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삼보일배]2003년 5월 14일(수), 삼보일배 48일째

2003.05.15 | 미분류

너도나도 돈 한 푼 더 벌기 위해, 뭔가를 더 얻기 위해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아둥바둥 살아가는데, 서울에서 잘 나가던 기자 일을 그만두고 지리산에 내려가 이리도 욕심없이 살고있는 시인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삼보일배 순례가 끝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백지화되면 가방 하나 둘러메고 섬진강가로 가서 시인과 함께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휴대전화 꺼놓고 며칠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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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14일(수), 삼보일배 48일째 – 일주일만에 하루 쉬다
아침부터 조금 흐리다 오후 늦게에는 소나기가 내림  

지난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삼보일배 순례를 진행했던 순례단은 성직자들의 체력이 무척이나 저하되었고 오늘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하루 쉬었습니다.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순례단은 밀린 잠을 자거나 빨래를 하는 등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쉬는 날만 되면 영화를 보려고 계획했다가 번번이 무산되었던 순례단의 자매들은 드디어 가까운 수원시내에 나가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저는 밀린 하루 소식을 쓰고 사진을 골라 인터넷에 올리느라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챨@?좀 나서 머리를 깍고 책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는데, 이원규 시인이 최근에 낸 ‘옛 애인의 집’이라는 시집입니다.

제목은 좀 야릇하지만 낯간지러운 사랑타령 시는 아닙니다. 멀리 남도의 지리산 자락 섬진강 가에 살면서 오토바이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좋아하는 시인의 소박하고도 유유자적한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읊은 시들이 대부분입니다.

잡초들을 뽑으려고
밀짚모자 쓰고 나섰다가
그대로 둔다
하나같이 어여쁘지 않은 게 없다

텃밭에 열무를 심어놓으니
비름풀이니 애기똥풀
더 무성하다

어허라.
저희들도 무슨 뜻이 있으리니
차라리 잡초를 기른다

「잡초를 기른다」중에서

남들이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
미안하지만 남들 바삐 출장 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정말이지 미안하지만
남들 야근할 때
대나무 평상 모기장 속에서
촛불을 켜놓고 작설차를 마시고
남들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일 없어 심심한 시를 쓴다

「독거」중에서



세상에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너도나도 돈 한 푼 더 벌기 위해, 뭔가를 더 얻기 위해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아둥바둥 살아가는데, 서울에서 잘 나가던 기자 일을 그만두고 지리산에 내려가 이리도 욕심없이 살고있는 시인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삼보일배 순례가 끝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백지화되면 가방 하나 둘러메고 섬진강가로 가서 시인과 함께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휴대전화 꺼놓고 며칠 푹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시인은 맨날 유랑이나 하며 놀고먹는 사람은 아닙니다. 2000년도에 지리산댐 건설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사무처장으로 지리산 지키기에 앞장섰던 분입니다. 지금은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 순례에 참여하고 있으며, 삼보일배 하시는 성직자들께 드리는 「자벌레의 길」이라는 시도 지었습니다.

자벌레의 길

해창 갯벌의
갯지렁이 한 마리
아스팔트 먼길을 나서시었다
변산반도에서 광화문까지
오체투지의 문규현 신부님이다

지리산의
자벌레 한 마리
삼보일배의 온몸으로 가신다
날마다 삼천배
백척간두 진일보의 수경 스님이다

무릎관절에 물이 차는데
대체 얼마를 더 가야
새만금 갯벌은
그대로 갯벌의 이름이며
살아 그대로
생명평화의 교과서이겠느냐

우리는 더 이상 문상객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참전용사가 아니다

갯지렁이의 먼길
줄지어 눈 깊은 이들이 따르고
지리산 자벌레의 꿈이
참회의 죽비를 내려친다

자벌레의 길
갯지렁이의 길이 아니라면
이 세상의 모든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이렇게 조금은 여유있게 지내고 있는데, 손학규 경기도지사님께서 순례단을 방문하셨습니다. 성직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건강 걱정을 하신 도지사님은 “지방 행정을 하다보면 지역에서는 무조건 개발이 최고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뭐 하나라도 만들어 고용을 기대하고, 건물이 서고 시가지화 되면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으로 새만금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호남지역의 발전을 위해 간척사업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만금갯벌이 가지고 있는 환경적·자연적 의미를 깨닫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이 자연을 뜯어먹고 사는 것인데, 길게 뜯어먹자면 갯벌에서 뜯어먹어야 한다. 내가 직접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스님과 신부님·교무님·목사님 뜻에 기도로나마 동참하겠다. 앞으로 기회가 있는대로 힘이 닿는대로 돕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외에도 풀꽃세상 박병상 대표님과 풀꽃평화연구소 최성각 소장님, 도서출판 풀꽃평화 정상명 대표님, 수원대학교 이주향 교수님 등 몇분이 순례단을 방문하셨습니다.

오늘 아침과 점심은 원불교 오산교당, 저녁은 화성 병점성당에서 각각 준비해주셨고 병점성당에서는 잠자리도 내주셨습니다.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지금 전북 부안군 계화도에서는 지역주민 고은식님께서 홀로 삼보일배를 하고계십니다. 지난 5월 7일부터 시작한 계화도의 삼보일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http://nongbalge.or.kr

※순례가 한 달을 넘기면서 참여하시는 분들도 늘었는데, 삼보일배 순례에 참여하시려면 자신이 마실 물 정도는 준비해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온 길 : 경기도 오산시 경기도산림환경연구원 – 화성시 병점 (5.5km /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251.8km)

※앞으로 갈 길 : 경기도 오산시 – 수원시(5월 15일) – 의왕시(5월 19일) – 안양시(20일) – 과천시(5월 21일) – 남태령(5월 22일) – 서울 사당동(5월 23일) – 여의도(5월 25일) – 광화문(5월 31일) <일정은 날씨를 비롯한 여러 사정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
새만금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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