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고래, 오래된 미래

2005.01.03 | 미분류

귀신고래, 오래된 미래
-경상일보 1월3일자, 경상시론

울산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귀신고래(Gray Whale)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귀신고래를 “울산의 고래”로 말하지만 사실 귀신고래는 러시아 오호츠크해에서부터 우리나라 동해를 거쳐 따뜻한 남지나해까지 오고 가던 회유성 고래다.

 여름철을 오호츠크해에서 보내는 귀신고래는 바다의 수온이 떨어지면 한반도 동쪽 연안을 따라 남하해서 따뜻한 바다에서 아기 고래를 낳고 봄이 오면 다시 오호츠크해로 돌아간다. 울산에서 보자면 11, 12월에 울산바다를 지나 남하를 하고 3~5월쯤 북상을 하던 여행자와 같은 고래다.  

그런데도 울산은 귀신고래와는 인연이 깊다. 울산이 가진 국보인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반구대 암각화에도 아기를 업고 가는 귀신고래 그림이 새겨져 있고, 귀신고래가 회유하던 바다를 천연기념물로 정해 놓고 있다. 그러니 귀신고래를 우리 고래라고 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귀신고래는 1967년에 동해에서 마지막으로 발견 된 이후 우리 바다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필자는 2001년부터 방송과 언론 지면을 통해 우리가 40년 가까이 기다리고 있는 귀신고래가 러시아 오호츠크해 연안에 100여 마리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해 왔다.  

그러한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타전한 단체는 사할린의 환경단체인 “사할린인바이러먼트워치”였다. 그 단체는 귀신고래 서식처인 사할린 연안 근처에서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유전개발을 펼치면서 귀신고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사실을 처음으로 고발했다.  

귀신고래를 위협하는 사할린Ⅰ프로젝트는 다국적 석유기업 엑슨 모빌이 참여했고, 현재 진행중인 사할린Ⅱ프로젝트는 다국적 석유기업인 쉘이 추진하고 있다.

사할린인바이러먼트워치는 대규모 유전사업으로 귀신고래들이 서식지를 점점 잃어가고 있으며 그 스트레스로 말라죽어 가는 귀신고래가 많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했다.  

실제로 현장을 다녀온 과학자의 증언에 따르면 기업들이 유전을 찾기 위해 귀신고래들이 살고있는 바다 밑바닥을 쓸어내고 그 곳에 구멍을 뚫는 일로 소음과 엄청난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바다 위로는 유전사업때문에 많은 배들과 헬리콥터들이 오가고 있어 귀신고래들은 하늘과 바다, 수면 속까지 입체적, 총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가 심각해 그곳의 원주민들까지도 생존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동물보호법과 세계연안서식지 보호정책을 무시한 유전개발이 귀신고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지금 개발되고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고객에 한국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환경운동 단체인 녹색연합에 “귀신고래 만원계”란 모임이 있다. 올해 울산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에서 귀신고래의 소중함을 알리고 보호활동을 펼치려는 모임이다.  현재 5명의 회원이 가입해 귀신고래 보호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월 1만원의 회비를 내고 있다. 귀신고래 포스터를 제작해 판매하며 그 수익금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바위로 계란을 치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귀신고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고 실천하는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시노래 모임인 울산사랑시노래회 “푸른고래”는 지난해 10월과 11월 귀신고래가 돌아오던 동해안을 돌며 고래노래 순회 공연을 가졌으며, “시민과 함께 하는 문학”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울산작가회의는 울산시와 함께 고래를 사랑하는 문학적 정서를 담은 고래 영문시집을 제작해 세계로 알리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귀신고래를 기다려왔을 뿐 귀신고래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해야될 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지난해부터 귀신고래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작은 움직임들이 시작되고 있어 반갑다.

새해에는 귀신고래를 울산바다로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할 때이다. 그 일은 환경단체, 예술단체, 행정의 일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울산에서 오늘을 사는 울산 사람의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 일은 울산의 풍요로웠던 과거를 미래에 고스란히 되살리는 일이다.

정일근(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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