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회포럼 참가기- 룰라가 다보스로 간 이유

2003.08.19 | 미분류

룰라가 다보스로 간 이유

브라질 남부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에선 예상대로 축제가 벌어졌다. 지난 달 23일, 세계 158개국에서 10만 명이 참가한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와 ‘반전평화’의 깃발 아래,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의 당선을 자축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 룰라의 승리는 무역자유화와 민영화, 외국투자 유치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실망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이는 세계사회포럼의 개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 여기서 다른 세계는 네스티, 닛산, 노바티스, 듀퐁, 코카콜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가 후원하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 대항하는 세계사회포럼(WSF)이 추구하는 세상을 말한다. 실제로 다른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진보성향의 학자와 사회 운동가들은 룰라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1979년 노동자당을 창당한 이후 네 번의 도전 끝에 세계경제규모 12위에 달하는 대국의 대통령이 된 룰라의 승리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당은 참여예산제를 통해 시민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노동자당이 집권한 도시와 주에서는 매년 수천 명의 주민들이 지방 예산 50%를 어디에 할당할지를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수도와 위생시설이 공급비율이 75%에서 98%올라갔다. 1988년 이래로 학교도 네 배나 많아졌다. 공공주택이 건설되었으며, 빈민지역까지 버스가 들어가게 되었다. 귀아바시에서는 포드사가 요구하는 보조금과 세금 감면에 비해 신규고용창출 효과가 덜하다는 이유로 자동차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참여예산제는 브라질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하는데 빛을 발했다.
24일, 룰라는 세계사회포럼에 모인 군중을 향해 “포르투 알레그레 거리의 메시지를 다보스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무기제조와 전쟁에 쏟아 붓는 수십억 달러를 빵과 콩, 쌀을 사는데 쓴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질지 말하고 싶다”면서 “세계 지도자들이 이라크 전쟁이 아닌 빈곤에 대한 전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브라질은 전 인구의 3분의 1인 5천3백만 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나라 안의 빈곤이라는 그의 믿음은 신형 전투기 도입을 포기하고 그 예산 7억6천만 달러를 빈곤퇴치에 쓰기로 결정했다. “우리 아이들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들게 하지 않겠다”라는 그의 말에 2만 여명의 군중들은 눈물을 훔치며, “올레올레올레 올라, 룰라 룰라”를 연호했다.
사실 세계경제포럼에 맞서 세계사회포럼의 창설에 공헌한 룰라의 보스 참가는 사회포럼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세계사회포럼 운영위원 8명 중의 한사람인 브라질사회경제분석연구소의 칸디도 그지보우스키는 “룰라는 포르투 알레그레 포럼의 상징이다. 그런 그가 다보스에 참가하는 것은 큰 재앙이다”라며, “우리는 대통령당선자로서 룰라가 워싱톤에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는 것에 비난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보스 포럼 참가는 룰라의 선택에 달려있다”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브라질 민중의 생각은 달랐다. 룰라가 청바지와 티셔츠 대신 말끔한 양복을 입었다고 해서, 기계에 짓이겨져 새끼손가락을 잃은 가난한 금속노동자 출신의 룰라가 자신들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설이 끝나고 룰라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만난 카밀라 모린(상파울로대 대학생, 22)은 ‘룰라의 브라질에 대해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밖에서 볼 때 브라질이 그렇게 불안해 보이냐고’ 질문한다. 그는 ‘희망이 두려움을 이겼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남미대륙을 뒤덮은 현실에서 IMF 차관을 받아야 하는 브라질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룰라의 두 어깨 위에는 빈곤해결이라는 숙제 외에도 2천5백억 달러의 외채가 놓여있다. 지난해 브라질 무역흑자가 1백30억 달러였음을 감안할 때, 2천5백억 달러의 외채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이다. 올해부터 당장 외채 원리금 상환에만 300~350억 달러의 재원이 요구된다. 15%에 달하는 고실업과 침체된 경제도 룰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IMF는 브라질에 3백억 달러의 긴급 융자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차관의 80%는 룰라가 긴축재정을 이행한 뒤에야 주기로 함으로써 그를 길들이려 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자본이 룰라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지금, 룰라는 운신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는 포르투 알레그레의 약속을 지켰다. 다보스에서 그의 연설은 절제되어 있었지만 ‘가난한 세계에 아침과 점심, 저녁’을 주기위해 ‘국제기아해결기금’을 창설할 것과 부자나라들의 역차별로 인한 보호무역과 무역장벽의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또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가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며, 그 자신이 다보스 포럼의 기업인들과 세계사회포럼의 운동가들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것을 자처했다. 그는 그 과정을 “이건 마치 기업가와 노동자들 사이의 단체교섭과 같이 지난한 과정 같지만 결국 마주 앉아보면 시각차이가 크지 않음을 알게 된다”라고 표현했다.
기업 회계부정사건, 세계 경제침체, 테러위협 등 신자유주의가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력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올해 다보스의 회의 주제는 ‘신뢰회복’이었다. 세계사회포럼 폐막연설에서 진보적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MIT대학 교수)는 “다보스가 그들 자신의 모델에 대한 자신감의 한계와 위기를 토로한 반면 세계사회포럼은 생동감으로 넘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이제는 그리 새로운 개념도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역설하는 룰라에 대해 다보스에서는 적잖이 긴장하는 눈치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의장 클라우스 슈왑은 “포르투 알레그레와 우리는 보다 나은 세상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같은 길을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제시민단체연합 사회감시(Social Watch)는 ‘빈곤과 시장’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이 소 한 마리당 2.2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간다며 제3세계 빈국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유럽의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고 빗대었다. 스위스의 고급 휴양지 다보스에서 참가비만 2만 달러인 세계경제포럼을 연 세계 정치 경제지도자들이 토론한 ‘신뢰회복’은 지구반대편 세계사회포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룰라가 다보스포럼에 던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라는 메시지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기업가들이 어떻게 해석할지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녹색연합 국제연대 활동가 이유진
leeyj@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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