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어떻게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2003.04.13 | 미분류

1885년 미국의 14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는 지금의 워싱턴주에 살던 북미 인디언 수쿠아미시 추장 시애틀 씨에게 그의 땅을 정부에 팔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애틀 추장은 ‘어떻게 당신은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 있습니까? ‘라고 되묻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던 그에게는 땅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장님이 처음 눈 떠서 본 세상 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신성한 자연을 자신의 발 밑에 두려는 백인에게 보낸 안타까운 그의 목소리는 2003년 4월 12일ㅡ 대한민국 인사동의 거리에 다시 한번 되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이것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땅이 인간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땅에 속해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모든 것들은 우리 모두를 한데 묶어주는 피처럼 서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삶의 그물을 짜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그 그물의 한 매듭일 뿐입니다. 인간이 그 그물에게 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일입니다…’

4월 12일 ‘생명의 소리’의 서두는 이렇게 시애틀 추장의 목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우리의 새만금 이야기. 생명이 깃들은 땅을 무자비한 백인들의 손아귀에 넘겨야 했던 시애틀 추장의 비애는 살아 숨쉬는 새만금 갯벌을 개발이라는 폭력이 행해지는 사지로 보내야 하는 우리의 비애로 어어진 것입니다. 시애틀 추장의 절박함과 똑같은 우리의 절박함이 인사동 거리 한켠에 가득해졌습니다.


하지만 곧 우리의 무거운 마음의 틈을 비집고 새만금에서 외치는 생명의 소리가 피어오릅니다. 류선희씨의 플루트 연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강강수월래’에서 ‘아리랑낭랑’으로 그리고 ‘새타령’으로 우리의 소리가 이어집니다. 인디언들처럼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던 우리 선조들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생명을 귀함을 모른다고 우리를 나무라시고, 오랜 세월 소중히 지켜온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라며 그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새만금의 생명들이 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소리가 인사동의 거리를 메웁니다.

새만금에서 외치는 생명의 소리에 하나 둘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여드네요. 앳된 여중생부터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까지, 많은 분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그 소리에 이에 응답하여 새만금 간척 사업 반대에 귀한 이름들을 보태주시는 일도 잊지 않으시구요. 사람들이 예쁘다고 자꾸만 들추어보던 갖가지 조개와 소라로 만들어진 악세서리들도 그 자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새만금 생명들의 자취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들이 잔인하게 죽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이 비극을 방치해 두지 말라고, 악세서리가 된 생명들의 넋은 말없이 우리에게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플루트 연주는 어느새 아이들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하늘나라 동화’가 그려지고, ‘고향의 봄’이 찾아옵니다. ‘과꽃’이 피어나고, ‘나뭇잎배’가 떠다닙니다. 그 속에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옵니다. 우리의 새만금 갯벌을 해치지 말아주세요, 라는 외침입니다. 인디언 속담이 말하듯 이 땅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로부터 빌려 온 것입니다. 새만금 갯벌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잠시 빌려온 부채인 것입니다. 그 새만금 갯벌의 본래 주인인 아이들의 목소리가 플루트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새만금 생명의 소리를 계속 듣고 싶어요, 라고 외치는 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울립니다.

‘생명의 소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어른들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새만금 생명의 소리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우리는 무작정 달려만 온 지난날을 반성하고, 외면해왔던 진실을 바로보려 합니다. 불협화음만 있어 지금은 조율이 필요한 시대,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조율이 필요 없는 시대로 바꾸어가려 합니다. 그런 우리의 다짐이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집니다.


‘알고 있지 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흰 철새들은 가을 하늘 때가 되면 날아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건 모르면서 그져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
<한영애, '조율'>

‘생명의 소리’ 행사는 힘찬 노래 소리와, 더불어 굳어지는 우리의 다짐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우리의 소리는 새만금이 원래 주인인 아이들의 품으로 온전히 되돌아 갈 그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갯벌을 다른 무엇으로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생명을 죽음과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새만금 갯벌은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글, 사진 : 윤주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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