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볼 수 없는 한국표범의 모습

2004.02.05 | 미분류

1960년 합천군에 있는 오도봉에 <표범 확인, 내일 올라감>이라는 전보가 날라왔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던가! 창경원에 도착한 표범을 미리 준비한 우리에 풀어놓고 살펴보니 복슬복슬 탐스러운 1년된 수컷이었다. 한국표범인만큼 눈매가 벌써 날카로웠지만 하는 짓은 어린티가 남아 귀엽기 그지 없었다.

합천의 오도봉에서 온 표범은 한국표범의 좋은 특징을 고루 갖춘 것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굵직한 다리, 날씬한 몸매, 힘차게 뻗은 꼬리, 윤택한 털빛, 큼직한 고리무늬하며 어디 한군데 흠잡을 곳이 없다.



1973년 한표군은 그해 7월 19일 열두살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오직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던 한국표범이 역사에서 사라진 순간이었다.

표범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사는 지역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어지는데 그 가운데서도 동북아시아의 아무르표범을 으뜸으로 친다. 아무르표범에 속하는 한국표범은 예로부터 표범 중의 표범으로 한층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같은 종류의 동물이 남북으로 퍼져있을 때 북쪽의 것일수록 몸집이 커진다. 또 남쪽의 것은 털이 짧고 성기며 색이 진하고, 북쪽의 것일수록 털이 길고 촘촘하며 색이 흐려진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고른 사계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표범같은 좋은 범이 길러지는 것이다.

사라진 한국표범 ,그러나..

이제는 남한에서 더이상 표범을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있다면 북쪽에 대한 기대다. 북한에서도 범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소수나마 살아있다고 한다. 부디 잘 보살펴 멸종만은 면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한국표범이 사라진 까닭.

이 땅에서 범이 자취를 감추게 된 원인은 일제시대에 분별없이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결과다. 원래 한반도에는 범이 득실거릴 정도로 많이 살고 있었다. 자연계에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범과 같은 맹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먹잇감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는 일본 사람들이 해로운 범을 없애서 백성들을 편하게 해준다는 구실로 마구잡이로 범사냥에 나섰다. 일본인 경찰과 헌병들로 토벌대를 만들고 주민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하여 신식 총으로 온 나라를 누비며 싹 쓸어 잡았던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1919년부터 1924년까지 6년동안 잡힌 호랑이가 65마리, 표범이 385마리였다고 하니 우리 나라에서 범들이 얼마나 빠르게 줄어들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기록에 남겨진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로 잡힌 범의 숫자는 몇 갑절 더 많았을는지 모른다. 게다가 일제시대의 마구잡이 사냥에 이어서 6.25전쟁으로 산과 들이 불타  없어져 야생동물이 살아갈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95.가을호 월간 ‘까치’
                                                           오창영박사님 기고 . “한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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