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고속철도][도롱뇽 소송]도롱뇽의 죽음은 바로 인간의 죽음이랍니다.

2003.11.08 | 미분류

시민의 신문에서 퍼온 글입니다. 도롱뇽소송을 도롱군과 기자의 대화로 풀어냈는데, 일반기사보다 쉽게 읽힙니다. 여운도 한층 더하구요.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도롱뇽의 죽음은 바로 인간의 죽음이랍니다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 도롱군 가상인터뷰

김 기자님  

꼬리치레도롱뇽 도롱군의 갑작스런 방문이 있던 날은 지난 24일 밤 10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서 밀린 기사를 정리하고 있던 기자는 어디선가 들려온 작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10cm 정도의 크기에 미끌미끌한 갈색 피부, 점점 박힌 암갈색의 둥근 무늬, 아랫 눈꺼풀을 덮는 윗 눈꺼풀, 그리고 꼬리가 몸통과 머리를 합한 것보다 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꼬리가 엄청 기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떠오른 이름, ‘꼬리치레도롱뇽.’

밤중에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죄송합니다. 저는 경남 양산에 위치한 천성산에서 살고 있는 꼬리치레도롱뇽 도롱이라고 합니다. 지난 15일 천성산을 관통하는 경부고속철도 공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도롱뇽이 바로 저랍니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그것도 밤중에 불쑥 나타나 놀라셨겠지만 드릴 말씀이 있어요  도롱군과의 예기치 않은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속철도공사 막아요

우선 양해를 구할게요. 전 피부로 호흡해서 이렇게 건조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어요. 빨리 얘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답니다. 인간의 개발 욕심과 무분별한 쓰레기 방출 등으로 계곡도 더러워지고 산성비까지 내려 살 수 있을만한 공간도 얼마 없지만 말이예요.(한숨) 제가 오늘 이렇게 무례할 정도로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단 한가지예요. 인간들이 살고 싶다면 나부터 살려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그러기 위해선 천성산이 살아야 하고, 천성산이 살기 위해선 경부고속철도 공사는 절대 없어야 합니다.

도롱군이 살아야 인간이 살 수 있다? 언뜻 느낌은 오지만 그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인간들은 우리를 1급수 환경지표종(種)으로 분류하고 있죠. 그건 우리가 비교적 수온이 낮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동족의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환경이 오염됐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예전 우리 할아버지와 그 윗세대가 살았을 때 보다 지금 동족의 수는 절반 이상 줄었고 우린 법적보호 양서류 1호로 규정돼 보호를 받게 됐죠. 인간들이 개발을 한답시고 산간 도로공사 등을 마구잡이로 진행하면서 토사가 계곡으로 유입되고 농약, 오물 투기,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등으로 우리가 살 공간이 오염되고 대기오염으로 산성비가 내리면서 우리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도로공사가 진행될 경우 우리가 사는 계곡에 토사가 유입돼 물이끼 같은 초식동물의 먹이가 죽거나 감소하고, 이렇게 되면 우리의 먹이인 곤충, 거미, 지네, 지렁이 등이 다 죽게 되죠. 그럼 결국 우리는 먹이가 없어 죽게돼죠.(도롱군은 죽는다는 표현 앞에서 잠시 망설이며 다른 표현을 찾는 것 같더니 결국 그 표현을 하고 나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로공사는 또 육지와 물을 이동하며 사는 우리의 이동경로를 절단시키는데 이게 아주 무서운 거예요. 동족간 서식지가 단절되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다양한 유전자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돼 집단내 근친교배가 늘어나 악성 유전자가 축적되고 결국 많은 개체들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 남을 수 있는 힘을 잃게 되죠.

인간들은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 꼬리치레도롱뇽만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어리석은 일들을 벌이는 걸까요? 생태계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거 인간들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인간들이 살아갈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일종의 암시라고 볼 수 있어요. 인간들은 산간을 파헤치는 것이 작은 생명들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자기 후손들의 명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요?

공생공존 외면하는 인간이 미워

도롱군이 ‘도롱뇽의 죽음이 바로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찰라 기자의 뇌리를 스쳤다. 기자의 이런 생각을 눈치챈 것일까? 도롱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물론 그 이유가 크죠. 서로 공생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어요.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헤치고 그 속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비단 천성산에 국한되지 않죠. 새만금에 살고 있는 친구들-갯지렁이, 백합 등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고 위도에 살고 있는 수달 친구도 걱정이 태산이라고 들었어요. 그 친구들을 대신해서 용기를 낸 거죠.

또 인간들이 법적 보호 양서류 1호인 우리 꼬리치레도롱뇽과 다른 보호종 친구들이 천성산에 30종 이상 있는데도 보호할 생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화가 났어요. 인간들이 실컷 파괴한 자연을 보고 스스로 ‘이러면 안된다’ 싶어서 환경영향평가법, 특정야생동식물 보호법 등을 만들어놓고 개발 이익 앞에선 그마저 무시하더군요. 보호종인 내가 이렇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는데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동식물이 하나도 없다뇨!(도롱군은 잠시 흥분한 듯 언성을 높였다) 인간들의 모순을 고발하고 전국에서 생명 위협의 공포에 떨고 있는 친구,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인간 법정에 서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기자는 인간법정에 설 용기를 내기까지 많은 고민과 원고부적격 판정의 걱정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법정에 설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어요. 솔직히 처음엔 인간들이 파괴하는 대로 그렇게 죽으면서 모두 파괴된 후 인간들이 후회하고 괴로워하며 죽어 가는 모습을 하늘에서라도 지켜볼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을 멈추게 한 분이 있었어요. 천성산과 우리의 생명을 위해 지난 봄 38일 단식, 삼천배·삼보일배 수행을 진행했고 또 다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율스님이 바로 그 분이죠.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생명을 파괴하지 않았음에도 온 몸을 숙여 잘못을 비는 그 분의 모습에서 모든 인간이 우리에게, 자연에게 잘못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죠. 우리도 우리 생명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자리를 빌어 지율스님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네요.

꼭 승소할 거예요

예전에 98년인가? 재두루미 아줌마가 낙동강 재두루미 떼죽음 사건에 대해 문화재청을 상대로 천연기념물 보호 소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법원은 바로 원고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고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약간 걱정이 되긴 하는데 외국의 친구들은 – 일본의 우는토끼, 미국 플로리다 사슴, 하와이 새 빠리야 등 – 원고 지위가 인정되고 많은 승리를 이뤄냈다고 들었어요. 특히 일본의 우는토끼 친구들은 30년만에 승소했다고 하잖아요. 만약 제가 원고 부적격 판정으로 법정에 제대로 서보지 못한다 해도 인간들의 무분별한 파괴 행위만큼이나 고통을 받는 친구들이 계속 소송을 하고 법정에 설 테니 언젠가 승소 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고 믿습니다. 앗,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제 얘기 꼭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급히 인사를 건네더니 도롱군은 이내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10분도 채 흐르지 않았다. 도롱군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혹시 꿈은 아니었는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자연 생명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힘있게 전한 도롱군의 말들을 우선 정리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도롱군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라며.

김세옥 기자 ks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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