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빨리 가고 싶으면 빨리 죽어버려!

2002.03.06 | 미분류

– 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범불교도 결의대회

글 사진 / 이혜영 (「작은것이 아름답다」 글모듬지기) mamuri@greenkorea.org

“세상이 자꾸 빨라지고 있어요. 점점 속도를 내서 어디까지 가겠다는 거야. 20분 먼저 갈려고 북한산을 다 망치겠다니. 그렇게 빨리 가고 싶으면 빨리 죽으면 될 거 아니야!”

사진설명 / 스님들과 불교도들의 함성이 조계사 마당을 가득 메웠다.

정대스님의 목소리가 조계사 마당을 쩌렁쩌렁 울린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하라는 사자후가 아직도 선연한 조계사 마당에 스님들과 대중들이 이렇게 야단법석으로 모여든 까닭은 ‘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해서다.

산을 떠나 불교를 연상할 수 없을 만큼 산은 그대로 가람이며 한국 불교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물질주의와 서구자본주의 가치를 내세운 무분별한 개발은 깊은 산속까지 그 손길을 뻗쳐 우리의 금수강산 어디고 파헤치니, 그 붉은 살을 드러낸 흙과 무참히 잘려나간 나무와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짐승들의 신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전국 각지의 전통사찰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훼손당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개발의 명분과 논리의 대부분이 지자체 실시 이후 열악한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관광개발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사진설명 / 차가운 날씨에도 조계사 앞 도로에서 드린 비구니 스님들의 1000배는 1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지난해 실상사 주변의 지리산댐 건설계획과 전국 30개의 댐 건설계획의 발표는 자연을 사랑하는 국민들과 불교계를 경악하게 했다. 이어서 가야산 국립공원 해인사 59호선 도로 관통계획, 북한산국립공원 관통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계획, 경부고속철도 건설로 인한 천성산 내원사와 금정산 범어사 관통이라는 개발계획이 줄줄이 발표되었다. 또한 조계종의 중심도량인 조계사 대웅전 앞 90m 지점에 24층의 고층 건물을 지어 가로막고 영산인 통영 미륵산과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놓기 위해 설계를 완성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등, 산을 둘러싼 개발과 파괴의 바람은 도를 넘어서기에 이른다.

이러한 불교계의 분노와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18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현장에서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수행도량을 지키기 위해 겨우내 천막을 치고 1000일 정진기도를 올리고 있던 비구니 스님이 건설회사 직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LG건설회사 직원 50여 명이 가설법당을 허물고 북한산 회룡사 선원의 비구니 스님 세 분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과 함께 팔을 비틀고 500m 이상을 끌고 가는 비인도적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사진설명 /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린 비구니 스님들

3월 5일, 조계사에 모인 1만여 명의 불교도들은 정부와 지자체에 환경보존정책 최우선과 환경파괴 사업 백지화, 자연환경과 수행환경보호를 위한 관련 법제도의 정비와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북한산 비구니 스님들을 폭행한 LG건설측과 경기경찰청장의 참회와 책임을 물으며 무소유와 同體大悲 정신을 발하여 자연ㆍ문화 환경을 지키고 가꾸는데 앞장설 것을 결의했다.

가늘게 날리는 빗방울 때문에 3월의 대기는 자꾸 몸을 움츠리게 했다. 하지만 집회를 마친 스님들은 거리로 나가 그 차갑고 단단한 검은 아스팔트 위에 몸을 붙이고 1000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젖어가는 스님들의 가사처럼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도 조금씩 젖어갔다. 거리에 나선 스님들의 결연한 마음을 읽으며 수덕사 주지 법장스님의 말씀을 다시 되씹어 본다.

“정부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발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개발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유일한 선택입니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반영되지 않는 계획은 세워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국민의 정부가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자긍심을 안겨준 것처럼, 환경의 가치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정부로 그 이름이 남길 바랍니다.”

사진설명 / 천지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입니다

사진설명 / 팔뚝에 무명 심지를 태우며 자연환경과 수행환경을 지킬 것을 기원하는 연비의식

【사이버 녹색연합】

< 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범불교도 결의대회 연대사 >

산과 도량을 지키는 것은 자연과 믿음과 역사를 지키는 일

녹색연합 상임대표 박영신

새만금을 살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 또다시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북한산을 살리기 위하여 우리가 함께 모였습니다. 날씨는 조금 쌀쌀하나 봄을 재촉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이 곳, 이 자리는 특별한 터입니다. 갯벌을 지키고자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여 울고, 함께 모여 싸웠던 터, 이 자리는 자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하여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던 ‘거룩한 마당’입니다.

여기 오늘 또다시 함께 모였습니다. 이 성지에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녹색연합이 여러분들과 뜻을 같이 하고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결속과 연대의 결의를 전하게 된 것을 영광이자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오늘의 모임이 ‘자연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란 인간이 마구 짓밟아도 소리내지 않고 인간이 짓밟고 파괴해도 소리내 울먹이지 않습니다. 그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인간의 욕심과 탐욕으로 빚어지는 자연 생태계의 훼손은 끝이 없습니다. 오늘 이 산을 뭉개는가 하면 내일은 저 산을 깨고, 어제 저 고속도로를 내는가 하면 내일은 또 이 고속도로를 뚫습니다. 지난날 우리는 도로를 늘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속은 것입니다. 문제는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을 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개발 사업의 본성입니다. 이렇게 자연은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조용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죽음으로 말합니다. 죽어간 자연은 오염된 공기로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죽어간 자연은 오염된 물로 우리들에게 말하고, 죽어간 자연은 황폐한 산천으로 우리들에게 소리칩니다. 저 바람을 보고 이 하늘을 보십시오. 이 강물과 저 산을 보십시오. 자연 생태계는 소리내지 않고 죽음으로 소리내어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 생태계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는 뜻있는 이들이 함께 한 오늘의 이 자리, 생명과 평화의 깃발을 든 녹색연합이 어찌 이 모임과 연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는 오늘의 모임이 ‘믿음의 표현’이며 ‘수행’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평화의 기도를 들을 수 없고, 그 기도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하는 다수의 횡포를 거부코자, 여기 여러분들이 모였습니다. 편리와 속도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깊은 삶’을 찾으려 하고 그 삶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늘의 문명에 맞서기 위하여, 여러 믿음의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의 계산과 타산의 논리로만 풀어보려 하는 오늘의 비좁은 과학과 오늘의 뒤틀린 문명이 자아내고 있는 표피의 삶에 한사코 대항코자 하는 모임입니다. 근본을 눈여겨보고 뿌리를 찾아보려는 깊은 삶의 값은 얕은 삶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리하여 깊은 삶을 내동댕이칩니다. 오늘의 모임은 표피의 삶으로 뒤덮인 삶의 밑뿌리로 나아가 근본 문제를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들, 깊은 삶을 찾아 삶의 차원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뜻있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이 한 자리하여 깊은 차원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오늘의 모임이 ‘역사의 이야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내일의 삶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고, 눈앞의 실리에 이끌리어 어제를 잃어버리고 사는 몰역사의 개발의 시대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습니다. 개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어제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어제의 역사에 담겨 있는 사연일랑 아예 관심 밖이어서 거기에 귀기울이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삶은 어제의 연속선상에서 빚어진 것이며, 내일의 삶은 어제와 오늘의 삶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이야기라면 그 무엇이든 무시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오늘의 세대, 거기에 맞서기 위하여 오늘 여러분들은 함께 모였습니다.

북한산은 단순한 산이 아닙니다. 수천 년의 정기가 서려 있고, 그 시간의 이야기를 지키고 있는 역사의 산입니다. 이 산은 어제의 산이자 오늘의 산이요 또 올제의 산입니다. 이 산은 조상의 산인 동시에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의 산입니다. 겨레의 기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가 하면 겨레의 슬픈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산입니다. 이 긴긴 생명의 이야기와 삶의 역사를 지키기 위하여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자연 생태계를 지키고, 믿음의 수행 자유와 환경을 지키고, 역사의 이야기를 지키고자 하는 뜻에 우리 녹색연합은 함께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병든 문명에 질문을 던지고 그 흐름에 도전하는 대항 문화의 표상,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사명이기에 여러분들의 일은 우리의 일이요, 우리의 일은 또한 여러분들의 일인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의 병사가 될 것을 다시 다짐하면서 연대사로 가름코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3월 5일 자연환경 보전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범불교도 결의대회에서 녹색연합 박영신 상임대표가 연설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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