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案문명③-1] 일본 대안학교 ‘기노쿠니 어린이 마을’ : 주제 정해 1년간 체험학습

2003.01.20 | 미분류

일본에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지메’를 당하는 등의 이유로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부등교(不登校)’ 학생이 지난해 12만명을 넘었다. 일본 공교육의 위기는 심각하다. 그래서 산골마을 한 작은 학교의 ‘교육혁명’은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하시모토(橋本)시 히코타니(彦谷)라는 산골의 ‘기노쿠니(木の國) 어린이 마을’엔 시험도 숙제도 없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스스로 알아서 한다.

선생님은 더 이상 권위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의 친구다. 엄한 규율보단 함께 하는 삶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그 곳은 단순한 ‘대안학교’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 이색적인 학교의 교육 프로젝트는 일본의 공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골 마을을 찾은 것은 낙엽 냄새가 물씬 나는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오사카(大阪)에서 기차로 한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하시모토시. ‘기노쿠니’에 가려면 이 곳에서 스쿨버스나 택시를 타고 산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마침 주말에 집에 다녀오는 아이들과 만나 함께 택시를 탔다.

초등학교 6년 다마타(12)와 중학교 2년 사카니시(14)는 차안에서 내내 독버섯 얘기만 했다. 둘은 교내 ‘독버섯 연구반’ 멤버다. 11월 중순까지 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채집한 독버섯이 충분치 않다고 걱정했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20분 정도 달려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 기노쿠니가 나타났다. 산속 마을의 공기는 겨울처럼 차가웠다. 호리 신이치로(掘眞一郞·57)교장이 취재진을 맞아준다. 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이지만 그냥 ‘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호리 선생이 담임을 맡고 있는 ‘정원만들기’반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남은 학기의 일정과 수업계획을 의논하는 중이었다. 여행·감따기·화분정리·보고서 발표 등 할 일이 많지만 아이들은 한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전원이 납득할 때까지 서로 의견을 내놓고 열띤 토론을 한 뒤 “다같이 해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회의진행을 맡은 여학생 마키(12)가 ‘아름다운 휴게소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제안했다. 아이들이 모두 “좋다”며 찬성했다. 그러자 이번엔 회의를 지켜보기만 하던 호리 선생이 슬쩍 끼어든다.

“그런데 여러분 여행갈 돈은 있어요? 모아둔 돈이 다 떨어진 걸로 아는데….”

이렇게 교사들은 간섭하지 않는 대신 토론의 방향을 잡아주고 현실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안해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도 토론은 이어진다. 탄력을 받은 듯 회의는 더욱 활발해졌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수업일정을 마치 토론 게임이라도 하듯 즐겁게 확정해갔다.

1992년 4월 개교한 이 학교에는 없는 게 많다. 우선 ‘선생님’이라는 호칭부터 듣기 힘들다. 교장인 호리 선생조차 아이들에게 ‘호리짱’으로 불린다.

학년도 없다. 초등학교의 경우 모든 반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섞여 있다. 때로는 중학생도 같이 생활한다. 완전한 무학년(無學年) 학급편성이다. 학년에 관계없이 반을 편성할 수 있는 것은 교과간 벽이 없기 때문이다.

교직원들 사이에서도 직급이나 상하구분이 없다. 서로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위해 중요한 일은 교직원 전체회의에서 결정한다. 교직원들은 나이·직종·근무연수에 상관없이 똑같은 급료를 받는데 불만이 없다.

담장도 없다. 학교와 지역사회간의 벽이 허물어진 지 오래다. 학교밖 수업이 많고 동네 어른이나 전문직업인들을 불러 강의를 듣는 경우도 많다.

대신 기노쿠니에서는 ‘프로젝트 학습’이라 불리는 체험학습이 교육의 중심을 잡아준다.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맞춰 1년간 연구 주제를 정하고, 같은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주제에 맞는 다양한 체험학습을 한다.

‘독버섯 연구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밖에 농사·요리를 주로 하는 ‘농장반’, 통나무집이나 전망대를 짓는 ‘목공반’ 등등. 독버섯 연구반의 경우 아이들은 독버섯 하나를 깊이 파고들면서 식물의 세계 전체를 이해하고자 한다. 독버섯의 세계적 분포를 조사하면서 지리·지질을 익히고, 현미경을 이용해 독버섯을 관찰하면서 식물의 구조와 생태를 익히고, 영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면서 영어공부도 함께 한다. 연구결과를 정리하는 보고서 만들기는 작문과 발표력을 기르는 기회로 활용된다.

일본 열도가 작은 시골 학교에 주목하는 것은 이같은 독특한 학습법의 교육적 효과가 탁월한 탓이다. 올해부터 실시된 교육개혁 방안 가운데 일반 초·중등학교에서 일주일에 세시간씩 하는 ‘종합학습’제도가 바로 기노쿠니의 프로젝트 학습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체험학습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일반학교 교사들도 기노쿠니에 연수를 받으러 온다. 가까운 오사카(大阪)에서 멀게는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1천여명의 교육관계자들이 지난 한해 이곳을 찾아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 맞게 학교를 만들어간다는 교육철학은 현장에서 성공함으로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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