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문화다

2005.03.11 | 미분류

고래는 문화다

정일근(시인. 울산작가회의 회장)

재미동포인 ‘바비 킴’이란 가수가 ‘고래의 꿈’이란 음반을 냈다. 데뷔 11년 만에 지난 해 7월 말 첫 음반을 냈다. 그 음반이 나올 때까지도 그는 서러운 무명이었다.  
그러나 그 음반의 타이틀곡인 ‘고래의 꿈’은 바비 킴의 독특한 솔 창법과 젊은이들이 가진 고래에 대한 친근성에 힘입어 순식간에 음반시장을 달구었다. 결국 그는 지난 해 ‘고래의 꿈’으로 단숨에 최고의 인기 가수가 되는 꿈을 이루었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이란 노래가 있다. 1984년 같은 제목으로 배창호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노래는 군사독재 시절 대학생들의 울분을 대신하는 노래로 인기를 끌었고 당국으로부터 금지곡이 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바비 킴의 ‘고래의 꿈’이나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고래를 잡자는 노래가 아니다. 고래의 꿈은 젊은이들의 사랑노래다. 진실한 사랑을 찾아 고래가 되어 바다로 떠나는 꿈을 노래했다.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가자’는 고래사냥도 고래를 잡자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 속에 숨은 있는 푸른 희망을 찾자는 것이다. 영화 고래사냥도 마찬가지였다. 고래는 먼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다.
바비킴의 노래 ‘고래의 꿈’의 성공은 울산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는 50곳의 고래고기 식당이 지난 한 해 올린 영업수익을 당연히 능가했을 것이다. 영화 고래사냥의 성공도 당시 포경전진기지였던 장생포의 명성에 못지않았다. 장생포는 포경금지 이후 낙후한 항구로 전락했지만 고래사냥은 1996년에 이윤택의 연출로 젊은이들이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을 그린 한국의 로드 뮤지컬로 제작돼 다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나는 바비 킴의 노래 ‘고래의 꿈’의 성공에서 문화의 힘을 읽는다. 고래 한 마리 잡지 않고도 고래를 노래함으로 무명의 가수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우리도 그 힘을 찾아야할 때다.
IWC(국제포경위원회) 울산회의를 앞두고 장생포 지역 주민들이 포경재개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고래 개체수의 증가로 주민들의 어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래로부터 어업권을 보호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연간 100마리 정도의 고래를 잡도록 허가해 달라’는 주장에 더 큰 무게를 싣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고래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포경이 아닌 시급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느 기관에서도 고래개체수의 증가와 그에 대한 어민 피해를 확인하는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포경 재개를 심의하는 IWC 과학위원회를 설득 시킬 과학적인 자료가 없다.
하지만 그린피스는 울산지역에서 불법 포획된 고래가 거래되고 있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린피스는 오는 4월초에 ‘레인보우’호를 울산항에 정박시켜 고래보호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고래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다. 울산은 ‘낡은 포경의 추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울산시가 야심차게 선언한 ‘에코폴리스 울산’에 맞게 고래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문화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고래를 보다 적극적인 문화의 인프라로, 문화의 코드로 설정해야 한다.
고래를 잡을 경우 대부분 이익이 고래고기 식당주인들에게 돌아가지만 고래도시로 변모했을 경우 그 이익이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지난 해 포항에서 구룡포읍 강사리 속칭 ‘다모포’ 주변 일대를 고래생태마을로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로는 불가능한 포경허용에 목소릴 높이고 있다가는 선사인들의 고래암각화를 가지고 있는 ‘고래의 본향’인 울산이 그 자리마저 내 놓아야할 지 모른다. 고래도 분명 문화다. 서둘러야할 때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