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일지
@ 2003년 5월 1일 산업자원부, 핵폐기장 관리시설 유치시설 재공고
(2003년 2월 4일, 산업자원부는 전국의 4곳; 고창,울진,영광,영덕 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발표한 바 있다.)
@ 2003년 5월 13일 위도주민 핵폐기장 유치위, 주민 80% 이상 서명 받아 부안군의회 유치 청원
@ 2003년 7월 9일 부안군의회, 핵폐기장 유치 반대 결의
@ 2003년 7월 14일 김종규 부안군수와 김형인 군의회 의장, 산업자원부에 유치신청서 제출
@ 2003년 7월 16일 격포초교, 곰소초교, 변산중, 변산서중을 중심으로 핵폐기장 반대 등교거부 시작
@ 2003년 7월 22일 핵반대 군수퇴진 부안군민 1만인 궐기대회
@ 2003년 7월 24일 산업자원부, 부안군 위도를 핵폐기장 후보지로 최종 결정
@ 2003년 7월 26일 산업자원부 장관, 위도에서 ‘현금보상 검토’ 발언. 부안주민 촛불집회 시작
@ 2003년 7월 29일 정부, 위도 현금보상 배제 결정 (국무회의 결과)
@ 2003년 7월 30일 200여척의 해상시위
@ 2003년 8월 21일 400여척의 해상시위
@ 2003년 8월 23일 전주 대규모 집회
@ 2003년 9월 8일 김종규 부안군수, 내소사 사건.
@ 2003년 9월 24일 부안군의회 의원 7명, 핵폐기장 백지화 요구하며 무기한 등원거부 결의
@ 2003년 10월 4일 부안학생들, 42일간 이어진 등교거부 철회
@ 2003년 10월 10일 10일동안 부안에서 전주까지 120여명이 삼보일배
@ 2003년 11월 18일 정부, 주민투표 불가방침 발표 (부안문제해결을 위한 협의 결렬)
@ 2003년 11월 19일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 대책위원회, 정부와 대화 중단 공식 선언
@ 2003년 11월 20일 정부, 촛불집회 원천 봉쇄
@ 2003년 11월 25일 부안 핵폐기장 사태 해결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 촉구 ‘2천인 선언’
@ 2003년 12월 10일 정부, 핵폐기장 유치신청 추가접수 결정
@ 2003년 12월 12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사임
@ 2004년 1월 7일 서울대 교수, 핵폐기장 서울대 유치 제안
@ 2004년 1월 15일 핵폐기장 관련 부안주민 직접투표 방안 발표
@ 2004년 1월 25일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구성, 2·14 주민투표 공고
@ 2004년 2월 5일 산업자원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공모 공고 안’ 발표
@ 2004년 2월 14일 부안방서성폐기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실시 (투표율 72.01%, 반대 9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