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_발제문] 지속가능한 원전사후처리제도 개혁방안

2005.02.17 | 미분류

지속가능한 원전사후처리제도 개혁방안

                                                                                      석광훈, 녹색연합 에너지정책위원

1. 방사성폐기물과 지속가능성의 문제

1) 방사성폐기물의 특징과 지속가능성의 쟁점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지난 1987년 브룬트란트(Brundtland)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미래세대의 욕구충족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했다. 동위원회는 또한 그 발전의 종류와 상관없이 환경, 사회, 경제적 측면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정의했다(WCED, 1987). 이와 같은 정의는 이후 ‘92년 리우 세계정상회의에서도 남북의 모든 정부 및 비정부기구의 공통된 준거가 되었다. 환경적으로 위해한 방사성폐기물의 관리문제 역시 이와 같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칙에 입각하여 검토되어야 할것이다.

국내의 방사성폐기물은 고준위와 중저준위로 분류 및 관리된다. 국내 상황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의미하며 경수로 원전 1기에서 연평균 약 20톤 정도 발생한다. 여기에 함유된 플루토늄이 99% 정도 소멸하는 기간은 약 1만년, 가장 긴 방사성핵종들까지 소멸하려면 10만년 정도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미국 환경청(EPA)은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시 규제기준으로 최소 1만년 이상 생물권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기준은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이 기준을 공학적으로 실제 충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더욱이 기존의 위험평가방법들은 이 같이 장기간의 공학적 안전을 검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방사성폐기물의 적절한 저장 및 처분을 위한 연구들은 불가피하게 방사능누출 및 오염 위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기술적 불확실성과 낮은 사회적 수용성으로 인해 어느 국가도 아직 고준위폐기물의 영구처분을 시행한 경험이 없다.

중저준위 방폐물은 고준위보다 상대적으로 관리․처분하기 용이한 편이지만, 이에 포함된 플루토늄 등 주요 방사성핵종들이 대부분 소멸하기까지 약 300년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사회저항이 적었던 지난 1960~70년대 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건설 운영한 사례들이 많지만 선진국들의 운영경험에서도 지하수 오염사례가 발생했던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처분에서의 불확실성은 윤리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하며,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세대간 형평성, 소수자 공동체들에 대한 차별, 위험부담자와 편익수혜자간 형평성 문제 등을 일으키게 된다(Stevenson et al., 1991; Kraft, 2000). 1만년 이상의 장수명 방사성 폐기물은 그 관리 및 처분과정에 장기적 환경영향에 대한 우려를 일으킨다. 따라서 방사성폐기물의 관리․처분 정책개발은 해당국가와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를 시험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세대간 형평성 문제는 지속가능성 논쟁의 주요쟁점이므로 궁극적으로는 방사성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자력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글은 지면제약상 원자력 찬반에 대한 토론을 생략하고 이미 발생했고 기존 원전수명이 끝날 때까지 축적될 폐기물의 관리처분에 대한 지속가능한 방사성폐기물의 관리 및 처분 정책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2) 선진국 방폐물 관리처분정책의 초기 패러다임

(1) 사용후핵연료: 습식 중간저장과 핵재처리

지난 1950년대 이후 원전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용후핵연료는 각 발전소의 냉각수조에 저장되어왔다. 애초 이 같은 저장은 핵연료의 고온열을 저감시키고, 작업자들의 방사선피폭을 저감시키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당시 국가들은 이 같은 임시저장 뒤 핵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추출하여 연료로 쓰고, 이때 발생하는 중준위 및 고준위 폐기물은 별도로 처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우라늄 수요증가는 예상을 밑돌았고, 무엇보다도 핵재처리의 안전성 및 경제성문제와 핵무기확산논란까지 대두되면서 선진국의 핵재처리 추세는 사실상 중단되었다(Hippel, 1999). 현재 상업용 재처리를 하는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뿐이며, 영국은 2010년이후 재처리를 중단할 예정이고 프랑스 역시 재처리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핵재처리국가는 최근 많은 논란 속에 로카쇼무라 시설의 가동을 허가한 일본만 남게 된다.

초기 모든 선진국들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방식으로 채택한 원전 부지내 냉각수조 저장은 당장 심각한 기술적 문제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그 방식이 장기저장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운영비용이 비싼 편이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사용후핵연료를 냉각수조에 장기저장할 경우 테러위협에 취약한데다가 핵연료다발에 응축되어 있는 세슘-137 등 방사성핵종의 외부누출위험이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Alvarez et. al., 2003). 실제로 많은 국가들에서 그 대안으로 금속용기나 콘크리트 용기를 이용한 발전소내 중간 건식저장이후 영구처분장으로 이동 등이 검토되어왔다.

(2)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사용후핵연료와 달리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몇몇 선진국에서 실제 건설되어 운영된바 있다. 그러나 이들 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은 대부분 원자력에 대한 기술적 낙관론으로 팽배해 있던 지난 1950~60년대 건설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저준위폐기물 처분장에서는 별다른 방사능오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실제로 지하수 오염 등 환경문제를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 근래에 들어서 선진국의 저준위폐기물 처분장 건설추세는 극히 제한적인 편이다.

2. 정부 방사성폐기물 정책실패의 배경과 문제점

1) 정부 방폐물 정책실패의 본질

흔히들 정부가 지난 19년간 6차례의 중저준위 방폐장 및 고준위방폐물 중간저장시설 부지확에 실패했으므로 방폐장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러나 과연 정부의 방폐물정책 실패가 단순히 부지확보를 못했기 때문일까? 이는 매우 일면적이고 단시안적인 평가이다. 그보다는 과연 정부가 기존 방폐물정책의 구조와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여건변화에 맞게 이를 적절히 재정비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부안사태가 사실상 종결되면서 지난 19년간 총 6차례나 시도했던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조성 사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에 정부는 그동안 불투명하고 성급한 의사결정과 연이은 정책실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방폐물 정책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급조하여 발표한 중저준위 방폐장 우선추진방침은 이해당사자간 합리적 토론과 신뢰구축의 기회를 박탈하고 다시 과거의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중저준위 방폐장 우선추진방침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정책을 추후로 미루었다는 점만 제외할 때, 여전히 부지선정을 모든 정책요소에 우선해서 추진한다는 면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 국제사회의 경험에 따르면 관련 부지 조성은 독립적인 제도확립, 장기간의 연구개발, 사회신뢰구축, 안정적인 관리기금의 확보 등 종합적인 방폐물 정책요소들이 보장될 때 비로소 유효한 요소이다. 부지선정은 이 같은 일련의 정책요소들이 과학적 검증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유기적으로 추진된 결과물로 보아야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부지선정을 하게 되면 곧 방폐물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초기 정부 방폐물 정책요소들의 기반이 되던 기술패러다임, 정치․사회체제, 전력시장여건 등은 지난 19년간 급격하게 변화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따른 방폐물 정책목표의 근본적 재점검과 관련제도의 정비 없이 초기에 설정된 정책모델(부지조성 우선론)을 단순반복적으로 추진해왔다. 이처럼 맹목적인 부지조성 정책은 실제 정부가 챙겨야 정책요소들을 원자력산업계의 이해관계에 의해 조정되도록 방치하여 결과적으로 방폐물 정책의 퇴보와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

2) 20년전 정책결정의 기술적 근거와 타당성

현재 산자부의 집중형 소외저장 방침은 지난 1984년 10월 원자력위원회의 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원칙 수립에 근거한 것이며, 기술적으로는 같은 해 2월 제출된 원자력연구소의 “사용후연료관리 검토보고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KAERI, 1984). 당시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장기 관리수단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습식) 소외저장이후 직접 영구처분, 핵재처리, 재처리후 고속증식로 사용방안 등의 비용을 검토”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직접처분 간 비용평가를 통한 비교에서
1) 단기적으로는 발전소내 습식저장 용량을 확장, 2) 장기적으로 핵재처리의 가능성을 감안한 중간저장 방안의 수립필요, 3)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과 재처리를 위한 기술은 확보되어 있으나 부지확보를 위해 장시간이 요구되므로 시급한 추진이 필요하다(KAERI, 1984: 7-8)”

그러나 기술적 측면에서 핵재처리를 아직 경제적인 것으로 인식되던 시기이고, 건식저장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원자력연구소가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에 대한 검토는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재처리에 대하 경제성 검토는 있으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상업용 재처리사업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론적 수준의 낙관론이 지배하던 상황이었다. 또한 고준위방폐물의 건식저장에 대한 개략적인 검토는 있으나 건식저장이 세계적으로 시범보급단계에 있던 당시 상황에서 실제 적용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영국과 프랑스의 핵재처리시설 운전경험으로 재처리가 사용후연료의 직접처분보다 훨씬 비쌀뿐더러 재처리후 대량 발생하는 중준위 방폐물의 처분문제가 남게 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의 건식저장기술은 1986년 서리(Surry) 원전에 처음 도입된 이후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당시 사용후핵연료의 중앙집중형 중간저장 정책의 기술적 근거들은 현재적 타당성을 잃게 된다.

변화된 안보상황을 검토할 때도 당시의 대안은 타당성을 잃는다. 지난 박정희정권부터 시도되어온 정부의 핵재처리 방침은 지난 1980년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지난 1991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은 물론 지난 1994년 이후 영변 재처리시설로 불거진 남북, 북미간의 긴장 속에서 재처리나 그에 준하는 설비의 건설계획은 매우 위험하거나 비현실적이다.

3) 중저준위 방폐장 우선추진 방침의 문제

중저준위 방폐물의 저장문제는 불요불급하고 전체 원전사후처리사업에서의 비중도 미미하지만 정부는 “원전부지내 중저준위 방폐물 저장용량 2008년 포화설”을 주창하며 중저준위 방폐장 우선추진방침을 세웠다.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을 그 유형에 맞게 분리하여 관리처분정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방사성폐기물정책에 대한 종합적 로드맵 없이 편의적인 발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정부 주장의 배경과 의도를 다음과 같이 검토하고 개선점을 제시하였다.

중저준위 방폐장 추진배경에는 원전지역의 주민수용성 및 원자력에 대한 사회 수용성을 높여 신규원전 건설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발상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오랜 기간 지체되어온 정부 방폐물정책의 성과를 빨리 보여주어 국민적 지지를 얻자는 실용주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9년의 경험을 볼 때 이처럼 “중저준위 폐기장은 쉽게 지을 수 있지 않겠느냐”같은 발상은 비현실적이며, 방폐물 정책의 핵심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만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 더욱이 의도와 달리 부지선정과정에 막대한 사회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결국 신규원전에 대한 사회 수용성만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중저준위방폐장 우선추진은 문턱걸치기기법(the-foot-in-the-door technique)으로서 상대적으로 약한 위험설비를 수용하게 하여 추후 보다 위험한 설비를 용이하게 유치하게 하려는 의혹도 제기될 수 있다. 즉 장차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시설 또는 처분부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에 이들 설비를 추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 있다.

설사 정부가 이와 같은 의도를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밭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지혜를 살려 중저준위 방폐장 우선추진방침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방침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과거와 같은 사회적 저항으로 인한 정책실패는 자명할 뿐더러, 고준위방폐물을 포함한 전체 원전사후처리사업에 대한 정부정책의 신뢰도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3. 선진국의 방사성폐기물 정책현황

1) 방폐물관리를 위한 제도, 기금, 전담기관의 확보

방폐물관리를 위한 독립적인 제도, 기금, 전담기관을 확보하는 선진국들의 방폐물 정책은 부지조성을 최우선시하는 한국의 방폐물 관리처분정책과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제기구들이 밝히고 있는 방폐물로 인한 세대간 형평성 문제의 해결은 부지조성이 아니라 안정적인 기금과 제도를 통해 미래세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현세대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는 논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방폐물 관리처분 기금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OECD의 핵에너지기구(NEA)는 세대간 형평성이라는 윤리적 원칙에서 볼 때 방폐물의 관리처분비용을 포함한 원전사후책무(liabilities)는 그 폐기물을 양산한 세대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들은 각국 정부가 충분한 원전사후처리 기금을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금이 현세대에서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넘겨지게 되는데, 그 원인으로 원전사업자의 비용과소산정, 원전의 조기폐쇄, 원전사업자의 파산 또는 인수합병, 태만․무지 등이 지적된다(OECD NEA/RWMC, 2003).

따라서 국제기구들은 각국 정부에게 원전사후책무의 명확한 규명을 통해 원전사업자들이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적절히 공급해왔고 또 공급하고 있는지를 검증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이들은 기금이 적립되고 관리되어 적절한 시기에 지출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적절한 기금관리구조를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를들어 유럽연합은 근본적으로 폐로 및 방폐물처분 예산을 원전사업자의 회계에서 분리된 기금(segregated fund)화를 지향하고 있다(Taylor, 2003, European Commisssion).

이처럼 선진국들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기금과 제도의 확보상황을 검토해보았으며, 다음으로는 선진국들의 중단기적인 고준위 및 중저준위 방폐물의 관리정책을 검토하겠다.

2) 고준위 방폐물 중간저장 및 처분정책

2003년 현재 세계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은 약 255,000톤(tHM)에 이르며, 원전의 가동으로 인해 매년 약 12,000톤이 추가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 기존에 건설되어 있는 원전부지내 냉각수조에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은 원전부지내 습식저장의 한계로 인해 건식저장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한 7개국에서 계획중인 원전부지내 건식저장 전환용량은 총 57,000톤에 이른다(Fukuda et. al., 2003).

상기한대로 초기의 사용후핵연료 원전부지내 저장방식은 냉각수조에 보관하는 이른바 습식저장이다. 그러나 선진각국이 원전의 냉각수조가 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원전부지 이외의 저장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금속 및 콘크리트 용기를 이용하는 이른바 건식저장방식이 개발되었다. 현재 우리처럼 중간저장시설의 건설이 쟁점일 때 선택해야할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의 보관을 습식 저장수조에 해야 하는가, 아니면 건식시설에 해야 하는가이다. 건식저장은 세부적으로 금속용기, 시멘트격납고 등 5가지 기술을 통칭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금속용기를 이용한 저장방식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건식저장의 초기자본비용은 높은 편이지만, 습식저장에 비해 추가적인 운영비용이 적고 기술적으로 용이하다. 이러한 장점때문에 최근 세계 각국의 원전 사업자들은 건식저장을 선호하며, 정책적으로도 그 융통성, 안전성, 저렴한 장기운영비용으로 인해 권고되고 있다(Project on Managing the Atom, 2003). 재처리를 하지 않는 선진국들 대부분은 중앙집중형보다는 각 발전소 부지별로 이른바 소내 건식저장정책을 선택하였다.

방사성폐기물 장기관리는 국민건강 보호, 생태계 보전, 핵확산방지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지하 심층처분이 불가피하다. 지난 1990년대까지 선진국들의 주요 논쟁은 세계 각국이 영구처분장 부지선정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과 환경 위험을 감안할 때 얼마나 빨리 영구처분을 할 수 있겠는가에 집중되어졌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추진하는 미국조차 애초 1998년 준공계획과 달리 안전규제 문제, 기술적 제약 등으로 인해 2015년까지도 준공이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Nuclear Fuel, 2005.1.28).

이에 따라 많은 분석가들은 역으로 건식저장을 통해 숙의적인(deliberate) 정책개발 여건을 마련하고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하고 기술적으로 바람직한 영구처분방안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제공할 것이라고 제기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건식저장으로의 중간저장방식 개선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의 연구개발과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필요한 20~30년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Kraft, 2000).

건식저장을 도입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과 전기사업자들은 기존의 원전 부지내에서 저장방식을 전환하는 소내저장을 택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전기사업자들이 인디언 보호구역인 유타주 스컬벨리(Skull Valley)지역에 소외건식저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소수인종차별이라는 비난과 함께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재처리를 하지 않는 국가들중 스웨덴이 유일하게 소외습식저장을 하고 있으나, 이는 스웨덴 정부와 시민사회간 원전폐지 합의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물로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다.

핵재처리를 추진해온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이 재처리전 임시보관형태로 재처리시설에 습식저장을 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 사용후연료 중간저장시설의 사례로 잘못 알려져 왔으나, 이들 시설은 재처리를 위한 단기간의 냉각시설일 뿐이다

(1) 캐나다 사례

캐나다는 지난 1996년부터 토론토주의 피커링(Pickering) 원전내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해왔으며, 2007년경에는 달링턴(Darlington) 원전에서 동일한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캐나다는 이와 같은 소내 건식저장 이후 2020년대에 별도 부지를 확보하여 영구처분을 추진할 예정이다.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구(WMO) 주도로 영구처분에 대한 장기 연구개발을 하고 있으나 성급하게 처분장 부지선정 단계에 들어서기 전에 기술의 선택과 부지조성원칙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할 예정이다. 도입기술에 대한 합의는 다중방호시스템, 시민안전, 환경보호 설계 등을 검토하게 되며, 부지조성원칙에 대한 합의는 세대간 형평성, 위험과 편익의 공간적 분배,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방안, 신뢰, 정책결정의 불확실성 등을 검토하게 된다(Allan, 1993; Kraft, 2000).

(2) 독일 사례

독일 연방정부는 지난 2000년 해외위탁 재처리사업 중단결정과 함께 핵폐기물 장거리 수송으로 인한 여론반발과 비용상승을 야기해온 소외저장정책을 중단하고 원전사업자들에게 소내(건식)저장을 허가하였다. 독일은 아직 저장용량의 90%가 남은 고어레벤(Gorleben)과 아하우스(Ahaus) 소외 중앙집중형 저장시설로의 사용후핵연료 수송을 2005년부터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소외 중앙집중형 저장시설도 만약 동일부지에 영구처분장이 들어선다면 수송부담을 줄이는 최선책이지만, 해당부지를 영구처분장으로 결정하려면 장기간의 기술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내저장방식이 수송으로 인한 환경 및 사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판단한 것이다(Thomauske, 2002).

이에 따라 원전사업자들은 지난 2002년 엠스란트(Emsland) 등 3개 원전부지에서 소내건식저장을 도입했으며 나머지 9개 원전부지에서 소내건식저장 도입을 위해 지자체들과 협의중이다. 애초 독일정부는 이들 건식저장설비의 수명제한을 하지 않고 허가했으나, 원전지역주민들이 자칫 소내 중간저장이 영구처분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수명을 40년으로 제한하였다.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은 기술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2030년경 준공을 목표로 추진될 예정이다(Thomauske, 2002).

(3) 미국 사례

미국에서는 ‘92년 준공목표로 네바다주 유카(Yucca)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이 추진되었으나 네바다주정부와 폐기물 수송로 인근 주정부들의 반대로 불투명해졌다. 이에 따라 민간 사업자들은 자체적으로 소내건식저장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유카처분장이 건설되더라도 처분용량의 한계로 인해 결국 미국의 핵폐기물 관리정책은 당분간 소내건식저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Macfarlane, 2001). 미국은 지난 1986년 버지니아주 서리(Surry)원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8개의 원전부지에 소내 건식저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15개의 원전 부지가 추가될 예정이다(NRC, 2002).

3)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처분정책

(1) 유럽연합

유럽연합에서 근래에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추진한 국가는 스웨덴, 스페인, 핀란드, 프랑스 등이다. 스웨덴은 지난 1988년 포스마크 원전에 인접한 처분장을 건설하였으나 이는 앞서 1980년 원자력 폐지에 대한 국민합의 이후 연속선상의 조치로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다. 핀란드는 기존 2개의 원전부지내에 천층처분장을 각각 1992년, 1998년 건설하여 각 원전별로 폐기물을 처분하고 있다. 프랑스는 현재까지 로브(l’Aube) 처분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 역시 2020년 처분장 수명종료로 현재 또다른 처분장을 물색중이다.  

이에 반해 스위스, 영국 등은 한층 민주적이고 숙의적인(deliberate) 정책으로 처분사업을 추진하는 경우이다. 스위스는 애초 2016~2068년이라는 길고 안정적인 시간표를 두고 처분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 1993년 방폐물 전담기구인 NAGRA는 Niwalden주의 Wellenberg 지역을 후보부지로 제안하고 이에 대한 지질탐사신청을 주정부에 신청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주단위 주민투표(1995년, 2002년)에서 거부당하였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는 이 같은 반발을 강압적으로 무마시키기보다는 장기 중저준위폐기물사업을 재점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별도의 중저준위 방폐장을 두지 않고 다만 집중형 저장시설만을 운영하고 있으며 처분장 건설을 위해 지역사회 등 이해당사자간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과거 구동독 등에서 추진된 중저준위 방폐장은 있으나 근래에 들어 별도의 처분장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

(2) 북미지역

① 캐나다

캐나다의 경우 지난 1974년부터 브루스(Bruce) 원전부지 내에 중앙집중형 중저준위 방폐물 저장고를 운영할 뿐 처분장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처분장의 건설을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정책타당성검토를 하고 있으나 처분장 건설목표를 2034년으로 잡고 이해당사자들의 안정적인 참여와 토론이 보장된 가운데 추진되고 있다.

② 미국

가. 초기 처분장들의 지하수오염과 폐쇄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처분된 저준위폐기물은 드럼 등에 담겨져 천층(淺層) 형태, 즉 지표면으로부터 얕게 매립되어왔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건설된 총 6개의 저준위폐기물 처분장중 3개가 환경문제를 일으켜 폐쇄되었다. 이 문제의 부지들은 웨스트 벨리(West Valley, 뉴욕주), 맥시 플랫(Maxey Flats, 켄터키주), 셰필드(Sheffield, 일리노이주)로서 지하수가 처분장 매립지로 흘러들어 방사성핵종이 주변을 오염시킨 바 있다. 지난 1962년 문을 연 맥시 플랫 처분장의 경우 가장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지난 1974년 켄터키주 환경보고서는 플루토늄을 포함한 방사성핵종이 맥시 플랫 처분장으로부터 수백미터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 처분장을 건설한 네코(NECO, Nuclear Energy Company)사측은 지표 밑에서 플루토늄의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미국 환경청(EPA)은 1975년 보고서에 지층샘플, 감시용 우물, 하천에서 플루토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EPA 보고서는 맥시 플랫 처분장이 애초 “플루토늄이 반감기(24,000년)동안 불과 1인치도 못 움직일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실제로는 “10년 이하의 기간에” 플루토늄이 외부로 이동했음을 확인하였다(EPA 1975; Makhijani & Saleska 1992).

결국 켄터키주는 지난 1977년 맥시 플랫을 폐쇄한 뒤, EPA 등으로부터 막대한 기금을 지원받아 처분장 보수작업을 벌여야 했다. 이와 유사한 방사능 지하수 오염사례들이 폐쇄된 다른 처분장들에서도 발생하였다. 상기한 대로 저준위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에 비해 농도가 낮은 편이지만 주요 방사성핵종이 충분히 소멸되려면 약 3백년 정도 소요되므로 가동된 지 10년 만에 발생한 지하수 오염문제는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남겼다.

나. 최근의 상황

현재 미국에서 운영중인 처분장은 반웰(Barnwell,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인바이러케어(Envirocare, 유타주), 핸포드(Hanford, 워싱턴주) 등 3곳이다. 그러나 핸포드 처분장의 경우 우라늄광산과 군수시설의 방폐물을 처분하고 있으며, 인바이러케어의 경우 방폐물 반입을 가장 낮은 준위로 제한하고 있어, 결국 한국이 추진하려는 방폐장과 유사한 곳은 반웰 처분장뿐이다.

지난 1970년대부터 운영중인 반웰처분장은 그동안 미국 전역에서 방사성폐기물을 반입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방폐물정책에 따라 향후 원전을 운영하는 42개주들은 지역별로 10개의 연맹(Compact)을 구성해서 지역별로 방사성폐기물을 관리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반웰처분장도 2008년부터는 대서양연맹 3개주(코네티컷, 뉴저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폐기물만을 반입하게 되고 나머지 주들 대부분은 별도의 처분장이 건설되지 않는 한 발전소내에 폐기물을 보관해야 한다(NRC, 2002).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배경은 미국이 지난 1960년대에 무분별하게 건설․운영했던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들에서 방사능누출오염을 겪으면서 저준위 폐기물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심화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선진국들이 저준위폐기물 처분장 운영경험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안전하게 운영된다는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최근 정부에 의해 거론되고 있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별도 추진론”도 신중한 정책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4. 방사성폐기물사업의 도덕적 해이와 체제개혁 필요성

앞장에서 살펴본 바대로 선진국들은 처분장 부지조성(고준위, 중저준위를 막론하고)은 그동안의 경험속에서 많은 시간을 두고 연구개발과 사회합의를 통해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원자력행정 체제에서는 원자력산업계의 이해관계와 특정부처의 정책목표로 인해 방사성폐기물 정책과 예산이 왜곡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외에도 국회 등의 감시하에 독립적인 방폐물관리 제도, 예산, 전담기구의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1) 방사성폐기물사업과 도덕적 해이

현재 국내 방폐물 사업(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 중저준위 처분)은 지난 1996년 제245차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추진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원전사업자는 합리적 경제주체로서 원전의 경영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방폐물과 관련된 비용을 가능한 한 미래로 미루려는 경향성을 갖는다(Mackerron & Sadnicki, 2001). 이러한 경향성은 국민들이 전기요금을 통해 지불한 준조세성격의 원전사후처리충당금을 한수원이 전액 원전건설에 전용하는 관행에서도 드러난다.

(1) 방폐물 관리처분 연구개발의 왜곡

이러한 이해관계로 인해 한수원이 시급한 방폐물 처분부지 조성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용후핵연료의 관리처분에 필요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련 연구개발은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통해 진행되고 있고, 한수원은 원․연측에 연평균 1,600억원의 원자력연구기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이는 신형원자로 개발 등에 투자되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예산이다.

이로 인해 원자력연구소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처분 R&D를 위해 투자하는 실제 예산은 인건비를 포함하여 약 50억원(2005년 기준) 수준이다. 그나마 인건비를 제외할 경우 직접 연구비는 불과 17억원 수준으로 연구수준은 문서업무 정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연구에는 방사성핵종실험실, 지하실증실험 등 막대한 인프라와 연구예산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방폐물 예산을 원전사업자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수원 산하 원자력환경기술원이 추진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중저준위 방폐물의 처분문제는 불요불급함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다. 불과 수백평 규모의 저장고만 추가하면 해결될 중저준위 방폐물 관리문제가 당장 처분장이 필요한 것으로 홍보하고 심지어는 “해상수송”이나 “유리화”까지 하겠다는 한수원의 계획은 원자력학계로부터도 도덕적 해이로 비판받고 있다.

(2) 원전사후처리예산과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왜곡

① 원전사후처리예산의 원전사업자 전용문제

원전사업자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중저준위 및 고준위 방폐물 관리처분, 수명종료 원전의 폐로를 위해 매년 원전사후처리충당금(현재까지 5조6천억원)을 적립해야 한다. 그러나 충당금성격의 이 예산은 사업자인 한수원의 내부회계에 잡혀져 있어 전액 신규원전 건설비로 투자되고 있다.

한수원은 원전사후처리예산 전용 근거로서 신규원전 건설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해 부채를 조달할 경우 발생하는 높은 이자율을 회피하게 되어 전기요금을 저렴하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명종료 원전의 폐로나 방폐물 처분은 미래에 발생하므로 필요할 때 지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방폐물 처분이나 폐로는 사전에 오랜 기간의 안정적 연구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전사업자가 이를 경영목적으로 운영할 경우 연구개발 예산의 적시 지출이 어렵게 된다. 원자력연구소의 사후처리 연구개발 지원수준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원전사업자의 부채경감으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유지한다는 논리 역시 결국 현재 전기소비자의 비용부담을 미래로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해명이 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제기구들의 경고처럼 원전사업자가 사후처리예산을 운영할 경우, 비용의 과소산정, 전력시장의 불확실성(인수합병, 도산), 원전의 조기폐쇄 위험으로 인해 예산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된다.

② 사회적 수용성 및 입지요소에 대한 공공기금 지원문제

산업자원부는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명목으로 공공사업지원을 위한 마련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3,000억원을 지출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방폐장의 입지여건은 원전사업자의 몫이자 경쟁요소로서, 이에 대한 공공기금의 지원은 발전시장의 공정경쟁을 저해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당국은 부처의 정책목표와 인력부족 등으로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적절히 규명하고 규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정부당국 스스로 – 과기부는 한수원에게서 원자력연구기금을 받고 있고, 산업자원부는 신규원전에 대한 주민수용성을 높여야하는 입장으로 인해 – 방폐물사업을 공정하게 규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다.

2) 정부의 기형적인 원자력행정체제

한국의 원자력산업은 여타의 발전설비와 달리 냉전체제부터 군사안보의 측면이 강조되었고 그만큼 정부의 차별적 보호와 지원을 받아왔다. 담당부처인 산업자원부나 과학기술부의 영역을 넘어 총리가 위원장이며, 4개부처 장관이 당연직위원으로 참여하는 원자력위원회의 존재 자체는 그만큼 원자력의 특수한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특이한 원자력정책결정구조는 원자력산업에 대한 정부규제가 독립성과 투명성을 갖추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원자력산업과 관련한 경제적 측면의 정책과 규제는 산자부가, 원자력기술 R&D와 안전규제는 과기부가 맡고 있다. 그러나 두 부처 모두 정책추진부처이자 규제자라는 혼돈스러운 지위와 전문성 부족으로 경제성과 안전성 각각의 측면에서 적절한 규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과거 원자력의 초기개발과정에 국가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설정한 정책결정구조였지만, 이미 원자력이 한전의 주력전원으로 성장한 상황에서도 개선시키지 않은 채 온존시켜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사례를 볼 때, 미국 역시 지난 1950년대 원자력을 집중육성하기 위해 조직된 원자력위원회(AEC)가 안전규제기능까지 맡은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원자력위원회의 이중적 지위로 인한 규제왜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1974년 이를 원자력개발부처인 에너지부(DOE)와 안전규제기관인 핵규제위원회(NRC)로 분리해체시켰다. 또한 미국은 에너지부외에 공익규제위원회(PUC)를 통하여 원전사업자로부터 전기소비자의 경제적 권익을 보호하는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과기부와 산자부 각각의 지위가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원자력개발 초기단계의 촉진기구인 원자력위원회까지 상존하고 있어 원자력 개발행정의 권능이 규제행정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자력위원회는 최근의 부안 핵폐기장 사태는 물론 지난 19년간 정부 핵폐기물 정책의 혼란을 가져온 최종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차례도 정책실패에 대한 적절한 책임추궁이나 정책 타당성 검토조차 받지 않아왔다.

3) 국가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체제의 개혁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많은 정책에서 “참여와 합의”가 강조되고 방사성폐기물 정책과 관련하여서도 지난 2004년 상반기 이른바 “에너지 민관포럼”이 구성된바 있다. 비록 중도에 무산되었다 하더라도 이 같이 합의에 입각한 정책추진 원칙은 과거의 일방주의적 정책추진방식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방사성폐기물 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합의의 기본 전제인 상호신뢰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방사성폐기물 사업을 원자력사업자와 관련부처로부터 분리하여 별도의 국가 방폐물관리기구를 통해 운영하도록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상기한대로 기존체제에서는 원전사업자의 도덕적 해이와 기존 주무부처의 규제포획과 위상혼재로 인해 국민안전과 직결된 방폐물 관리사업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로 미국, 영국, 일본 등은 방사성폐기물사업을 원전사업자나 원전정책 부처로부터 분리하여 보다 중립적인 국가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하게끔 하고 있다.

또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그동안 원자력법과 전기사업법에서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는 방폐물 관리사업을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제정을 통해 기존의 원전경영으로 인해 왜곡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현 원자력법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경우 산자부장관과 과기부장관이 협의하여 정책을 결정하도록 되어있어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구의 독립성, 전문성 확보와 사용후 핵연료의 장기적인 국가대책 수립 관련 법체계 정비 시급하다.

장기적인 방사성폐기물 안전 관리 및 처분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원전사업자의 편의에 맞춘 원전사후처리충당금이 아닌 기금화가 시급하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 및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관리․ 처분 관련 전담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관련 연구개발에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 및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 관리 및 처분 관련하여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전담 연구기관의 설립도 필요하다. 관련 연구개발을 위해 기금의 일부를 배정하여 정부원전정책이나 원전사업자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5. 중․ 단기 방사성폐기물 정책대안

1)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대안

지난 19년간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기존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 4개 원전 부지외에 별도로 조성된 부지를 통한 집중형 소외저장이다. 그러나 이미 민주화와 지방자치가 진척된 상황에서 과거 군사정권에서나 건설이 가능했던 4개 원전부지 외에 새로운 부지를 확보하여 폐기물시설이나 신규 원전을 건설한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신규원전 역시 신규부지가 없어 기존 4개 원전부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중앙집중형 저장방식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핵폐기물수송의 안전 및  경제성에 있다. 원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매년 여러차례 중앙집중 시설로 항만수송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상사고위험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국내에 원전 20기가 건설되는 동안 지난 1992년 영광 4호기 원자로설비를 수송하던 선박이 영광원전 방파제에 충돌침몰하는 사고발생한 바 있다. 더욱이 당시 침몰한 원자로 설비의 인양작업이 악천후로 무려 6일이나 소요된바 해양사고시 수습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폐기물 수송으로 인한 저장비용 증대문제 역시 심각하다. 한수원(주)이 지난 2002년 서울대, 과학기술원 등에 의뢰한 사용후핵연료관리비용 비교연구에서 소외저장은 소내저장에 비해 약 40% 비싸다는 결과가 제출되었다. 이 같은 비용상승의 원인은 각 원전부지에서 중앙집중형 중간저장시설로의 수송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다 정밀한 연구를 할 경우 이보다 더 상승할 것이다(이건재 외, 2003). 이와 유사하게 2003년 일본전기사업연합회가 발표한 사용후핵연료 중앙집중형 저장방식에 대한 비용조사결과는 수송비용이 저장시설의 건설․운영비 10조1천억 원과 같은 수준인 9조5천억 원이다(朝日新聞 2004.5.21).

더욱이 중앙집중형 저장시설은 20~30년 후 다시 영구처분장을 확보하여 이동해야 하는데 관련 부지를 이중으로 선정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국가 행정력 소진을 추가하게 된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중앙집중형은 안전성이 개선되지 않은 채 동에서 서로, 또는 서에서 동으로 불필요한 수송횟수만 늘릴 뿐이다.

2,3장에서 상기한 대로 방폐물 기술패러다임의 변화와 사회민주화가 진척되었으므로 지난 1980년대 결정된 방침은 그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건식저장기술은 과거 습식저장기술의 제약으로 갖지 못했던 정책자유도를 높여주었고, 그만큼 민주화가 진전된 사회의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무분별한 사용후핵연료의 이동보다는 건식저장을 통해 기존 원전부지내 저장용량을 확보함으로써 사용후핵연료의 장기적인 처분정책을 안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2) 중저준위 방폐물 정책의 대안

현재 국내 중저준위폐기물은 60만~100만평 규모의 기존 원전 부지내 600평 규모의 임시저장고(1~2개)에 저장되어 있으며, 향후 2~4개 저장고(원전부지면적의 0.5% 소요)를 추가하면 원전수명이 종료될 때까지 충분히 저장이 가능하다. 미국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성급한 폐기장추진은 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라 할지라도 환경위험을 증대시킨다. 따라서 무의미한 사회갈등만 일으키기보다 원전사업자의 자율규제로 운영하고 있는 발전소내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고에 대한 안전규제조항을 도입하여 주민신뢰를 확보하고,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및 처분정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검토 및 결정에 따라 중저준위 폐기장 부지를 결정해야할 것이다.

* 위 발제문은 지난 2005년 2월 1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가 방사성폐기물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 주요 발제문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