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IWC회의 현장소식 네번째

2004.07.23 | 미분류

[참가중]국제포경위원회 제56차 연례회의를 열며-④
과연 누구를 위한 고래보호구역인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은 대형 대왕고래 모형을 전시하며 고래 보호를 홍보하고 있다.  

회의가 중반을 넘기면서 포경 찬성국가와 반대국가 사이에 지루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제 미처 결론을 내지 못한 고래를 잡는 방법과 관련된 동물복지 문제 관련 결의안을 다시 한번 논의했지만 자국의 과학자와 과학적 발견을 앞세운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뉴질랜드와 노르웨이 등 몇 개국이 좀 더 논의해서 다시 검토하자는 것으로 끝이 났다가, 오후에 새로 수정한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회의장의 모습

오늘 회의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것은 ‘남극해 고래 보호구역’ 폐지와 ‘남태평양 고래 보호구역’ 및 ‘남대서양 고래 보호구역’ 설정 문제였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1994년에 설정된 남극해 고래 보호구역 10주년을 맞아 이의 타당성과 효과를 검토하고 이를 연장할 것인가 논의해야 하는데, 일본은 고래보호구역 설정 자체가 과학위원회의 구체적인 검토 없이 포경 반대국가들이 밀어붙인 결과라며 고래 보호를 위해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고래보호구역을 폐지해야 하며, 자신들은 올해부터 5년간 남극해에서 2,914마리의 밍크고래를 해마다 잡겠다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지금 남극해가 고래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는데도, 해마다 일본은 440여 마리의 밍크고래를 ‘과학적 연구조사 목적’으로 잡아 포경 반대국가와 환경단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고래 보호구역도 폐지하고 잡겠다는 고래 숫자도 훨씬 부풀렸으니 포경 반대국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일본의 제안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일본은 남극해에 76만 1천 마리의 밍크고래가 있다고 주장하며 해마다 3천 마리까지 잡아도 개체군 생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 브라질, 독일 등 포경 반대국가들은 이러한 추산이 과학위원회의 공식적인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집중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아직까지 고래 보호구역 설정으로 인한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많지 않지만, 해양 환경과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고래 보호구역은 여전히 유효하며, 고래를 잡지 않고 고래 관광 등을 유도하면 또 다른 방식으로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남태평양에서 온 고래사랑 홍보사절의 집, 티피

이에 대해, 이미 독자적으로 고래를 포획하고 있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기니, 베닝 등의 일부 국가는 일본을 지지하며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남극해 고래 보호구역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일본도 가장 덩치가 크면서도 멸종위기에 직면하여 보호대상 1순위인 대왕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밍크고래의 숫자를 조절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의 입장이었는데, 한국 대표는 “남극 고래 보호구역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므로 연구과 조사를 더 많이 한 후에 정해야 하며, 일본이 남극해에서 밍크고래를 잡겠다는 것에도 찬성한다. 이것은 관리 계획수정 방식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국제포경위원회 내에서의 합의가 중요하다”며 포경 찬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호명 투표를 통해 일본의 제안이 부결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는데, 한국은 투표에 기권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제안한 ‘남태평양 고래 보호구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제안한 ‘남대서양 고래 보호구역’ 문제도 거의 똑같은 양상의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제안한 나라들은 고래의 번식지와 먹이 공급지, 이동경로를 보호하며, 관광을 활용하여 고래라는 해양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보호구역이 설정되어야 한다며 국제적인 지지를 간곡히 호소했지만, 일본, 노르웨이 등 포경 반대국가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게다가, 투발루, 기니, 안티구아 바부다, 산타루시아 등 작은 인접 국가들은 자신의 경제와 식량 문제가 바다와 어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많은 수산자원을 먹어치우는 고래를 보호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고래 관광을 유치하도록 투자하는 것도 힘들다는 하소연도 하며, 고래 보호는 자국의 해역에서만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결국, 이 제안들도 각각 표결에 부쳐졌는데, 과반수이상의 지지를 얻었지만 3/4 이상의 지지는 얻지 못해 고래 보호구역이 설정되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은 앞으로 5년 동안 북서태평양에서 밍크고래와 브라이드 고래를 각각 150마리씩 잡겠다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소수 원주민에게 생존을 위해 고래잡이가 제한적으로 허용된 것처럼 오랜 포경 역사와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과 몇몇 지역사회를 위해 고래를 잡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역시 양측이 격론을 벌이다 표결을 통해 부결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이미 그런 역사와 문화는 책과 사진 속에나 있는 것이다. 다음 회의 개최지인 한국 울산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어민들의 고래잡이 문화를 그대로 보전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좀 더 기다려야한다’는 신중한 의견을 내며 실제 투표에서는 각각 기권했습니다.

이렇게 첨예한 대립과 논쟁이 반복되며 회의 일정이 많이 늦어지자 오늘은 회의를 자정을 넘긴 새벽 0시 50분까지 진행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양측의 주장을 들으며, 고래와 해양 생물다양성 보호가 힘없는 작은 나라의 사람들의 경제와 문화 보전에도 기여할 수는 없을까 고민해봅니다.

작성일/ 2004년 7월 20일
글, 사진/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국 마용운

출처; http://cice.kfem.or.kr/cgi/actlast.php?tb=Hissue&lc=&dc=&no=1489&cnt=479&pg=1&d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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