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반전 메세지]<긴급입수> 이라크 평화팀(IPT)의 보고서

2003.04.01 | 미분류

바그다드, 전쟁의 얼굴 – IPT

2003년 미국의 바그다드 공격에 관한 전쟁범죄 및 관련 정보가 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이라크 평화팀(IPT)의 보고서

(참고: 이 보고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병력에 의한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와 민간 시설물들의 파괴에 관한 현재로서 가장 정확하고 신속한 보고서이다. 보고서는 가장 최근의 사건 순으로 구성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보고서는 서두의 “최근 보고”란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최근 보고]

알 야목 종합병원 – 3월 26일
3월 26일에 캐시 브린(Cathy Breen)과 일행들이 알 야목 종합병원의 다음 피해자들을 방문하였다.

7살 소년인 아마르(Amar)는 여러개의 폭발물 파편들을 맞고 출혈과다로 가슴에 응급 튜브를 꽂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인 한나(Hannah)는 이날 아침 그 집에 미사일이 떨어져 죽었다. 그는 바그다드의 농촌에서 왔다.

농부의 아들인 8살 소년 무엔(Mueen)은 복부 부상으로 인해 배액관을 꽂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로 꺼낸 모든 작은 파편조각들을 일행들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폭발로 인해 죽었다. 그의 6살난 동생 알리(Ali)는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10살 소년 루셀(Rusel)은 그녀의 방문 밖에서 발생한 폭발로 인해 부상당했다. 일행은 X 레이를 통해서 그녀의 가슴에 박혀있는 파편을 볼 수 있었다. 그녀 역시 가슴에 튜브를 꽂고 있었다.

알 야목 종합병원 – 3월 24일
3월 24일 캐시 브린과 일행이 알 야목 종합병원의 다음 피해자들을 방문하였다.

14살 중학생인 나다 아드난(Nada Adnan)은 앞머리 부분에 깊은 상처와 골절을 입고 병원에 실려왔다. 그녀의 허벅지 부위에도 커다란 파편이 박혀있었다.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그녀와 그 가족들이 병원으로 올 때 거기에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깊은 상심에 빠져 있었다. 미사일은 그들이 머무르고 있었던 그녀의 아저씨 집위로 떨어졌고, 벽이 무너져 내렸다. 나다의 8살난 자매는 그때 죽었다.

초로의 여성 파티마는 폭격이 있을 때 두려워 했고 엉덩이 뼈가 부러졌다. 그녀는 이미 엉덩이 수술을 받은 후였다. 그녀는 발목에 깁스를 했고 무릎에도 부상을 당했었다.

압둘라 하마드 하싸리(Abdullah Hamad Hassarri) 가족
3월 27일, 바그다드 북쪽 주거지역인 알 투자르(Al Tujjaar)에 있는 압둘라 하마드 하싸리 가족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들 집의 바로 옆에 발쿠이스(Balquis) 여중학교의 창문이 파손되어 있는 것을 일행들을 보았다. 하싸리 가족의 집에서 일행은 작고 균일한 입방체의 금속 조각들이 벽에 박혀서 만들어낸 수백개의 흔적들과 함께 안마당에 떨어져 있는 2층의 지붕 조각들을 우리 일행은 발견할 수 있었다. 위층에는 피에젖은 커다란 메트가 있었다. 가족들은25살의 모니드(Moneed)와 23살난 그의 부인 사하르(Sahar)그리고 그들의 6살난 아들 키세르 무흐웹(Quiser Muhweb)은 폭탄으로부터 금속조각들이 창문을 통해 날아올 때 그 메트에 함께 앉아 있었다. 이 조각들은 창문 유리들을 파괴하고 어머니와 아들의 다리가 부러지는 등 그들 모두에게 부상을 입혔다.
많은수의 파편들이 위에서 아래까지 벽에 흔적을 남겼지만 정원과 안마당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고, 건물 아래층에는 큰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파편 폭탄은 집 지붕의 2~3미터 상공에서 폭발하여 문을 통해 날아들어와서 3명의 부상자를 만들어 내고 바로 옆에 있는 학교의 창문을 깨뜨린 것으로 보인다.

[추가 보고]

알 샤압(Al Shaab) 상업지역
두개의 폭탄이 3월 26일 정오경에 무역성 쇼핑센터 세블럭 정도 뒤편에있는 바그다드의 알 샤압지역의 간선도로 주위의 상업지역의 한 복판에 떨어졌다.(세개의 폭탄이 떨어졌다고도 함) 이 두개의 폭발의 결과 깊이 1미터, 직경 1.5미터 정도의 작은 분화구가 교차로 근처의 길 양쪽에 만들어졌다. 비록 분화구는 작았지만, 폭탄은 매우 넓은 지역에 피해를 주도록 고안되었다. 강력한 폭발로 인해 약 15대의 차량이 파손되었고, 대부분의 금속제품들이 뒤틀리고 불에 탔다. 일행은 파괴된 가게 앞에서 뒤틀린 금속제품들과 길을 따라서 널부러져있는 차들 그리고 두블럭에 걸친 불에 탄 집들을 보았다. 에드 키네인(Ed Kinane)은 타이어가 산산조각난 두 대의 차를 발견하였다. 가게를 따라있는 대부분의 가게들의 파손 정도는 안팍으로 다양했다. 실제로 위 아래층을 막론하고 처음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한쪽 모퉁이에 있는 자동차 수리점과 길건너의 코너에 있는 레스토랑과 같은 일부 가게들은 난장판인채로 남겨져 있었다. 시멘트 조각들이 식당 바닥과 밖의 식사할 수 있는 지역들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시멘트 설비들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식당안쪽은 하얀색 플라스틱 의자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식당에서부터 약 7개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있었고, 그 마지막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무하마드(Muhammed, 36)와 아트만(Atman, 30)은 공격이 있었을 때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던 두 형제들이다. 그들은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 모두 민간인들인 9명이 그때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파편조각들로 인해 몇 개의 구멍이 뚫린 벽을 가리키면서 다른 형제인 사둔 무크신(Sadoon Mucksin, 40)이 왼쪽팔에 부상을 당했고 알 누마안(Al Numaan)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말했다. 그들은 카페 위층에 거주하고 있던 5명이 부상을 당해서 병원에 실려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폭발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웃에 사는 건축기사인 살라 미에드(Sala Myeed)는 임신한 여성인 움 주아나(Um Juana)가 그녀의 2층 아파트에서 불에 타 죽었다고 말했다. 거리를 따라서 다음 블록에 살고있는 의대생인 마르완 나스웨르(Marwwan Nasweer)는 전기제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두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다른 사람은 식당에서 일하던 5살난 아이의 아버지인 아부 하싼(Abu Hassan, 45)과 마니킷 하모우드(Manikit Hamoud, 17) 그리고 살리아 노우리(Saliah Nouri, 28) 세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36살의 사리프 알바리(Sarif Albari)와 그의 11살난 아들 사페(Safe)가 자동차 수리점에서 죽었고 17살의 사파 이싼(Safa Issan) 12살인 마르완(Marwan), 그리고 운전중이던 그들의 아버지 이렇게 세 사람은 자동차 안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피해자는 모두 민간인들로 손님이거나 상인, 보행자 혹은 상가 위층에 사는 주민들 등 모두 최소한 15명이 죽었고 50명이 부상당했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쿨라입(Kulaib) 가족
3월 26일, 몇 명의 IPT 회원들이 바그다드 북쪽에서 온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알 야목(Al Yarmook) 대학병원을 방문하였다. 방문단에는 일본의 유명한 사진가인 타카시 모리주미(Takashi Morizumi)를 포함한 사진가와 비디오 기사등 국제 기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방문을 허용한 병원은 많은 방들이 피해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첫 번째 방에서 의사가 이야기한 한 소년에게 일행의 관심은 집중되었다. 그는 수많은 부상을 입었고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다른 침대에는 침대의 한쪽 편에 부상당한 5살 소녀 두하(Duha)가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다른편은 그녀의 할머니의 침대였으며 겁에질린 소녀는 어머니를 찾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녀와 다른 부상자들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통역을 하는 의사의 이름은 자멜 알 바티(Dr. Jameel Al Bati)였다. 그녀의 아버지 수하일 쿨라이브(Suhail Kulaib)와 할머니 아브다(Abda)는 치료를 받으러갔지만, 대화를 약속했다. 딸은 거미줄 같은 부상을 입었고 왼쪽다리가 마비되어 다시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가족들에 의하면 두하는 미국의 공격이 시작된 첫날인 3월 20일 새벽 5시쯤에 부상을 당했다. 이 대가족은 바그다드 외곽의 시골지역에있는 그들의 작은 집에서 모두 함께 모여있었다. 처음의 폭격과 크루즈 미사일 공격이 막 시작되었다. 명백하게 빗나간 폭탄이나 미사일이 그들의 집 근처에서 폭발하였다. 그들의 집 근처에서 일어난 폭발은 일곱 가족들의 살점들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28살인 두하의 어머니 함다 압달라(Hamda Abdallah)는 그
순간에 두하의 한살난 여동생 하우라 수하일(Hawra Suhail)을 돌보고 있었다. 실제로 함다는 날아드는 파편들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팔로 하우라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래서 두하의 갓난 동생 하우라는 등쪽에 약간의 상처만 입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했던것과 같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함다는 살았지만, 하우라의 조그많고 순결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잃었다. 함다는 그녀의 손과 팔에 파편조각들로 인한 더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의 팔과 다리에 폭탄 파편으로 부상을 입은 두하의 세살난 남동생 무스타파 수하일, 폭발로 다리에 부상을 당한 16살난 두하의 이모, 팔이 부러지고 상처를 입은 17살난 다른 이모, 그리고 엉덩이와 넙적다리에 파편조각이 박힌 60살인 두하의 다른 할머니인 나드와 오가이드(Nadwa Ogaid)를 포함한 7명 중 추가로 4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있었다.

알 카디시에(Al Qadisiyeh) 주거지역
3월 26일, IPT 일행은 바그다드의 알 야목 병원 근처에있는 알 카디시에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주거하고 있는 곳을 방문하였다. 26번 거리의 602 모할라(Mohalla-지구)에 인접한 일곱채의 이층집들(#6, 8, 10/1 과 10/2)은 일요일 저녁 7쯤에 지구의 한 복판에 폭탄이 충돌하여 그 지점에 깊이 약 8미터 직격 40미터의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졌고 네 채의 집들이 평평해 졌다.

대부분의 집들은 비어있었고, 단지 두명의 사람들만이 부상을 당했다. “나는 폭탄이 떨어질 그 당시에 밖에 있었고, 이웃집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나는 그 주위를 돌아갔고 뒤편에 커다란 불덩이가 떨어졌습니다. 나는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만을 들을 수 있었고 잠시 후 벽돌들이 날아오고 먼지와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네 차례나 일어나려고 시도했습니다만, 여동생은. 이웃들이 도우러 달려나왔습니다. 이것은 악몽같은 일이었지만 동시에 기적이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약간의 부상만을 당했고 나의 여동생은 멀쩡했습니다.”라고 알 야목 병원의 침대에서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서 있는 28살의 아흐마드 아벨 다아옘(Ahmad Abel-Daayem)이 말했다. “내가 어머니와 동생은 보고난 다음에야 내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발목에서부터 무릎까지 깊게 베었더군요.”라고 그는 덧붙였다.

나에미(Naeemi) 가족의 집
3월 25일, 조네드 제로부칸(Jooneed Jeeroburkhan)을 포함한 몇몇 IPT 회원들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바그다드 동부의 알 카드라(Al Khadra)지역에 있는 나에미 가족의 2층 벽돌집을 방문하였다. 그 집은 미국의 지속적인 폭격이 계속되던 세 번째 날인 토요일 저녁 7시 30분쯤 폭탄에 맞았다. 폭탄은 집의 왼쪽편에 맞았고, 아이들 방의 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두 아이들은 7살과 9살난 형제이다. 그 방의 바닥은 움푹 꺼져있었다. 단지 콘크리트 속에 박혀있던 철근들 일부만이 방 아래쪽에 걸쳐져 있었다.

벽돌들과 깨진 조각들이 채소밭을 뒤덮고 인근 지역에 흩어져 있었다. 두그루의 바나나 나무가 폭발로 잘려나갔다. 집앞에 주차되어있던 빨간색 차의 바람막이 창이 산산조각나 있었다. 집 안에는 화분에 심어진 식물이 콘크리트 계단위에 아직도 놓여있었다. 하지만 부서진 방에서 나온 책들과 장난감들은 계단 위쪽의 모퉁이에 함께 쌓여있었다. 부서진 나무 침대와 다른 가구들은 부서진 조각들 특히 흩어져있는 유리조각들을 치우기위한 목적으로 집 앞에 놓여있었다.

인접한 그의 집에 커다란 금이 가서 고생을 하고있는 사미르 마흐무드 아흐마드(Samir Mahmood Ahmad, 60)에 의하면 폭탄이 떨어질 때 그의 가족들과 나에미의 가족들 약 15명 모두는 다른 방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흐마드 부인과 나에미 부인은 자매이다. “우리 모두는 문을 통해서 뛰쳐 나왔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애들은 조그마한 소리에도 겁을 먹습니다. 나의 처남은 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도록 친척집에 데리고 갔습니다.”라고 사미르는 말했다. 폭탄의 파편들은 이미 군 보안요원에 의해서 치워진 상태였다. “만약 그것들이 방사능 물질을 포함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증인들은 말했다.

나흐라완(Hahrawaan) 농가
3월 25일, 조네드 제로부칸을 포함한 몇 명의 IPT 회원들이 바그다드 북동지역의 디얄라(Diyala) 다리 인근 나흐라완 지역의 농가를 방문하였다. 농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지 5일째인 월요일 오후 4시 5분경 불시에 폭격을 당했다. 현장에서 세명이 죽었다. 그중 한명은 8살난 소녀로 이름은 파테하 가지(Fatheha Ghazzi)이고, 갓 결혼한 16살의 신부 나다 압달라(Nada Abdallah)와 집의 안주인의 동생인 20살의 여성도 있었다. 8명이 깨진 유리조각과 파편 그리고 날아든 벽돌조각들에의해 8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들이 병원에 실려올 때 바그다드의 알 킨디(Al Kindi) 병원 응급실에 있었던 IPT의 에이프릴 헐레이(Dr. April Hurley)박사에 의하면, 그들은 머리와 팔, 다리, 가슴, 허리 등이 심하게 찢어져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 대한 사실들을 수집하기위해 화요일에 병원을 다시 찾아가서 피해자들을 방문하였다. “20대 후반의 젊은 신랑은 그의 부상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젊은 부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고 헐레이 박사는 말했다. “어린 소년인 아메르(Amer)는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완쾌될 것이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화요일 그 장소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우리에게 몰려들었던 이웃들에 의하면 그 집은 도시에 대한 미국의 폭격에서 약간의 휴식을 위해 오는 사람들인 두 바그다드 가족들에게 집을 제공한 농부인 아즈미 압둘라 아흐마드(Ajmi Abdullah Ahmad)의 소유라고 했다. 그들 중 하나는 그들의 신혼여행으로 이곳을 찾은 새롭게 결혼한 부부였다. 농부의 17살난 아들인 아흐마드 아즈미는 유일하게 폭발에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탈출하였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 집 주위를 높게 둘러싸고 있는 들판에서 먼지 투성이 길을 통해서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것은 오후 4시 5분이었고, 모두가 오후 중간기도를 한 후 모두가 1층에 있는 거실에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폭발음을 들었고, 돌아섰으며 꼭대기 층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면서 날아오르는 파편과 부서진 건물조각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들었습니다.” 라고 아직도 그때의 경험으로부터 동요하면서 그는 말했다. 이웃인 카흐타안 하싼 살마안(Kahtaan Hassan Salmaan)은 불시의 폭격을 퍼붓는 미국의 비행기를 아마도 이라크의 대공 무기들이 맞췄을 것이다고 했다. “다른 비행기가 처음에 날아와서 3개의 폭탄을 떨어뜨렸고 그중 하나가 집에 명중을 했으며 다른 두개는 멀리 떨어진 들판에 떨어졌다.”고 그는 말했다. 무너진 집 옆의 튼튼한 지붕 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묶여있던 소가 죽었다.

집에서부터 그들을 알 킨디 병원으로 실고갔던 차가있던 장소 앞에 차가 주차되었던 곳까지 피해자의 피가 말른 흔적이 연결되어 있었다. 주검을 실어나르기위해 만든 나무 관들이 소형트럭의 핏방울이 굳어진 뒤칸에 아직도 실려있었다. 폭탄의 파편들은 이미 군 보안요원들에 의해 수거된 상태였다. 양쪽의 증인들이 모두 말하기를 “그것들이 방사능 물질을 함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지점에서는 안에 VOLEX라고 적혀있는 구멍이 뚫린 사각형 알루미늄 박스가 발견되었다.

카라다트 미르얌(Karadat Miryam) 주상 복합 지역
3월 24일, 몇 명의 IPT 회원들이 최근에 폭격을 당한 지역을 방문하였다. 이 지점은 지상층에는 상업적 가게들이 있고 위층에는 사람들이 사는 삼,사층 건물들이 있는 카라다트 미르얌 지역 전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근처에 어떤 군이나 정부 시설물도 없었다. 이 건물의 창을 덮고 있던 거의 모든 창문들과 창틀들과 철제 대문들이 모든 층에서 못쓰게 되었다. 이 광대한 피해의 결과를 불러온 거대한 폭발은 최소한 약간의 피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디 알 카드라(Hady Al-Khadra) 2층집
3월 24일, IPT 회원들은 미사일에 피해를 당한 집을 방문하였다. 그 집은 하디 알 카드라 지역에 있는 2층 집이었다. 폭탄은 지붕을 통과해서 들어왔고 2층에 있는 침실로 보이는 방 바닥에 떨어졌다. 거기에는 몇몇 여성 가수들의 사진으로 보이는 사진이 벽에 걸려있었다. 일행들은 공격이 있었던 당시에 집에 있었던 가족들은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그들은 현재는 다른 가족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집주인의 형제는 우리에게 아랍어로 이야기를 해줬고 우리는 녹음해서 나중에 번역하였다. 그는 폭탄이 3월 22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쯤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있거나 저녁 준비를 하고있을 때 떨어졌다고 했다. 당시 집에 8명이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알 야목(Al Yarmouk) 병원, 3월 23일
3월 23일, 덕 존슨(Doug Johnson), 로버트 투르콧(Tobert Turcotte) 그리고 주니드 제로부칸(Jooneed Jeerburkhan)을 포함한 몇 명의 IPT 회원들이 알 야목 병원을 방문하였다. 이라크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이 대학 병원은 알 만수르(Al Mansur) 병원, 알 킨디(Al Kindi)병원과 더불어 미국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받도록 지정되어 준비를 한 세 개의 치료기관 중 하나이다. 미국인들이 포함된 많은 외국인 의사들과 외과의사들이 전쟁상황에 이들 종합병원에서 봉사하기위해 바그다드에 있었다.

환자중 하나는 일반적 마취아래서 수술을 막 받고 나온 25살의 라합 웨다드 모함마드(Rahab Wedad Mohammad)였다. 그녀의 오른쪽 뺨은 부어올라 있었고 오른쪽 팔뚝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병원의 여성 병동의 한 여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막 수술을 한 힘줄과, 신경 그리고 혈관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응답에 의하면, 라합은 폭탄이 근처에 떨어질 때 하이 자미야(Hayy Jamiya) 지역의 주거지역에 있는 집에 있었다. 이것은 미국의 폭격이 시작된지 3일째가 되는 토요일 저녁이었고, 그녀는 오른쪽 팔의 힘줄을 심하게 상하게 한 파편을 맞았다.
자하 세헤일(Zaha Seheil)은 반대편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녀는 6살 이다. 의사는 그녀가 등뒤에 맞아서 척추를 다쳤고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남성병동에서, 10살의 루술 살림 압바스*(Rusul Salim Abbas)는 가슴과 오른손에 파편을 맞았다. 그때가 폭격이 4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가장 심한 폭격이 있었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그가 파편을 맞았을 때 그는 문 근처로 갔었다고 그의 아버지인 살림(Salim)이 그의 침대의 귀퉁이에 앉아서 말했다. 33살의 살라 메흐디(Salah Mehdi)는 근처에서 미사일이 폭발할 때 아마리야(Amariya)의 주거지역에서 토요일 저녁에 거리를 걷고있었다. <나는 단지 커다란 불덩이를 봤고 의식을 잃었어요라고 그는 어렵게 말을 했다. 그는 복부와 오른손 그리고 오른쪽 귀에 파편을 맞았다. 다음 침대에는 폭탄이 그들의 집 근처에서 폭발했던 금요일 저녁에 알 쇼르타(Al Shorta)의 주거지역에서 부상을 당한 12명의 가족 중 하나인 12살난 오마르 알리(Omar' Ali)가 있었다. 거기에는 폭격 첫날 저녁에 부상을 당한 두 아이의 아버지인 57살의 마지드 마흐무드(Majid Mahmoud)도 있었고, 토요일 밤 등과 양쪽 팔과 다리에 부상을 당한 어린 딸의 아버지인 36살의 후세인 자심 플레흐(Hussein Jassim Fleh)도 있었다. 그것들이 미국의 미사일과 폭탄이었거나 혹은 이라크의 대공포가 떨어진 것이었는가? 이들 방문들이 만들어낸 미묘한 병원 분위기와 탄도들의 증거들에 대한 전문성의 부족때문에 나라 전체에걸쳐 많은 다른 병원들에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부상들의 원인이 실제로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려웠다. <파편이 어디에서 나왔건,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강요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 이들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면 부상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피해자들을 촬영하던 이라크 TV 기자가 언급했다. 일행들은 부상자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7월 14일 다리 거리의 서쪽으로 약 두블럭 떨어진 주거지역
3월 22일, 스튜어트 브리싱아(Stewart Vriesinga)와 웨이드 허드슨(Wade Hudson)은 아마르 빈 야시르(Amar Bin Yasir)거리와 자미아(Jamiaa)거리 사이에 있는 7월 14일 다리 거리의 서쪽으로 약 두블럭 떨어진 주거지역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최근의 이 두 거리를 잇는 거리 한복판을 넓게 둘로 나눠버린 2~3미터 깊이의 분화구를 지나갔다. 서쪽방향의 교통난으로 길은 막혀있었다. 그들은 이 분화구 양편으로 조성되어있는 커다란 공원을 보았다. 분화구 주위로 어떤 건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IPT의 주 운전기사인 모하메드(Mohammed)는 정원이 공공 시설이 아니라 그의 아저씨중 한사람 소유인 개인 집에 연결되어있는 개인 정원이라고했다. 자미아 거리 한쪽 귀퉁이에 그 분화구를 만들어낸 폭탄의 폭발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창들이 깨진 많은 작은 집들이 있었다. 비록 이 사고로 심각한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거나 민간 시설물이 심각하게 파괴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것은 일부 폭탄이 의도되었던 목표물에 맞지 않거나 비 군사적 목표물을 향하는게 재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주상 복합지역
3월 22일 에이프릴 헐레이(April Hurley), 제히라 하우파니(Zehira Houfani) 그리고 로버트 투르콧(Robert Turcotte)은 주상 복합지구 전체 블록의 거의 모든 창문들이 깨져 나가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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