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희망 / 매향에 담긴 새만금 갯벌의 염원

2001.10.22 | 미분류

게시일 : 2000/07/07 (금) PM 06:14:16 조회 : 540

매향에 담긴 새만금 갯벌의 염원

허욱 / 녹색연합 시민참여팀

새만금 전시관과 길게 뻗은 물막이용 방조제가 있는 서두터에는 음산하고 적막한 기운이 휘감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고 희뿌옇게 동트는 새벽, 매향비 제막식이 있는 ‘바람모퉁이’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작은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과 여러 환경단체 회원들이 참가해 만경·동진강의 하구 갯벌을 살리기 위해 매향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매향제는 널리 알려진 의식은 아니지만 그 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매향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원과 바램을 담아내는 행사이다. 매향(埋香)은 바닷가에 향나무를 묻는 의식으로 민중들이 현실적인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의한 염원으로 미륵신앙과 결합한 것이다. 미륵신앙은 현실을 떠난 정토가 아니라 현세 위주의 구세기복 신앙으로 이 땅에 도래하는 미륵과 함께 부활하여 정토에 왕생하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새만금으로 불리는 만경·동진강의 하구 개벌에 향나무를 묻는 것은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갯벌이 절대로 육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향비 제막식에 이어 황포를 걸쳐 입은 여섯 명의 상주가 차례로 예를 올리고 정성껏 닦은 나무를 상여에 올리면서 매향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매향비가 있는 바람모퉁이에서 해창갯벌로 이어지는 2㎞ 남짓한 거리를 풍물과 부적, 상여와 만장이 줄지어 행렬을 이루었다. 부안사람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환경단체 회원 500여명이 하나로 어울어진 행렬이었다.
꽃상여와 만장의 행렬은 더디었다. 진종일 눈보라와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새만금의 오늘을 증명하는 어두운 현실을 뚫고 이어지는 행렬은 고난에 찬 길이었다. 새만금전시관 앞에서의 노제 후 방조제로 향하는 행렬은 눈을 뜨지 못할 만큼 세찬 눈보라와 싸워야 했다. 혼자서는 만장을 곧추 세우기조차 버거워 여럿이 힘을 보태야 했다. 상여와 만장의 행렬은 눈보라 속에 핀 꽃과 같았다. 펄럭이는 만장과 비장한 행렬은 새만금간척사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물리치고 나아가는 살림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역경이 사람을 단련시키듯 힘겨운 일정은 원망과 좌절보다 결의와 희망을 던져 주었다. 바닷가의 매서운 칼바람과 들이치는 눈보라도 매향제의 취지를 꺽지 못했다. 계획한 모든 일정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매향의 의식과 내용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부안 사람들이 마련한 점심을 마치고 해창갯 벌에서는 매향제 기념식과 진혼굿이 진행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막아내고 뭇생명들과 갯사람들의 삶터를 보전하기 위한 각단체 대표들의 발언과 매향에 앞서 원혼을 불러내고 기원을 담는 진혼굿 판이 갯벌 위에서 벌어졌다. 매향을 할 갯벌 주변으로는 수많은 만장이 펄럭이고 부모를 따라 매향제에 참가한 어린 아이들은 센바람 속에서도 연을 띄었다.
하늘은 변화무쌍하여 눈보라가 휘날리다가 이내 걷치고 다시 몰아치고를 거듭하였고 그때마나 뭉툭하게 잘려나간 해창석산과 멀리 사라져버린 가력도의 모습이 비쳤다 사라지곤 하였다. 생명을 가두는 방조제 안으로는 꿈틀대며 살아 흐르는 눈발들이 떠돌았다.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이룩하는 허울좋은 개발의 성과를 덮어버리려는 듯 진종일 눈발이 휘날렸다.
매향제 준비위원장인 신형록씨가 제문을 읽어나가면서 매향제는 절정으로 흐르고 있었다. 상여에서 향나무가 내려지고 모든 억압을 풀어내듯 흰 천을 가르며 매향의 행렬이 출발하면서 갯벌에는 신명의 마당이 펼쳐졌다. 매서운 바람과 꽁꽁 언 손발도 아랑곳 않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술렁거렸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좋다’를 연발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좋은 내용이 좋은 그림을 남기듯 눈발과 만장과 사람들이 하나로 어울러져 해창갯벌에 가득한 어둠의 그늘을 걷어내었다.
드디어 하향. 질퍽한 갯벌에 발을 빠뜨리며 사람들이 둘러서고 매향은 대미를 장식하였다. 진정 새만금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지 않고 천년 후의 그윽한 향을 가진 침향을 거두어야 하리라. 세상의 번뇌와 그으름을 없애고 마음의 병을 걷어낼 수 있는 침향이. 온누리의 어우러짐의 난장을 밝혀줄 침향이.
매향제를 마치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속으로 흩어졌지만 매향제의 기억만은 흩어지지 않았다. 모두 함께 성대한 뒷풀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행사는 저마다의 가슴에 뿌리깊게 남을 것이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엄혹한 눈보라를 뚫고 하나의 뜻과 기원을 담아 매향제를 치루어낸 기쁨은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더러는 혹독한 날씨를 원망하기도 했겠지만 눈보라치던 날씨는 이번 매향제의 백미였다. 매향제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기에 가장 적절한 날씨였으며 새만금간척사업 저지를 위한 결의를 담기에도 충분한 날씨였다. 부안사람들에게는 매향비를 지나면서 특별하고 짜릿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며 어려움을 이기며 함께 행사를 치뤄낸 모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큰 울림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갯벌 보존의 의지는 꺽일 수 없는 대의이다. 갯벌을 살리는 것은 많은 생명과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와 고의 조사보고(1991)에 의하면 만경·동진강의 하구 갯벌에는 총 2목 2아목 14과 371종의 저서규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생물자원의 보고이다. 또한 만경·동진강의 하구 갯벌은 수많은 철새들의 도래지기도 하다. 한번 파괴된 갯벌은 다시 복구할 수 없다. 새만금간척사업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전형적인 사업이며 뭇 생명의 무덤위에 세우는 마천루다. 죽음의 향연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매향제는 죽어가는 모든 생명를 살리는 기원이 담긴 행사이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무모한 간척사업을 뒤엎고 아름다운 갯벌을 영원히 보전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의 출발을 의미한다. 갯벌을 살리는 것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녹색희망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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