주민들이 떠나는 바람에, 연초 한 차례 당제를 지낼 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숲은 무성하게 자란 풀들로 진입로조차 사라져버려 접근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곰솔(해송)로 뒤덮인 주변 능선의 뾰족한 산세 사이에서 부드러운 곡선 봉우리로 솟아 있는 당숲은 멀리서 보기에도 늘푸른숲의 짙푸름이 뚜렷했다.
   가까스로 들어선 숲은 20m 이상 높이 솟은 활엽수 거목들이 빛을 가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했다. 후박나무 참식나무 북가시나무 광나무 등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난대성 상록활엽수의 진초록 잎새들은 햇빛에 반짝거려 언뜻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위도가 북한계지로 추정되는 구실잣밤나무는 바닷바람에 지친 듯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노거목 바로 밑으로 ‘자식 나무’가 떠받치듯 자라나 사이좋게 도토리를 맺고 있었다. 지붕 위에는 잡풀이 돋고 앞마당에는 이삭여뀌가 밭을 이룬 채 버려진 듯 서 있는 작은 당집을 지나 숲의 왼쪽 끝자락에 이르자,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곳에서 사는 푸조나무의 거목이 동백나무 식나무 소사나무 예덕나무 등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관목층에 둘러싸여 숨은 듯 솟아 있었다. 바다 건너 변산반도에서 북한계를 이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후박나무의 노거수 한 그루는 태풍을 맞은 듯 쓰러져 고사상태였다. 주변에 잘 자라고 있는 치수들 위에서는 후박나뭇잎 뒷면에 알을 낳아 번식하는 희귀곤충 청띠제비나비가 춤을 추듯 부지런히 팔랑거렸다.
   진리에 있는 위도고교 학생들이 최근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발표한 위도의 자생식물상 보고서를 보면, 지난 1년 동안 모두 107과 448종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는 위도상사화를 비롯해 흰꽃살갈퀴 흰꽃광대나물 흰꽃익모초 흰꽃박주가리 등 육지에서와 달리 흰색으로 꽃이 피는 특이변종들도 들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학생들을 지도한 양만화 교사(생물)는 “중·고교 다해서 3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이지만 섬의 규모에 비해 생물상이 풍부해 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자연학습’이 가능하다”며 중요무형문화재인 위도띠뱃놀이 등 문화유산과 더불어 향토박물관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도 한번만 우리 섬에 와보면 그렇게 무작시럽게 핵쓰레기를 갖다 묻으라고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여. 이번 참에 위도가 얼매나 아름답고 깨끗한지 지대로 알려지믄 핵폐기장 지원금에 팔아묵지 않아도 관광객들이 몰려서 대대손손 더 잘살 수 있을틴디 ….”
   벌금리에서 만난 한 토박이 주민의 혼잣말 속에는 수백년 거센 해풍을 이기고 서 있는 상록수 거목들처럼 외풍에 쉽게 꺾이지 않는 민초의 단단한 심지가 들어 있는 듯했다.
                                                      부안 위도/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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