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SD 참가 보고서 2 – 빈곤의 바다위에 떠있는 ‘부자’들의 섬=지구촌

2003.08.19 | 미분류

빈곤의 바다위에 떠있는 ‘부자’들의 섬=지구촌      

모두 54쪽. 193개 나라 정상들이 ‘이행계획’이라고 불리는 문서에 지구를 구하기 위한 ‘약속들(?)’을 담았다. ‘이행계획’이 만들어지기까지 요하네스버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과연 이 약속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그리고 ‘월드컵의 나라‘로 유명해진 한국은 이행계획을 만드는데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야기가 다소 어렵더라도 ‘지구촌’에 두발을 딛고 사는 ‘촌민’으로써 우리가 당면한 환경위기는 무엇이며, 우리를 대표하는 ‘촌장’들이 만들어낸 ‘해법’이 어떤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빈곤퇴치와 물, 에너지, 건강, 농업, 생물다양성(WEHAB 의제)을 중심으로 사회, 경제, 여성, 노동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빈곤은 그야말로 인류가 당면한 핵심과제이다. 2001년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세계인구의 절반이다. 빈곤의 악순환과 빈곤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 해법은 바로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이다. 오늘날 선진국이 누리는 풍요는 환경파괴와 세계경제체제의 왜곡에 있음을 인정하고, 선진국이 환경오염과 빈곤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빈곤퇴치를 위한 세계연대기금의 설립하고, 선진국이 개도국을 위해 국민총생산(GNP)의 0.7%를 공적개발원조(ODA)로 내놓도록 촉구했다. 또한 채무빈국에 대해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충분하게 외채를 탕감해 줄 것을 강조했다. 내용을 보면 빈곤타파를 위해 엄청난 결단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세계연대기금 설립 이라는 문구 앞에 ’자발적인(Voluntary)‘라는 단어가, 공적개발원조 0.7% 달성에서는 ’촉구‘라는 말, 그리고 외채탕감에서는 ’강조‘라고 붙은 말이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빈곤을 퇴치하자‘라는 대명제에는 합의했지만,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번 WSSD 회의가 아프리카 대륙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도시중심에 쭉쭉 뻗은 높은 빌딩 숲과 현대식 쇼핑센터 건물 뒤로 다닥다닥 붙은, 그렇게라도 서로 붙어있지 않으면 거의 쓰려질 듯한 거대한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다. 물, 전기, 위생시설은 꿈도 못 꾼다. 남한의 12배나 되는 넓은 땅에 온갖 광산 지하자원이 풍부하지만 아직도 남아공 인구의 절대다수는 빈곤에 허덕인다. 1994년 만델라 혁명으로 흑백분리정책(아파라트헤이트)이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절대다수의 백인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으로 범죄가 극심해지자 백인들은 이중, 삼중의 철조망과 전기펜스, 그것도 모자라 군대 수준의 방범시설을 치고 가족 수대로 자동차를 갖추고 사는 반면, 흑인들은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부터 4-5시간을 걷고 또 걸어 일터에 도착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은 전무하다. 지구에 대한 ’이권‘을 두고 ’선진국‘과 ’후진국‘이 대립하는 ’남북대결‘ 구도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서도 ’부자(백인)‘와 ’빈자(흑인)‘의 대결 구도로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그러기에 각국 수석대표들이 연설하는 순서에서 샘 누조마 나미비아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총리를 향해 ”영국의 식민지로 아프리카는 엄청난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 문제의 책임은 토니 블레어 당신이 져야한다“라는 강성 발언이 나왔던 것이다. 유럽에 의해 빠른 속도로 서구화된 아프리카에서 오랜 식민지 역사를 경험하면서 흑인들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과 취업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런 아프리카의 현실을 가슴으로 느끼고 실제 빈곤퇴치를 위해 각자의 주머니를 조금이라도 털었어야 했다.
각 나라 대표 연설에서 자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은 피폐해진 자연환경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1차 책임은 선진국의 과소비에 있는 바, 선진국의 소비․생산에 혁명적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환경 보전을 위한 세계환경기구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최근 녹색당의 선전에 힘입어 재집권에 성공한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100년 만에 찾아온 대홍수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손꼽으면서 전세계 각국이 쿄토협약 비준에 어서 빨리 합의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회의에서 러시아, 캐나다 정상은 비준에 동의했지만 미국과 호주는 끝까지 반대했다. 특이하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각국 군사비 10%를 국제적 인도주의기금에 기여할 것을 주장했고,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선진국의 개도국 지원을 강조했다.      
회의에 참가한 20여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2만 명이나 되는 우리가 애초에 이곳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회의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목적과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정말 단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지구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봤던가가 의심스러웠다. 결국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은 이번 정상회의(WSSD)를 ‘부끄러운 거래를 위한 정상회담(World Summit on Shameful Deals)’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들이 이야기 하는 부끄러운 거래라 함은… 유럽연합(EU)는 당초 2010년까지 화석연료가 아닌 청청에너지의 사용비율을 15%로 확대하고 깨끗한 식수나 위생시설 없이 사는 지구촌 20억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두 부문 모두에서 구체적인 목표나 시한 설정에 반대하던 미국과 승강이를 벌이다 물과 위생분야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는 대신 청정에너지분야를 포기하고 말았다. 개도국은 선진국이 농업이나 산업에 지원하는 보조금이 무역불균형을 초래한다며 보조금 철폐를 주장했지만, 유럽연합과 미국은 “모든 수출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왜곡된 보조금을 삭감한다”라는 상징적문구로 밀어부쳤다. 애초에 발리에서 열린 4차 준비회의에서 합의된 에코라벨링은 이번 회의에서 아예 삭제되었다. 유전자조직식품(GMO) 표시 규정을 포함하는 에코라벨링 조항 삭제는 환경단체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반면 유전자조작 식품 제조 회사들은 쾌재를 불렀다.    
이번 회의를 통해 국제회의에서 문구하나 단어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또 사소한 관사 하나가 합의 내용을 맥 빠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속가능 소비․생산으로 전환을 위한 10개년 프로그램체제 수립 조항은 물건 하나를 생산하더라고 그 물건이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환경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는 프로그램으로 ‘경제’행위에 ‘환경’를 고려하는 중요한 합의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각 나라의 산업 및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합의 내용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이 주장했던 애초 ‘10개년 단일 프로그램 수립(10-year work programme)’에서 ‘10개년 프로그램틀 마련(10 year framework of programmes)’으로 확정되면서 애초 계획보다 많이 후퇴했다. 여기서 ‘a porgram’과  ’programs’는 확연히 구별된다. 단일 프로그램이 국가간에 통용되는 단일 기준으로 큰 틀을 가지고 추진되는 프로그램이라면 ‘framework of programs’는 여러 프로그램으로 분산되면서 그 실행력이 희석됨을 의미한다. 사전예방의 원칙은 유전자조작식품과 관련 초미의 관심사였다. 어떤 활동이 환경이나 인간을 위협할 경우 그 원인이 과학적으로 확실히 밝혀지지 않더라도 사전예방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이 규정은 미국, 일본, 호주의 주장으로 인해 원칙(Principle)이 아닌 사전예방적  접근(Approach)이라는 표현으로 약해졌다.
이행계획 19항, 재생가능 에너지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면 “가능한 곳에서부터 자발적인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재생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세계적인 사용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도록 함께 노력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자세히 되짚어 보면 얼마나 모호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능한 곳(where they exist)에서, 자발적인(voluntary), 가능하다면(where possible), 증가시키도록(improve)이라는 애매한 단어는 이행계획 곳곳에 등장한다. 목표연도와 목표치도 빠진채 심지어 비용대비 효율적인 에너지라는 개념이 새로 들어오면서 화석연료와 수력발전 에너지도 재생에너지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세계에서 댐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와 주민들의 생존 해결을 위해 일하는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결과였다.  
요하네스버그 회의는 끝났다.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에 비해 한국으로 돌아온 정부나 우리가 지금 당장 뛰어들어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없다. 참가국들이 환경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데다 ‘이행계획’에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목표기한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2010까지 재생에너지를 15%까지 늘리자는 유럽연합(EU)의 주장이 관철되었더라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1.6%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구조는 일대변혁을 가져왔을 것이고, 산업계는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나마 성과라고 할 수 있는 2020년까지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중금속 및 화학물질의 생산과 사용을 줄이기로 한 것도, 2010년까지 생물다양성의 감소폭을 대폭 줄여나가기로 한 점도, 2015년까지 고갈된 어족자원을 긴급 복원하기로 한 계획도 다시금 지난한 회의와 협상, 그리고 거래(?)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는 회의 내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의 이번 회의에 대해 “한국은 건설적인 기여를 하였으며 수산분야에서는 조업국으로서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재원과 무역관련 하여서는 몬트레이와 도하의 합의를 유지하는 선에서 대응하였음”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참으로 성실하게 회의에 임했고 2010년 세계박람회의 한국 유치를 설득하는 등 열심히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였다. 그러나 세계경제 규모 13위로서의 책임과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배려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한국대표의 연설을 앞두고 연설문에서 “한국은 정보통신 인프라 분야에서 15개국 20개 사업에 3억8천7백만불의 차관을 제공…또한 국제협력단을 통하여 2001년 325명의 외국인 수련생들에게 정보통신 훈련의 기회를 부여…”라는 내용이 급히 빠졌다. 이날 오전 일본수상이 향후 5년 동안 2,500엔 이상의 교육 원조를, 토니 블레어 영국수상이 매년 10억 파운드의 아프리카 개발 원조를 하겠다는 내용에 비해 발표하기에 너무나 미미하고 창피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대표단은 우리가 경제규모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가 사는 경제적 수준에 대해 만족할 수 있을까. 워낙 가난했던 과거 때문인지, IMF의 시련을 맛보아서인지 우리에겐 ‘잘 사는 것’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강하다.  
정상회의 개막 첫날 각국 대표단은 호텔에서 전 세계에서 공수된 온갖 산해진미로 호화만찬을 벌였다. 바닷가재와 캐비아, 최고급 스테이크 등. 9월 2일 WSSD 본회의장에서 세계 어린이 대표 5명은 이들 각국 대표단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정말 전세계에서 가난과 고통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당장 이곳까지 오는데 든 비행기 값 그리고 호텔값 이라도 아껴서 도와 줄 순 없나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다면 말이예요…” 국제구호단체들을 정상회의가 열리는 열흘 동안에만 5만 명의 어린이가 불결한 위생 때문에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행계획은 향후 10-20년간 각 국가가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담은 ‘약속’이다. 이 아득한 ‘절망의 바다’위에서 단 몇 개라도 ‘희망’을 일구어 낼 수 있도록 지금 당장이라도 부지런히 뛰어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해서 오늘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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