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히말라야 순례기 책펴낸 의사 임현담 씨 – 한겨레신문

2005.05.02 | 미분류

* 무단배포 금지라고 하는데,
만원계 이야기가 있어서 무단을 저질렀습니다.
  
[한겨레] “큰차·골프 대신 구름·강에 눈 돌려”

“사람들이 인도에 가면 답이 있다고 했는데…”
서른다섯 살, 한창 잘나가던 진단방사선과 개업의였던 임현담(50· 사진)씨가 그런 내면의 갈망을 안고 히말라야로 향한 것은 지난 1990년이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지난달 18일 <가르왈 히말라야-인도 신화의 판테온>이라는 책을 펴냈다. 히말라야는 인도의 서쪽 끝인 파키스탄쪽으로는 가르왈 히말라야로, 동쪽 끝으로는 시킴 히말라야로, 인도 북부와 접해있는 가운데 부분은 네팔 히말라야로 각각 불린다.

이미 <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와 <시킴 히말라야-히말라야의 진주>를 펴냈던 그가 이토록 히말라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전문의를 그만두고 진단방사선과를 낸 그는 매일 매일 암과 각종 종양, 폐렴, 결핵 등 환자들의 병을 찾아 치료하는 일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도 죽음은 있는데 사는 게 뭔지, 해답이 인도에 있다는 말에 한걸음에 병원을 닫고 인도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가 지닌 것은 달랑 등에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중병환자 치료하다 삶의 답 찾아 인도행
봉우리와 대화 “나와 산의 경계 무너져”

하지만 처음 간 인도에서 그는 답을 찾지 못한 채 귀국했고 또다시 3개월 뒤에 인도를 찾았다. “갠지스 강 앞에서 새벽 추위에 떨고 있는데 한 노인이 ‘추운 것은 강물 때문인데 강물은 히말라야에서 흘러온다. 젊은이, 히말라야는 우리의 천국이니 가보시게’라는 말을 듣고 바로 히말라야로 향했죠.” 이 짧은 만남은 그의 30∼40대를 주저함이 없이 히말라야로 향하게 만든 ‘열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매년 짧게는 두어 달에서 서너 달씩 병원 문을 걸어 잠거나 다른 의사를 불러 맡긴 뒤 히말라야의 구석구석을 찾았다. 인도 최고 성산이라는 난다데비를 거쳐 네팔의 캉첸중가, 초모랑마, 안나푸르나에서 낭가파르밧까지 그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짐꾼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산사태가 나서 이빨도 부러지고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기도 했다”는 그는 답을 얻었을까. “큰 차, 좋은 집, 적금통장, 골프, 이런 것들 다 접은 대신 새롭게 구름과 강, 수행자로 눈을 돌렸죠. 봉우리가 저마다 간직한 힌두의 신화들과 대화하면서 내안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죠.” 수많은 강물이 산에서 내려와 갠지스로 합쳐지고 바다로 내려가 하나 되듯,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을 매번 처음 볼 때 마다 그는 “산과 나 자신과 경계가 없어지는 듯한 체험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다만 편안한 상태”라고 말했다.

히말라야를 오가면서 녹색연합에서 제안한 ‘만원계’(회원들 1인당 매달 1만 원씩 내 지원)를 만들어 현재 히말라야의 오지인 ‘낭기마을’ 돕기에도 나서고 있는 그의 히말라야를 향한 여정은 멈출까. 결코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막을 지나던 한 여행자가 목이 마른데 우물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물을 마시는 순간까지 설혹 물을 마셨다고 하더라도 히말라야 순례는 이어질 것입니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