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고속철도]지율스님, 38일간의 단식 풀어

2003.03.16 | 미분류

지난 2월 5일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 이후 38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율스님의 두 볼은 깡말라 광대뼈만 도드라져 보입니다. 두 짝대기 두 발은 힘없는 몸둥아리 조차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한 겹 벗겨진 입술과 파열된 두 눈의 얼굴은 나이 이른 검버섯으로 가득합니다. 단식 첫날, 칼바람의 겨울날씨에 불씨하나 없이 오돌오돌 떨던 기억은 이젠 봄바람으로 하늘거립니다. 스님의 힘든 육신은 편안한 미소 속에 “아직은 괜찮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율스님, 38일간의 단식 풀어



山是山 水是水
불기 2547년 3월 14일, 전국에서 모여든 불자들로 부산시청 광장이 가득합니다. 자연환경 보존과 수행환경 수호를 위한 불교도 정진대회에 1만의 불심이 회합하였습니다. 지율스님은 말 못하는 이들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38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한결같이 참회기도 108배를 올렸습니다. 내원사에서 안거 중인 스님 50여 명 전원이 참석해 참회기도 법회를 시작으로 부산의 비구니스님들이 뜻을 같이 하셨습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윤희동 신부님, 그리고 범어사와 통도사의 스님들도 단식농성에 동참하셨습니다. 매일같이 환경기도 법회와 생명사랑 실천을 위한 미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활스님은 마라톤으로 천성산·금정산 살리기에 함께 하셨고, 청년불자들은 천성산 생태보고 순례 및 진혼제로 뭇 생명의 영혼을 위로하였습니다. 학계에서도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관통백지화 및 대안노선 결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사이클연맹의 고속철 반대 자전거 시위대가 부산역을 출발해 부산시청을 향했습니다. 풍경따라 우는 대숲소리, 계곡물소리 멈추지 말라는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콘서트’가 부산시청 광장을 울렸습니다. 부산의 문인들도 아름다운 금정산과 천성산을 살리고자 약속하였고, 부산·경남의 교사 일천인이 단식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단식 한 달째, 지율스님은 말없는 천성산을 살려달라고 눈물의 편지로 간절히 기원하셨습니다. 산은 산대로 물은 물 그대로 ‘환경과 상식회복을 위한 山是山 水是水 2배수 예참수행’으로 매일 2배수로 1000여명의 시민들이 부산시청에 모였습니다.

급기야 단식 31일째인 3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구-부산 고속철 구간의 공사 전면 중단과 재협상을 지시하였고, 다음날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율스님을 찾아와 단식농성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3월 11일,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에서는 경부고속철도의 대구-부산 구간의 공사발주계획을 중단, 원점재검토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국민에 대한 정부의 약속도 공수표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3월 14일 오전, 최종찬 건설교통부장관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는 경부고속철도 노선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결국 대구-부산간 ‘기존 노선’을 고수하겠다고 고집피우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 지시를 내린 지 불과 1주일 만의 일이며, 지율스님이 단식을 회향하겠다고 밝힌 14일 아침의 일입니다. 신임장관이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넉넉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인간은 억제하지 못한 무분별한 욕망으로 산업의 확장을 극단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과학·기술의 전령사이지만, 곧 이은 판도라의 재앙을 인간세계에 몰고 왔습니다. ‘기술’은 항상 덕이 있는 실천적 지혜가 전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술사용은 정의 없는 쾌락으로만 집중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율스님의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는 덕과 조화가 있는 생명사랑의 실천적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시청 앞 광장에서 서면까지 이어진 불심의 행진은 모두 지율스님의 ‘덕’입니다. 그 ‘덕’에 조계종은 38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지율스님의 뒤를 이어, 앞으로 49일간 세등, 성타스님 등 전국 사찰의 큰 스님들이 릴레이 단식을 벌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지율스님, 부끄럽게 한 말씀 드립니다.
“넉넉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윤상훈 자연생태국 dodari@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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