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고기 거래가 고래 멸종 부른다

2005.04.16 | 미분류

고래고기 거래가 고래 멸종 부른다

[내일신문 2005-04-14 12:51]  

6월 울산에서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총회 … 고래잡이 금지 해제 움직임

“우리도 너무 늦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크고 많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느라 뛰어다니는 동안, 그들은 수없이 우리를 향해 ‘SOS’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쳤을 것이다. 영원히 사라져간 저 귀신고래처럼. 지금 철없이 남아 있는 돌고래도 급격하게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동해안은 온통 고래 덫밭이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11일 동안 그린피스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같이 타고 고래조사 항해일지를 쓴 거제환경연합 윤미숙 정책실장의 고백이다.

한국 동해에서 ‘북태평양 밍크고래’(Balaenoptera acutorostrata) J-개체군(북태평양의 밍크고래 가운데 동해를 회유하는 개체군)으로 불리는 고래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IWC(국제포경위원회)는 1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한국 귀신고래’(Eschrichtius robustus)가 가까운 미래에 멸종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놓인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우연히’ 잡힌 고래, 즉 ‘혼획’으로 잡힌 고래고기 거래는 합법적이다. IWC에 제출한 한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고래 혼획 비율은 고래고기가 거래되지 않는 국가에 비해 80배나 높다.

이러한 높은 혼획율은 상업적 포경이 재개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에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고래 종이 왜 자꾸 줄어들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주도하는 고래잡이 찬성국들은 오는 6월 울산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총회에서 고래잡이 금지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사할린 유전 개발과 귀신고래 = 1982년 이후 전세계으로 고래잡이는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의 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극에서 서식하던 고래의 90%가 사라졌고, 거대한 ‘대왕고래’(Balaenoptera musculus)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 25만마리에 달했던 수가 지금은 1000여 마리에 불과하다.

고래는 매우 긴 생식주기를 가진 포유동물이다. 보통 한 번에 한 마리씩 낳고, 태어난 자식를 키우는 데 최소한 2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고래의 개체수가 회복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래 수의 감소를 막기 위해 1946년에 국제포경위원회가 설립되었지만 환경적 위협은 오히려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고래는 바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고래 몸 속에서는 높은 농도의 수은과 다른 독성물질이 발견된다. 특히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은 지방성분과 잘 결합하기 때문에 고래 기름에 많이 축적된다.

2002년 일본에서 판매되던 향고래 고기에서 허용기준인 0.4ppm을 초과하는 1.47ppm의 수은이 발견되자 일본 정부는 이 고래고기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같은 해 노르웨이 정부는 고래고기 가공품에서 인간에 해로운 독성물질이 발견되어 일본 수출을 포기해야 했다.

상당수의 거대 고래가 먹이를 구하는 남극해의 빙하가 녹고 있는 것도 문제다.

빙하 아래에서 자라는 플랑크톤은 크릴과 같은 작은 갑각류의 먹이가 되고, 크릴은 고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극 생물의 주요 먹이가 된다. 빙하가 사라지면서 크릴도 사라지고 있다. 남극 바다의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해안 개발도 고래에 큰 위협이다.

특히 한국 귀신고래는 러시아 사할린 해역에서 지행 중인 쉘의 석유 및 천연가스 채굴사업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채굴 지역을 가로 10km, 세로 70km로 확대하려는 계획은 귀신고래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 채굴와 수송으로 인한 오염, 선박 교통량 증가, 지진파 시험 등으로 인한 소음은 고래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

한국 귀신고래는 연안 주변에서 먹이를 구하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나쁘다. 한국 귀신고래는 예로부터 러시아 사할린 연안에서 여름과 가을철 먹이를 구해왔는데, 많은 고래가 스트레스로 인해 살갗을 통해 뼈가 보이는 지경으로 말라가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포경 오히려 성행 = 고래고기 거래는 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고래가 과학적 조사와 연구라는 구실로 포획되고 있고, 불법적으로 혹은 우연히 잡히고 있다.

고래잡이를 찬성하는 국가들은 포경금지조약을 어기지 않고 고래를 잡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연구 목적의 고래잡이를 허용하는 법안의 허점을 이용,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계속 고래를 잡고 있다. 일본에서 연구에 사용된 고래고기의 판매액은 연간 미화 55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국제포경위원회는 이러한 연구 활동에서 나온 자료는 필요하지도 않으니 관련 연구를 중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한국에서 매년 100여 마리의 대형 고래가 연안에서 어망에 걸려든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잡힌 고래는 혼획된 것으로 분류되어 판매된다.

2004년 고래 한 마리는 우리나라에서 약 1억원을 호가했다. 어민들은 그물에 걸려든 고래를 풀어주기보다는 포획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1996년 일본에서 좌초되었다고 보고된 한국 귀신고래에서 여러 개의 작살이 발견되기도 했다.

◆일본 지원 받은 나라들 무더기 가입 = 5월 27일부터 6월 24일까지 울산에서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가 열린다.

이번 회의를 위해 울산시는 장생포에 고래 골격과 포경선, 기념물 등을 전시하는 고래박물관을 준공할 계획이다. 브라이드고래 골격을 비롯한 상당수의 전시물은 일본 정부가 기증했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쟁점은 ‘포경 허용’ 여부. 일본 정부가 이끄는 포경 찬성 세력은 국제포경위원회가 포경 금지 조치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고래잡이 금지를 해제할 수 없자, 일본 정부는 공개적으로 고래잡이 재개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는 국가를 국제포경위원회에 가입시키고 있다.

최근 베닌과 가봉, 기니, 모리타니아, 코트디부아르, 심지어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말리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제포경위원회에 가입했는데, 이들은 모두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았고 즉각적인 포경 재개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국제포경위원회의 회원국이 60개국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1999년 이래 12개 나라가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가입한 셈이다.

200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 연례회의에서 한 일본대표는 포경 재개 제안을 철회하면서, “내년까지 다수 세력을 형성해서 포경 재개 제안을 다시 한번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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