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고속철도]지율스님 단식 41일째, 시민사회단체 긴급기자회견

2003.11.13 | 미분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바람처럼 흩날리고 있던 청와대 앞에서, 변색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계신 지율스님을 위한 기자회견 및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관통 백지화 약속 이행촉구 결의대회를 여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가졌습니다.

한 가녀린 몸뚱이를 가진 생명이 자신의 기름을 다 짜내가며 다른 생명들을 위한 사랑의 불꽃을 피워내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는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던져 놓고 무책임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원통하여 눈 맑은 사람들이 자연의 친구들과 함께 모여 촉구의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불교환경연대의 공동대표이신 세영스님과, 녹색연합의 김제남 사무처장이 맑고도 고운 목소리로 천성산의 생명들과 지율의 생명을 살리라는 촉구의 말씀을 하였고, 지금 천성산에서 매우 급박한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인 도롱뇽과 황조롱이와 소쩍새, 수달, 왕나비 들도 손짓, 발짓, 몸짓을 동원하여 묵언의 소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생명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그들의 소리와 몸짓은 작지만 위대하고, 낮지만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누구보다도 일찍이 그것을 알아, 자신이 살기 위해,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단식을 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들은 이제야 급히 깨달아 도움의 손길을 부랴부랴 보낸 것이었습니다.

부디 이 깨달음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청와대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미덕을 가지라고, 스님의 말라가는 거죽의 따뜻한 털이 되어 주자고, 한사람 한사람 모여 모여 도롱뇽의 친구가 되어 주자고 몸짓을 보여준 후, 아쉽게도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길은 언제나 계속 이어질 것이고, 생명은 영원하니 스님, 부이 살아,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살아 영원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글 : 자연생태국 최성열
    

결국 지율스님의 단식이 40일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 이런 극한의 몸짓이 아니면 받아들여질 수 없을만큼 서로에게 귀 막고, 눈 멀어 있는 것인지요. 몇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지상의 생명을 위한 일이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을만큼 우리 사는 땅은 닫혀있는 것인지요. 우리는 모두 이런 현실을 부둥켜 안고 울고 싶습니다.

아무도 바라지 않았지만, 아무도 붙들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의 침묵은 너무 길었고, 부끄러움은 더할 수 없이 깊어졌습니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들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이 땅의 모든 산과, 나무들과, 들꽃과, 벌레들과, 물소리들이 사람에게 생명 주는 일을 놓아버린다 해도 우리 모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목숨을 건 싸움이라고 하기엔 그분의 몸이 너무 작습니다. 하지만 스님께 왜 목숨을 건 싸움을 하시는가 물으면 아마도 스님은 할 수 있는 가장 단촐한 몸짓일 뿐이라고 마른 몸으로 웃어주실 겁니다.

간디는 행동이란 입으로 하는 것, 침묵을 지키는 것, 행동으로 해야할 것이 있지만,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이 지식으로 확인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율스님의 단식은 천성산이 없으면 도롱뇽도 없음을, 자연이 없으면 우리도 없음을 그 어떤 위대한 책보다 명확하게 읽어주고 계십니다. 스님이 보여주신 행동은 시간을 넘어 그 어떤 지식보다 따뜻한 지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 저희는 당신의 단식을 더 이상 허락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스님의 고귀한 의지를 막을 권한은 없지만, 스님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율스님, 부디 단식을 푸시고 우리와 함께 구차한 삶을 이어주십시오. 오늘도 말 없이 맑은 바람 품어주는 천성산을 위해, 어미 곁에 목 축이는 한마리 어린 도롱뇽을 위해 곡기를 이어주십시오.

그리고 정부는 부디 지율스님의 마른 몸짓을 읽어주십시오.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과 그 친구들의 작은 숨소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개발은 일부의 삶을 위해 모두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희는 우리 삶이 쓴 역사의 한 장에 죽음이 아니라 삶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모든 생물은 서로의 일부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작은 글씨로, 그러나 또박또박 쓰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긴 우주의 시간 속에 아름다운 이 땅과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003년 11월 13일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상한갈대풀잎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