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연학교에서 담아온 마음 속 사진들

2003.07.30 | 미분류

어린이 자연학교가 끝나고 돌아올 그 때 즈음, 아이들이 이 주문을 가슴에 새기게 되리라는 것은 진강산을 한 걸음에 내닫겠다는 마음만큼이나, 황토 염색을 흙 안 묻히고 하겠다는 마음만큼이나 욕심이겠지요? 이제 강화도에서 내 가슴 속에 담아온 사진 몇 장을 함께 보는 것으로 지난 어린이 자연학교를 되돌아보려해요.

주문을 외워보자!
맑은 하늘
깨끗한 물
푸른 숲속
– 제10회 어린이 자연학교 –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도 그 때 각자가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자기만의 사진들을 새록새록 꺼내 볼까요? 같이 했던 일정이라 큰 줄기는 비슷하지만, 줄기에 난 나뭇잎 하나하나가 나름의 잎맥과 모양을 지녔듯이, 각자의 경험들을 다시 꺼내서 느껴 보는 거예요.
마음에 담아왔던 사진이 보이지 않나요? 내 마음에 담아온 사진이 다른 이의 눈에 보이진 않겠지만… 그냥 눈 감고 상상하세요. 재밌었던 순간순간들을. 재밌게 지냈던 사람일 수록 자신만의 사진이 선명하고 즐겁게 그려질 거예요.



맨 처음으로 눈에 띄는 내 사진의 모습은 갯벌에서 뼈를 묻고 싶어하는 윤진이와 내가 기싸움하는 장면이예요. 윤진이는 철푸덕 갯벌에 반쯤 몸을 담그고 게구멍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고요, 나는 그런 윤진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요.
서로가 낯선 얼굴에 서먹해 하는 것이 채 가시기도 전에 뻘 밭에서 서로 뒹군다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난감할까 내심 걱정도 했었지요. 그러나 부질없는 걱정이었나봐요. 윤진이라는 우리 모둠의 막둥이는 도무지 뻘을 떠날 줄 모르네요. 전생의 향기를 갯벌 내음에서 온 몸으로 느끼듯, 게 한 마리 더 잡기 전까지는 절대 뭍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결국에는 물곰의 튼실한 팔힘으로 캐내듯 갯벌에서 나온 윤진. 윤진이의 필사적 반항에 온 얼굴이 머드팩 마사지 모델이 되긴 했지만, 무사히 갯벌에서의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첫 날 우리 어린이 자연학교는 강화도 동막 갯벌에서 그 첫 개학을 알렸지요. 다소 얼떨떨해 하기도 하는 아이들, 모처럼 밖에 나와 한껏 들떠서 갯벌에 내가 왔으니 갯벌지기동물들은 모두 대피하란 듯이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입학식 진행과 아이들 상황 정리하느라 바쁘신 모둠 선생님들. 아이들은 갯벌과 온몸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넘어지고 묻히고 보고 맛보고 밟고 뒹굴고.. 갯벌 수업이 끝날 때엔 모두들 갯벌 식구가 되어있었지요. 한바탕 놀고나니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구요.



다음 사진은 둘째 날 찍었던 거네요. 여기에는 우리 모둠 창원이가 대야에서 염색하는데 왜 거품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과 그 옆에서 마냥 신나서 큰 대야에 발을 담그고 신나게 밟는 아이들의 표정을 담았어요.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큰 대야 서로 발을 들이밀고 있네요. 창원이의 궁금증이 미궁 속으로 빠져 든 것과는 무관하게, 옷은 아련하게 저무는 노을을 두 손에 가득 묻혀 흰 옷에 바른 듯이 물들었지만 말예요.

황토 염색은 아이들에게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한 방법을 몸소 체험하게 해 주었어요. 직접 손으로 흙도 고르고 염색물도 걸러 보고 직접 옷에 물들여 보면서, 자연과 친하게 사는 삶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그 작고 하얀 가슴 속에 하나 하나 물들였지요.

다음으로 소개할 사진은 둘째 날 저녁에 찍은 건데, 이건 정말 작품 사진인걸요!  한 아이를 목마 태우고는 팔다리랑 얼굴에 갈색 파스텔을 문질러서 나무 기둥을 표현하는 아이가 듬직한 재훈이, 그 위에 목마 타고서 가지와 이파리를 표현하는 아이가 정식이, 둘이 합쳐 ‘나무파수꾼’! 맨 앞에서 모둠 깃발을 흔드는 아이가 서호. 정은이가 동물 인형을 몸에 주렁주렁 매단 것이 마치 애완동물들의 엄마인 듯한 착각도 들지만, 실은 ‘동물의 파수꾼’을 표현한 거랍니다. 수연이는 알록달록하게 들풀이랑 치자로 염색한 손수건을 두르고는 ‘꽃의 파수꾼’. 다미는 게껍질을 종이로 만들어 두르고는 ‘갯벌파수꾼’. 이리하여 우리는 “자연파수꾼~~~!”이라네. 자연을 짝짝짝! 지키자 짝짝짝! 와! 얘들아, 이 모둠구호 아직 기억하고 있니?  

자연스럽게 황토 염색과 들풀 및 치자 염색을 마친 저녁이 되어서 아이들과 서로 뽐내는 시간을 가졌지요. 덜 마른 황토 염색 뽐내기가 빠진 자리였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그것을 메우고 남았답니다. 저마다 몸의 한 가운데서 귀퉁이까지 달라붙은 들풀 염색 손수건에는 한 낮에 아이들의 흥겨운 숟가락 장단이 묻어 있었어요. 거기에는 들살이 갔을 때 봤던 길가 이름 모를 풀잎에서부터 빗기가 채 가시지 않은 꽃망울까지 아이들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다 물들여져 있었지요. 놀멘놀멘한 아이들은 여백의 미가 도드라졌지만..



이번 내 마음 속 사진은요, 셋째 날 아침에 찍은 거예요. 창원이가 열심히 “꽤~액” 오리들과 접선을 시도 중이고 광이가 공갈로 오리들을 불러모으고 있어요. “휘~익” 널찍한 논에 퍼져 있던 오리들이 밥 먹겠다고 달려드는 게… 우리 자연학교 어린이들도 식사시간에 먼저 오는 사람부터 준다고 했으면 딱 이 오리들 같았겠죠? ‘수박씨~’하고 미소 한번 지어봤지요. 아직도 창원이는 열심히 오리들과 통역중이고 광이는 호시탐탐 초록늑대 선생님을 피해 호루라기 한번 더 불어 봤으면 하는 눈치네요.

오리로 농사를 짓는 모습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친구하며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지혜 중 하나라는 걸, 아이들은 자연스레 알아가고 있었어요. 나중에 우리 친구들이 밥을 먹을 때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농부님 뿐만 아니라 오리들까지 포함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여기서 느끼고 간 너희들의 숙제로 남겨둘게.

물에 흠 뻑 젖은 아이들이 물장구치는 모습이 담긴 내 마음 속 사진은 셋째 날 오후에 찍은 거예요. 진강산에 끝까지 오르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아이들도 신나게 첨벙거리고 있어요. 물이 차가울텐데 그래도 연신 물장구를… 용감하게 뛰어든 함박꽃 선생님, 초록늑대 선생님, 애기똥풀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물공격에 당해내지 못합니다. 앗, 한 쪽에 몸을 피신하고 있던 강아지풀 선생님과 그 추종세력이 물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사진 한 구석에 잡혔네~.



진강산에서는 산을 오르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진강산의 생태와 강화도를 느끼고 보기 위해서였지요. 진강산에 오르니, 정말 우리가 온 곳이 섬이구나 느껴졌어요. 앞산으로 마니산이 보이고 저 둘레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요.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벌대총의 말발굽 전설과 강화도와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이야기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진강산 아래 가득찬 소나무 숲에서, 아이들은 산에서 필요한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스스로 찾아보았구요. 다음 번에 산에 오르면 이번에 느꼈던 산에 해가 되는 행동들은 하지 않겠다던 그 약속들은 잘 지킬테지요?
  
마지막으로 소개할 내 사진은 환경특종을 다루는 아이들의 모습이예요. 짧은 나흘 동안 몸으로 직접 부딪혀 보았던 작은 경험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손 끝을 타고 하얀 도화지를 메워나가기 시작합니다. 저마다 보고 느낀 일들을 이랬구나 저랬구나 하며 내가 미처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스스로 배운 아이들의 눈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반짝 반짝 빛나고 있네요.  

아직 못다 풀어낸 사진들이 내 마음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위에 꺼내 보았던 사진 몇장은 그 중에서 가장 굵직하고 기억에 남는 것들로 추려내 본 거고요. 짧았던 나흘간의 날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런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내 사진에 담겨진 아이들의 울고 웃는 모습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아이들도 강화에서 자연과 함께 보낸 나흘을 즐겁게 기억해 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처음의 주문- ‘맑은 하늘, 깨끗한 물, 푸른 숲속’- 은 자연스레 친구들 마음 속을 맴돌고 있겠지요?

– 모둠교사 물곰 오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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