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녹색만원계에 대한 기사가 났어요.

2004.06.16 | 미분류

아시아, 그 야윈 손을 잡다
빈곤과 차별을 넘어 하나로… 우리 안의 아시아 · 우리 밖의 아시아와 연대하는 사람들

이주노동자, 아시아 음식 유행 등을 통해 이미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아시아. 더불어 사는 게 거북한 나라, 한국에서도 새로운 연대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도의 빈민 여성에게 소를 사주고, 러시아의 아무르 표범을 보호하고, 캄보디아의 빈곤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직거래하고, 스리랑카의 한국 기업을 감시하고, 인도네시아의 농업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으로 달려간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비좁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드넓은 아시아와 연대하는 움직임이 한국 시민사회 안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 대안무역이 연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명동에서 열린 대안무역의 날 행사에서 몽골 여인이 전통춤을 추고 있다.(사진/ 류우종 기자)

1만원으로 아시아 민중 돕기
‘만원계’는 아시아를 돕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다. 2002년 6월 만원계 홈페이지(10usd.net)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됐다. 만원계는 자발적으로 모인 계원들이 계주를 뽑고 연대할 대상을 찾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월 1만원의 곗돈이 연대 자금이 된다. 현재는 ‘인도 소 사주기계’ ‘스리랑카계’ ‘버마계’가 활동 중이다.

소 사주기계는 인도 타밀나두주의 불가촉천민 마을에 소를 사주는 모임이다. 벌써 인도에 3마리의 소값을 보냈다. 인도의 소 한 마리 값은 40만원 남짓. 10여명의 계원들이 넉달만 모으면 소 한 마리 값이 나온다. 한국의 쌈짓돈이 인도 빈민가정의 생명줄이 되는 것이다.

‘만원계’는 자금 지원을 넘어서 연대 활동까지 벌인다. ‘버마계’는 버마 민주화운동가 부찌(38)를 지원하는 모임이다. 부찌를 비롯한 버마 민주화운동가를 지원하고, 한국 안의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을 돕기도 한다. 버마어를 배우고, 버마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기본이다. 버마계 계원들은 타이의 버마 난민촌을 방문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만원계는 한국 기업을 감시하는 구실도 한다. ‘스리랑카계’는 스리랑카 자유무역지대 노동운동가 카부도스와 연대해 현지의 한국 기업 감시운동을 벌인다. 만원계는 취지문을 통해 “한국은 이미 ‘착취를 당하는 사회’가 아닌 ‘착취를 자행하는 사회’로 바뀌었다”며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 지역의 빈곤과 착취 문제부터 풀어가자”고 제안했다. 아시아는 세계 빈곤층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고, 1억2천여만명의 어린이가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아픈’ 대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산 옷을 입고, 베트남 어린이가 만든 축구공을 쓰고, 타이산 망고를 먹지만, 아시아를 소비해왔을 뿐, 아시아와 연대하지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만원계’의 모델은 ‘녹색 아시아를 위한 만원계’로 이어졌다. 녹색연합이 제안한 ‘녹색 만원계’는 만원계와 운영방식은 같지만, 연대 대상을 아시아의 환경파괴 지역으로 집중한다. 현재 러시아 아무르 표범계, 인도네시아 오랑우탄계 등 7개 모임이 활동 중이다. 이들의 1만원은 녹색 아시아를 가꾸는 희망의 씨앗이 된다. 네팔 낭기마을계가 대표적이다.

△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활동가들과 버마민족민주동맹 회원들이 반전평화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대안무역, 연대의 대안으로

‘낭기마을계’는 의사 임현담(49)씨가 제안했다. 임씨는 산을 좋아하다 네팔까지 사랑하게 됐다. 그는 녹색 만원계 결성 소식을 듣고 히말라야 부근의 마을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연히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낭기마을을 알게 됐다. ‘히마찰 하이스쿨’은 낭기마을의 숲을 지키는 파수꾼 구실을 하고 있었다. 임씨는 함께 등반을 해온 사람들에게 ‘낭기마을계’를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공감한 계원들이 어느새 80명이 넘었다. 캐나다의 밴쿠버 교민 10여명도 동참했다. 이들이 지난 3월 보낸 곗돈 80만원은 동네 우물을 파고, 학교를 수리하는 데 쓰였다. 네팔에서는 1만2천원이면 학생 한명이 한해 동안 쓸 교과서와 교육교재를 살 수 있고, 17만원이면 교사의 한달치 월급을 줄 수 있다. 만원계에는 이처럼 관광객으로 시작해서 풀뿌리 활동가로 변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무르 표범계’는 개발과 밀렵으로 멸종 위기에 몰린 극동지방의 아무르 표범을 보호하는 모임이다. 주민들의 밀렵을 막기 위해 표범으로 피해를 입은 러시아와 중국 현지 민가에 보상비를 지원한다. 계원은 다큐멘터리 감독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하다. 계주인 김동현(42)씨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살려 아무르 표범 보호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열성 활동가로 거듭났다. 표범계는 현지 주민의 안정적 생계 확보를 위해 표범 서식지의 임산물을 직거래하는 대안무역을 모색하고 있다. 이유진 녹색연합 간사는 “국제회의를 다니면서 회의를 ‘회의’하게 됐다”며 “만원계 같은 풀뿌리 연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안무역도 아시아 연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8일 서울 명동에서는 ‘대안무역의 날’ 행사가 열렸다. 아름다운 가게 대안무역팀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는 이날 캄보디아 장애인이 코코넛 나무로 만든 국자와 젓가락, 타이의 고산족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전통문양으로 디자인한 가방과 신발, 인도의 빈곤 여성들이 생산한 향과 수공예품 등을 팔았다. 모두 ‘메이드 인 아시아’다. 김민희 대안무역팀 간사는 “대안무역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잇는 활동”이라며 “대안무역이 아시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아시아적 마인드’
대안무역은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의 직거래 방식이다. 친환경적인 물건을 공정한 가격에 직접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윤리적 거래를 통해 세계 체제의 모순에 도전하는 운동이다. 대안무역 상품의 절대 다수는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생산한다. 이날 행사장에는 물건뿐 아니라 물건을 생산한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전시돼 있었다. 김 간사는 “물건은 공장이 아니라 사람이 생산하는 것”이라며 “대안무역은 상품 뒤에 감춰진 생산자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안무역팀은 인도, 네팔, 필리핀 등 아시아의 30여개 풀뿌리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안무역 운동을 벌이고 있다.

△ ‘아시아적 마인드’를 가진 새로운 세대. 하자센터에서 열린 ‘감전 아시아 파티’에서 청소년들이 아시아 전통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사진/ 하자센터)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 ‘아시아적 마인드’를 가진 세대도 등장하고 있다. 5월22일 서울 영등포동의 하자센터에서는 ‘감전(感傳) 아시아 파티’가 열렸다. 이 파티의 주인공은 한국, 아니 아시아의 청소년들. 엔씨소프트와 하자센터가 공동 기획한 ‘글로벌 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참여한 10팀 30명의 청소년들은 일본,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들의 경험을 발표하는 ‘쇼하자’는 온통 아시아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났고, ‘아시아의 새참’에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아시아 음식이 입맛을 돋우었다. 이날 간디학교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농업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디자인 작업을 하는 10대들은 캄보디아 리욤 대안 디자인학교 친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글로벌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10대들은 아시아의 청소년들과 차곡차곡 공감대를 쌓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프로젝트 기획자 김현경씨는 “여행 지역을 꼭 아시아로 한정하지 않았는데도 대부분 아시아를 여행 지역으로 선택했다”고 전했다. 유일하게 ‘비아시아’인 영국을 여행한 팀조차 영국에서 발견한 아시아의 흔적에 초점을 둔 작업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를 도우며 배우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스스로를 아시아인으로 규정하는 청소년도 생기고 있다. 하자센터의 김태진(17)씨는 타이의 공동체 마을, ‘무반텍’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긴다. 무반텍에는 버마에서 넘어온 난민 청소년, 타이의 버림받은 10대들이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 무반텍에 머물렀다. 이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벽화 작업을 하며 허물 없는 친구가 됐다. 아예 올 7월에는 무반텍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생태마을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 작정이다. 그의 ‘아시아 여행’ 경력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인도를 여행했다. 그 뒤에도 홍콩 등을 여행해 아시아가 ‘낯선 땅’이 아니다. 그에게 아시아는 ‘못사는 땅’이 아니라 ‘친숙한 이웃’이다. 김현경씨는 “어릴 때부터 아시아 여행을 다닌 10대들 중에는 서구 중심주의를 벗어난 아시아적 마인드를 가진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이주노동자를 도우며 아시아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인 박태주씨와 방글라데시인 비조이는 ‘아시아의 친구’가 됐다.(사진/ 아시아의 친구들)

한국 안의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10대도 있다. 박태주(19)씨는 인권단체 ‘아시아의 친구들’에서 일하면서 진짜 아시아인 친구를 얻었다. 박씨는 올 3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시아의 친구들에서 일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4월 한달동안 교통사고로 다친 방글라데시인 비저이(18)를 돌봐주면서 친구가 됐다. 비조이는 당시 오른쪽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박씨는 하루 종일 비저이의 수발을 들고, 병원에 함께 가는 일을 도맡았다. 박씨는 비저이를 통해 방글라데시를 이해하게 됐다. ‘아까바사’라는 방글라데시식 별명도 얻었다. 둘은 일어나면 “깨무낫덴”(잘 지냈냐)이라고 인사하고, 점심 때면 로띠(빵)를 만들었다. 박씨는 “가난하지만 낙천적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참 매력 있다”며 “앞으로도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1월 방글라데시에 갈 생각으로 들떠 있다. 차미경 ‘아시아의 친구들’ 대표는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의 축복”이라며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명기 경북대 인류학과 교수도 “단일 정체성 사회인 한국이 민족적, 종족적 다양성을 가진 아시아 국가와 연대할 준비가 돼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도 “한국 사회가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아시아 나라와 연대를 통해 다양성을 배우고, 우리 안의 소수자, 비주류, 주변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시아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라
‘아시아의 친구들’은 어린이를 아시아의 희망으로 여긴다. 이런 마음에서 지난해 11월 사무실 한켠에 어린이를 위한 ‘평화방’을 열었다. 이 박물관에는 아시아의 전통물품뿐 아니라 아시아의 참상이 전시돼 있다. 또 ‘아시아 전래놀이 배우기’ ‘이주노동자 언니오빠의 한국 생활’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해놓고 있다. 지난 어린이날에는 방글라데시 음식인 ‘비란’ 등 아시아 음식으로 푸짐한 상을 차리고 잔치도 벌였다. 차미경 대표는 “기성세대에 비해 어린이들은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을 쉽게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어린이는 아시아의 미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아시아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시아인에게 한국은 정치 민주화도 쟁취하고, 경제성장도 이룩한 따라 배우고 싶은 나라로 여겨진다”며 “한국의 이미지를 동북아 경제 중심국이 아니라 아시아 인권 선진국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아시아를 보살피고, 우리 밖의 아시아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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