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부지,고래 잡으셨다

2005.12.22 | 미분류

<오마이뉴스>2005년 12월 20일

        

“네  아부지, 고래 잡으셨다” [오마이뉴스 2005-12-20 16:21]             

        
        
        
        

                
        
        [오마이뉴스 김명섭 기자] ▲ 아버지가 잡으신 밍크고래 ⓒ2005  김명섭

아침 이른 시간 어머니의 전화였다. 객지 생활 10년이 다 되어가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머니가 전화하시는 일은 없었다. 핸드폰을 연 순간 맨 처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니 아부지 고래잡으셨다”는 짤막한 외침이셨다.

“네? 고래요?” 이렇게 대답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히 어머니의 뒷말을 기다렸다. “니 아부지가 오늘 새벽에 밍크고래를 잡으셨단다, 너 이제 장가보내야것다.” 전화로 상황공유를 끝내면서 어머니처럼 흥분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8일은 흔히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밍크고래가 우리 아버지 손에 잡힌 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가 쳐놓은 그물에 밍크고래의 꼬리가 걸려 죽은 채 포획되었다고 한다. 간간이 인터넷뉴스에서 사진과 함께 흥미있게 보던 기사의 주인공이 우리 아버지가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와 함께 흔히 통통배라 불리는 2.6t급 소형선박을 가지고 철마다 나는 주요어종을 잡으시며 우리 가족을 지켜오셨다. 요즘은 도루묵잡이로 정신없으시다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시게 되었다. 전화 통화 후 3일이 지나 강원도 주문진에 있는 고향집에 가서 아버지에게서 고래를 잡은 후일담을 들었다. 그 생생했던 순간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 본다.

 
▲ 크레인으로 운반 중인 밍크고래
ⓒ2005  김명섭

기자(아들)=요즘 잡으시는 어종은 어떻게 돼요?

남진호 선장 (아버지)=”요즘 도룩묵 잡지. 니 작은 아부지랑 같이 새벽 2시반이면 출항해서 아침 7시에나 되어야 입항해. 도룩묵도 이제 끝물이라 그물을 풀려고 했었지.”

– 고래를 잡으시던 그날을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그 전날 기상이 안 좋아서 쳐놓은 그물을 하루 묵혀 뒀지. 그리곤 어김없이 새벽에 출항해서 주문진항 북방 약 50마일 해상 정도, 우리 그물을 쳐 놓은 데까지 갔어. 그러고는 네 삼촌이랑 그물을 확인하고 줄을 기계에 잡아 묶고 올리기 시작했지. 그날따라 파도도 높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 작업하는데 애를 먹었어. 근데 다른 때와는 다르게 그물이 묵직한 것이 그물 당기기가 너무 어려운 거야. 그래서 우리 그물에 다른 배가 쳐놓은 그물이 얹혔다고 생각했지.”

– 그물이 얹히다니요?

“고기가 그물에 많이 걸려서 무거운 때도 있는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그러면 이 정도 무게감이면 보통은 다른 배들이 쳐놓은 그물과 우리 그물이 서로 엉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그래서 바로 주변에 있는 다른 배들한테 무전을 쳤지. 여기 남진호인데 혹시 우리 배가 쳐놓은 그물 주변에 그물 쳐놓은 배가 있느냐고. 그랬더니 무전에서 별 연락이 없어. 그런데 그 전날 동진호 선장이 나한테 오더니 ‘형님, 제가 형님 그물 옆에 우리 그물을 놨어요’ 하던 게 생각이 났지. 그래서 다시 동진호를 무전으로 불렀어. 그랬더니 동진호 선장이 자기 그물이 우리 그물과 얹힐 만큼 가깝지는 않다는 거야. 그래서 일단은 그냥 끌어올리기로 했지.”

– 바로 고래가 보이던가요?

“아니야, 한참을 올렸는데도 기계가 너무 버거워하니까 니 삼촌이 차라리 끝에서부터 다시 감자고 그래. 그래서 올리던 것을 멈추고 반대편 그물부터 다시 당기려고 준비를 했지. 그런데 올라오는 그물의 상태를 보니까 그물 살이 다 뜯겨져서 올라오는 거야, 이상하다싶던 찰나에 물밑에서 무슨 검은 물체인데 엄청 큰 것이 어른거려. 다급해진 나는 네 삼촌한테 서치라이트를 가져오라 하고선 물밑을 비쳤더니 틀림없이 고래인거야. 나는 ‘진수야, 이거 고래다! 고래’ 하고서는 그때부터 우리 둘은 거의 혼비백산이었지.”

– 그 큰 고래를 두 분이서 배 위로 올렸어요?

“배 톤수만큼 나가는 놈을 무슨 재간으로 올려, 올리긴. 일단 꼬리부터 올라오기에 꼬리를 굵은 밧줄로 배 뒷머리에 묶고 차츰 앞머리를 배 앞으로 바싹 끌어당겼지. 그날따라 파도랑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이건 아주 죽을 맛이더라고. 한 시간이 넘게 그 놈을 단단히 묵고 그러고는 주문진항으로 들어오게 됐지. 나중에 보니까 길이가 한 6m 정도 되고 무게도 2t이 넘는 밍크고래더라구.”

– 고래를 끌고 오면서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왜 안 힘들겠어. 보통 두 시간이면 오는 뱃길인데, 두 배나 더 걸렸지. 고래무게가 있다보니 배가 한참 기울어져 제대로 운항하기도 힘들었어. 일단 바로 무선국에 고래잡은 사실을 무전으로 알리고 해경에 신고했지. 그러고는 네 엄마한테 바로 전화하고.”

 
▲ 언론과 인터뷰 중이신 남진호 선장님
ⓒ2005  김명섭

– 집에서 소식을 들은 어머니나 할머니도 적잖게 당황하셨겠네요?

옆에 계시던 어머니=”소식 듣고 바로 할머니랑 같이 주문진항으로 택시타고 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난리고. 고래를 항구 위에 올려다 놓으니 관광객들 몰려들고 사람들 틈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고래가 한 5천만원 한다기에 내년 봄에 네 장가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 혹시 고래잡기 전날 좋은 꿈 꾸지는 않으셨나요?

옆에 계시던 어머니=”우리는 없는데, 나중에 동네 아주머니가 오셔서 자기가 좋은 꿈 꿔줬다면서 한턱내라 하더라. 그 아주머니가 꿈에 우리집에 왔는데, 긴 수염을 가진 웬 할아버지가 우리집 안방에 가부좌를 틀고 긴수염을 쓸여내리고 있는 꿈을 꿨다고 하더라.”

– 고래 입찰가는 마음에 드셨어요?

다시 아버지=”2천만원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1970만원에 낙찰됐어. 아쉽지만 그저 만족하지 뭐.”

– 이제 그 돈으로는 뭐하실 계획이세요?

“네 동생 눈이 안 좋은 것 뻔히 알면서도 그동안 그 라식수술해주지 못해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 기회에 그 수술해줘야겠다. 그러고는 빚 갚아야지. 내 죽기 전에 니들한테 빚은 넘겨주지 말아겠다 생각했는데, 아무튼 다행이지 뭐.”

– 저한테는 뭐 없어요?

“아부지가 술 한 잔 사주마.(웃음)”

그 뜻하지 않은 고래 덕분에 밤늦도록 우리집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세간 사람들은 고래가 바다의 로또, 뜻하지 않은 횡재라고들 말하지만, 깊게 팬 아버지의 주름살과 다 튼 손등이 말해주듯이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묵묵히 바다를 지켜온 아버지에게 거저 오는 횡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번 없으셨던 아버지는 자신이 잡은 고래 사진을 크게 뽑아 액자에 담아 놓으셨다. 그 사진 한 장이 ‘아부지’의 마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 이 순간이 그간의 힘든 과정을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여유가 되길 바랍니다. ⓒ2005  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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