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案문명⑩-1] 美 메릴랜드州 ‘봉사학습’ : 교문밖 산 지식 “봉사하며 배운다”

2003.03.14 | 미분류

교문밖 산 지식 “봉사하며 배운다”
노숙자 급식→칼로리 계산, 선거감시→민주주의 토론
고교 졸업 때까지 75시간 채워야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많은 미국의 중·고등 학교는 ‘섬’같은 존재였다.지역사회와 격리된 채 교사와 학생들은 책상머리에서 지식을 주고 받았을 뿐이었다.학생들도 그저 수동적인 ‘교육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90년대초 ‘봉사학습’(Service Learning) 개념이 도입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교문밖으로 나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살아있는 지식을 습득하도록 한 것이다. 학교·지역사회·학부모가 함께 나서서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 전역에서는 ‘배움으로써 행하는’(Doing by Learning) 것이 아니라 ‘행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 봉사학습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 파인 그로브 중학교. 볼티모어시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이 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둥글게 모여앉아 한창 토론을 하고 있었다.

봉사학습을 담당하는 지아니 탬버리노(51)교사가 “우리가 홈리스(노숙자)를 도우면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라고 운을 떼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느낌을 털어놓았다.

브래드 래슨(14) 학생은 “홈리스라고 다같은 홈리스가 아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휴대전화를 가진 홈리스를 목격했다. 홈리스가 꼭 가난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넌 하비(14)가 이 말을 받아 “맞다. 막상 홈리스를 만나보니 TV에서 본 것과 다르더라. 언론의 보도를 1백% 믿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파인 그로브 학생들이 노숙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지역 신문인 ‘볼티모어 선’과 TV가 노숙자 문제를 집중 조명하면서 부터였다.

평소 봉사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해 오던 6개 학생클럽에 소속된 2백여명의 학생들이 ‘홈리스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차례 토론을 했다. 학생들은 우선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홈리스의 현황과 문제점을 정리했다.

학생들의 활동을 지켜보던 봉사학습 담당 탬버리노 교사는 이 지역의 맥도널드.피자헛.타코벨 같은 패스트 푸드 식당과 세이프웨이 같은 수퍼 마켓과 접촉, 홈리스에게 제공할 각종 음식과 상품권 등을 확보했다.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부터 두 달간 홈리스들과 접촉하면서 봉사활동을 했다.

눈여겨 볼 점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원봉사가 학교에서 미리 짜놓은 봉사학습 프로그램에 따라 철저히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미국 학교들에 일반화된 봉사학습의 과정은 P(Preparation: 준비)-A(Action: 행동)-R(Reflection: 반성)의 세 단계다. 학생들은 봉사활동 전 반드시 충분히 계획을 세우고 봉사활동 후에도 꼭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교 측은 또 이 봉사학습 방식을 다른 과목에도 적용하도록 가르친다. 수학.사회.과학 등 모든 과목에 접목시켜 현장성이 강화된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시간에 노숙자 급식을 돕는 활동을 벌이도록 한 뒤 제공한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 자연스럽게 수치개념을 익히게 하는 식이다. 사회과목에선 학생들이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뒤 민주주의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험케 한다.

봉사학습을 정규수업 아닌 특별활동 시간에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대개 전문교사를 배치한다.

파인 그로브 중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홈리스를 돕기로 결정하자 학교 측이 메릴랜드주 교육청에 연락, 임시 전문교사를 지원받았다.

‘멘터(Mentor.지도교사)’로 불리는 이 자원봉사 전문교사는 학생들의 토론과정을 지켜보면서 틈틈이 조언을 해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우미나 조언자의 역할에 머무를 뿐 절대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자원봉사 후의 평가(반성) 시간은 특히 중시된다. 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소감을 털어놓는 것은 물론 봉사활동의 당초 계획과 실제 진행결과를 일지와 차트를 통해 비교하는 순서도 빠지지 않는다.

봉사학습이 참여형 시민을 양성하는 최선의 프로그램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미국의 주정부와 연방정부도 앞다퉈 자원봉사 지원에 나서고 있다.

85년부터 봉사학습을 선택과목으로 채택하기 시작한 메릴랜드주는 92년에는 아예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졸업 때까지 75시간 봉사학습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교육청 산하에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로 ‘메릴랜드학생봉사연맹(MSSA)’을 설치, 봉사학습 담당 교사 훈련과 학습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연방정부도 자원봉사법을 만드는 한편 정부 예산을 배정, 봉사학습이 초등학교부터 교육에 접목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국 볼티모어시=이강현 (볼런티어21)사무총장·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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