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2] 방폐장 갈등, 주민투표가 최선인가?

2005.10.11 | 미분류

[토론문 2]

방폐장 갈등 주민투표가 최선인가?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경주, 군산, 포항, 영덕에서 방폐장 부지선정 갈등은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같은 시․군 안에서 방폐장 입지 예정지역 주민과 그 밖의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이 그 첫 번째다. 경주시는 양북․양남․감포 지역과 그 밖의 지역, 포항시는 죽장․청하․송라․기북 지역과 그 밖의 지역, 군산시는 나운․소룡․대야․성산 지역과 그 밖의 지역, 영덕군은 모든 읍면에서 주민들이 찬성․반대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두 번째는 방폐장 유치 시․군과 이웃 시․군 간의 갈등이다. 군산시는 서천군과, 경주시는 울산시와, 포항시는 청송군과 방폐장의 안전성, 경제적 지원의 형평성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부에서 지역갈등의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은 주민투표 방식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주민투표야말로 민주주의 제도에 충실한 사회적 합의절차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주민투표법 24조를 보면 투표결과는 유권자의 3분의 1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의 2분의 1 이상의 득표로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 유권자의 17%만 찬성해도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년 동안 끌어온 방폐장 갈등이 17%의 찬성으로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로 유지되는데 17%의 찬성은 다수결이 아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전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유권자의 과반수 투표,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경주시 양북․양남․감포, 포항시 죽장․청하․송라․기북, 군산시 나운․소룡․대야․성산, 영덕 주민들을 비롯해서 방폐장 예정 부지와 인접한 울산시, 청송군, 서천군 주민들에게 방폐장 문제는 헌법 개정 못지않은 중요한 문제다.

이것을 17%의 찬성으로 결정하고,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투표권도 주지 않는 것이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을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주체로 보는 주민투표라면 적어도 방폐장 예정 부지 인접지역의 주민들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하고, 이웃 시․군 주민들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이렇게 해야 반대의견을 설득할 수 있는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반대하던 주민과 환경단체들도 투표결과에 승복할 명분이 생긴다.

정부도 이점을 우려해서 4개 시․군의 유치경쟁을 통해 투표율과 찬성률을 높이려 하고, 해당 지자체들은 공무원을 동원하거나, 읍․면․동 단위로 유치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홍보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9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다. 홍보의 주체가 방폐장 사업자와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바뀌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설득과 홍보의 대상이다.

사업자와 중앙정부 대 주민과 환경단체의 갈등구조가 중앙정부와 지자체대 주민과 환경단체로 바뀌었지만 갈등 해결방식에서 대화와 타협은 여전히 배제돼 있다. 공공기관이 당사자인 사회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이 대화의 주체가 되는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을 활용하는 내용의 갈등관리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정부가 방폐장 갈등은 이 방식의 예외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방폐장 갈등의 핵심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과학기술적 안전성, 위험부담의 형평성, 추진절차의 공정성 등 방폐장 문제의 주요쟁점들에 대한 정부의 주장과 약속을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불신하기 때문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방폐장 특별법에서 사용후 핵연료 등의 고준위 폐기물을 분리하고, 부지 선정은 주민투표로 결정하며, 3천억 원의 특별지원금과 각종 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약속들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특별법의 제정으로 안전성과 형평성에 대한 불신은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해도 절차의 공정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17%의 찬성으로 결정하는 주민투표 방식은 민주주의 원리의 다수결도 아니고 사회적 합의절차로 보기도 어렵다. 반대하는 주민과 환경단체들에게 투표결과에 불복하는 명분만 줄 수 있다. 방폐장 부지 인접 주민들의 한 표와 도심 주민들의 한 표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방사능 오염의 영향권에 있는 이웃 시․군 주민들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행정편의적인 주민투표 방식으로 부지 선정을 강행하게 되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지고 오히려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주민투표는 주민참여 방식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 3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방폐장특별법’)의 국회 심의과정에서 주민투표에 관한 제7조를 신설한 것으로 절차의 민주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10년 전에 제정한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폐기물처리장설치법’)의 주민참여 절차와 비교해 보면 방폐장 특별법의 부지선정 절차는 주민을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민기피시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법의 주민참여 절차는 <표>와 같다.

내용을 보면 첫째, 폐기물처리장설치법은 주민들이 기피하는 시설의 입지를 결정하기 위해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운영하지만, 방폐장특별법은 산업자원부장관의 자문기관으로 주민참여가 배제된 ‘부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둘째, 폐기물처리장설치법은 입지 후보지 타당성 조사과정을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가 주도하며 조사계획, 조사과정, 조사결과를 주민들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으로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비해, 방폐장특별법은 조사결과를 공개한다는 규정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다만 설명회 또는 토론회를 1회 이상 개최하고 반대자를 1인 이상 토론자로 선정한다는 규정만 있다.

셋째, 방폐장특별법은 유권자의 1/3 이상 투표와 1/2 이상 찬성으로 부지를 선정하지만, 폐기물처리장설치법은 부지선정에 관한 주민투표 규정이 없다. 다만 후보지 입지타당성 조사과정에서 간접영향권에 거주하는 세대주의 1/2 이상이 유치를 희망하면 그 지역에 대해서만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는 규정(제9조 제5항)으로 보아, 폐기물처리장에 대해 주민투표를 한다면 적어도 유권자의 1/2 이상이 찬성해야 부지선정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넷째, 방폐장특별법은 시설 주변의 환경영향지역 설정에 대한 규정이나 후보지 인접 시․군과 사전협의에 관한 규정이 없지만, 폐기물처리장설치법은 시설 주변지역을 직접영향권과 간접영향권으로 나누고, 처리장과 2km 이내에 인접한 시․군과 사전협의를 의무화하고 있다.

다섯째, 방폐장특별법은 운영과정에서 정부가 약속한 시설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주민감시기구에 관한 규정이 없지만, 페기물처리장설치법은 주민지원협의체가 추천한 주민감시요원들이 반입 폐기물의 적정처리 여부, 환경오염 방지시설의 정상 가동 여부, 주변 환경오염 실태조사 과정의 확인 업무 등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정에서 버리는 생활쓰레기를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시설을 설치할 때는 이와 같이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생활쓰레기 처리시설보다 몇 배 더 위험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부지 선정절차는 주민참여를 배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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