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고속철도]말 못하는 이들과의 약속을 지킨다

2003.03.11 | 미분류

산과 들, 이름 모를 꽃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단식을 시작한지 36일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직후 40일간 단식을 하며 인간세계의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도 옥중에서 40일의 단식을 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인 1983년, 당시 신민당총재인 김영삼은 “죽으면 죽으리라” 23일간 단식을 감행,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이쯤이면 단식 36일의 고통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쯤일 것입니다.

말 못하는 이들과의 약속을 지킨다. [지율스님 단식 36일째]

단식 33일째, 지율스님의 은사스님께서 한말씀 하십니다. “남의 다리 긁지 말고 빨리 단식끝내고 공부하러 들어가.” 하지만 지율스님의 행동은 급기야 천성산·금정산 살리기운동에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노무현 정부는 천성산과 금정산 고속철도 공사 전면금지 및 노선 재검토를 지시하였으며, 다음날 문재인 민정수석은 지율스님을 방문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산 노선의 공사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향후 대안에 대해서는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의 ‘원점재검토’는 원래의 약속인 ‘백지화’와는 전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농성장을 찾은 민정수석 역시 시민·종교단체에서 주장하는 “백지화는 기존 노선을 포함한 원점재검토 공약을 확대해석한 것”이라며 못박았습니다. 분명히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는 불교계의 10대 공약 가운데 첫 번째로 “부산고속철도 노선 천성산 및 금정산 관통사업을 백지화하고, 불교계와 환경단체 등 관련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여 대안노선을 검토”하겠다는 공약집을 내놓았습니다.  

따라서, 무기한 단식 36일째인 지율스님은 현 노선의 전면 백지화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검토위원회’ 구성 제안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선 현재 진행중인 천성산·금정산 구간의 공사 전면 중지 및 토지수용령 중지, 그리고 공사 발주 취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에서야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에서 경부고속철도의 양산-천성산 구간인 13-3, 13-4공구에 대한 발주계획을 중단하기로 발표하였습니다.

‘좀더 서둘러, 좀더 빨리’란 개발의 논리로 얼마나 없어진 게 많고, 얼마나 잃은 게 많습니까? 이러다가 주말에 오를 산 하나 남겠습니까? 부모님이 기복하러, 성인이 도(道) 닦으러 오를 산의 영적 모습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성산은 원효스님께서 천명의 제자를 가르치시어 천명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된 성지입니다. 지율스님의 공식명칭은 내원사 ‘산감’입니다. 일종의 천성산 ‘산지기’인 셈입니다. ‘이(理)판’의 수행스님이었던 지율스님께서 아파하는 천성산의 신음소리에 몸으로 부딪히는 ‘사(事)판’으로 옮겼습니다. 지율스님에게 ‘투쟁’의 말들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저 약속을 지킬 뿐입니다. 천성산의 부름에 다시 내원사의 ‘이판’으로 회귀할 건강한 스님의 내일을 봅니다.

윤상훈 자연생태국 dodari@greenkorea.org

단식 한 달째, 지율스님 눈물의 편지
“말없는 천성산… … 살려주세요”

안녕하시지요? 천성산 내원사 지율입니다. 지금은 부산시청 앞에 와 있습니다.
누구한테 들으니 3월6일이면 밥 굶은 지 한달 째라고 하더군요. 그렇게나 날짜가 흘렀는지 몰랐어요.



어떤 사람은 “기네스북에 오를 거냐”며 놀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걱정이랍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건강합니다. 의사선생님들도 아직은 괜찮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모든 것이 그저 즐거울 따름이에요. 하지만 너무 힘들어, 고통스러워 울 때도 있어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배고픈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말이죠. 천성산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어느 날인가 풀숲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메뚜기 한 마리가 뛰어 올랐어요.
그때 메뚜기는 내게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듯 했어요. 그때부터였죠. 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천성산은 울고 있었어요. 아니 산 속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울고 있었어요. 그 소리를 듣고 어떻게 그냥 있을 수 있었겠어요.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된 거죠. 그래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땅을 파헤치고 가만히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산을 아픔에 울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산을 지키지 못하고 방관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다는 것을…. 그래서 참회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래서 매일 108배를 합니다. ‘내가 잘못 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하면서.

처음에는 혼자였어요.
어떤 사람은 “새정부가 다 해결해 줄 텐데 나서지 말라”고 훈계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약속을 지켜야 했어요. 산을 나오기 전에 우리 절에 버려진 어린 올빼미를 놔주면서 약속했어요. 네가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줄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에요. 옛날 원효스님이 1000명의 제자들을 성인으로 만든 곳이 천성산이라죠. 제 곁에는 1000명의 성인들이 있습니다. 멀리 진도에서 달려온 스님에서부터 빈손으로 온 것을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할머니, 저를 보며 언제나 걱정해주는 많은 사람들. 여러분도 1000명의 성인이 돼주세요. 이 땅에 1000명의 성인들이 나타난다면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죽어가는 많은 생명들을 살리고 자연과 인간은 한 몸이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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