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에 ‘푸른 물’은 없다

2004.02.25 | 미분류

2001년 녹색연합과 중국연변록색연합 활동가 14명이
두만강 중류인 개산툰에서 백두산 천지까지(250km) 걸어서 두만강 오염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답사 .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랑이 흔적을 조사하는 야생동물소모임 회원들

두만강의 초여름, 산과 들은 온통 푸르렀고,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초록색의 모가 바람에 한들거렸습니다. 쟁기를 끄는 소 뒤를 따르는 농부의 모습이 낯설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세도 그 산을 휘감는 강물은 마치 우리가 강원도 영월의 산골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개산툰에서 처음으로 두만강을 만났습니다. 두만강 물에 손을 적셔보려고 강둑으로 달려갔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코를 감싸쥐게 만드는 지독한 악취와 개산툰화학섬유펄프공장(이하 개산툰펄프공장) 하수관에서 뿜어 나오는 엄청난 양의 폐수에 할 말을 잃었지요. 하수구 아래는 화학성분이 덩어리 째 굳어 썩어있고, 짙은 황색과 보라색의 폐수가 유입된 두만강은 색색의 물감을 푼 것 같았습니다.

아픈 다리만큼이나 저린 가슴을 안고 순례단은 두만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무산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두만강은 마치 연탄 몇 트럭을 강물에 부어 휘저어 놓은 것 같은 잿빛이었습니다. 무산철광에서는 철광을 분리하고 남은 돌가루를 그대로 두만강에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무산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는 층계층계로 깎여 있고, 그 단 위로 수십 여대의 불도우저가 노천에서 철광석을 캐 올리고 있었습니다. 인수동에서 만난 김일룡(53)씨에 따르면 두만강에 돌가루 물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69년도부터라고 합니다. 그 때 당시 두만강은 천지만큼이나 새파란빛이었고, 말십조개와 뱀장어가 강바닥에 깔린 자갈만큼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조개는 73년 이후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북한 무산시 전경

두만강의 오염은 안 그래도 살기 힘든 변방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두만강 가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허보옥(56)씨는 “두만강 물로 농사지으면 논바닥에 온통 깡치(돌가루)가 꽉 차서 못 써. 예전엔 이 일대에 논농사가 그득 했는데, 지금은 물도 오염되고 또 물이 없어서 논농사가 안돼.”하며 한숨지었습니다. 허씨의 논밭 가에는 논에서 퍼내 쌓아놓은 돌가루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돌가루가 들어와 땅이 굳어버리면 벼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수확량이 줄어듭니다.

설마 두만강에서 이렇게 시꺼먼 물만 보다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6일째에  우리는 드디어 두만강의 넘치는 ‘생명력’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백두산으로 기슭에서 천혜의 원시림 속에 둘러싸여 강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디맑은 두만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이곳에 다시 조사를 갔을 때 우리는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관광 진흥을 위해 백두산 기슭 두만강 상류에 4차선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 1년사이에 바뀐 두만강의 모습 4차선 도로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화두는 돈을 버는 일입니다.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산간 오지에서 도시로, 돈을 벌기 위한 대이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 변화의 물결 속에 조선족 동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민박을 했던 마을에서 한국으로 돈벌이를 나간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행여 불법체류자로 잡히지나 않았는지 조바심에 마음 졸이며 사는 조선족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조선족 마을마다 부서진 큰 건물은 죄다 ‘학교’였습니다. 백금소학교의 김웅기 교감은 “1992년까지 150명이던 학생이 해마다 20명씩 줄더니 이제 78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작년 1학년 입학생이 9명인데 올해는 입학대상자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려면 용정으로 가야하는데, 졸업생의 반은 돈이 없어 소학교 졸업으로 그칩니다. 입학금 천 위엔(16만원)을 농사짓는 변방의 시골에서 마련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북흥희망소학교에는 한 일본인이 사백만 엔을 학교에 기부했다는 기념비가 운동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현재 연변에 위치한 유일한 환경단체인 연변록색연합에서는 두만강변에 사는 노인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하고 이들이 환경보전에 나서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해마다 많은 한국인들이 두만강과 백두산 관광을 떠나고 있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개발 사업과 보신관광으로 이 지역의 생태계가 점점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해마다 백두산과 두만강을 방문해 이 지역의 환경보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들의 애창곡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처럼 두만강은 여전히 푸릅니다. 하지만 지금 두만강에는 ‘푸른 물’도 ‘뱃사공’도 없습니다. 두만강은 그 푸른 빛깔을 이미 30년 전에 잃어버렸으나 두만강만이 여전히 푸르고 낭만적이길 바라는 우리의 바람만 있을 뿐입니다.

냉정히 보면 지금 두만강에는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물과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두만강에 남아 두만강과 삶을 터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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