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환경을 파괴하는 WTO를 무산시키자!

2003.09.09 | 미분류

휘엉청 달 밝은 추석을 맞아, 마음은 벌써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들판과 진한 흙 내음 나는 고향에 가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향을 향해 가는데, 우리 농민 160여 명은 가을걷이를 제쳐두고 지구 반대편 멕시코 칸쿤으로 떠났습니다. 추석 같은 큰 명절에 농민들이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 멕시코로 달려간 것은 이대로라면 ‘땅’과 ‘농업’은 정말 ‘끝장’이라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지구인들의 생명의 소리 ⑥ 멕시코- ‘칸쿤’에 모인 사람들
– 인간과 환경을 파괴하는 WTO를 무산시키자!

전 세계 노동자, 농민, 환경운동가들이 10일-14일 제5차 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멕시코 칸쿤에 속속 모여들고 있습니다. WTO는 이번 회의에서 ‘도하개발의제(DDA)’를 출범시키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합니다. ‘도하개발의제’는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와 농업 분야에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쌀 1kg= 2위안(300원)
‘도하개발의제’ 농업협정은 관세를 대폭 낮추고 수출보조금을 폐지하며, 추곡 수매제와 같은 농업보조금을 삭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있습니다. 협상이 합의안처럼 타결된다면 우리 농업은 뿌리째 뽑히고 맙니다. 우리 농산물은 유럽과 미국의 대규모 기계화된 농업과 또 중국의 농산물과 가격 경쟁이 안됩니다. 며칠 전 저는 중국의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중국의 곡창지대)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중국 쌀 1kg이 2위안, 한국돈 300원이 채 안됩니다. 그것도 농약을 듬뿍 친 쌀이 아닙니다. 지금 동북 3성에서는 ‘녹색입쌀을 생산하자’라는 기치아래 쌀 농사를 대규모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최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은 관세와 국내보조금 감축을 주장하면서도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생산비용을 낮추는 보조금 확대정책을 취합니다. 이번 협정은 다국적 식량생산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출범 이후 세계 농산물 시장의 90%를 10개의 식량생산 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 기업들은 씨앗, 생명공학, 농약, 식품가공 및 유통 등 농업과 식량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엄청난 자본의 힘으로 대규모 경작을 하면서 식량을 과잉 생산하고 있고, 그렇게 생산된 식량을 제 3세계에 덤핑으로 수출하면서 세계농산물 가격을 폭락시키고 전 세계 소규모 농가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인공다리와 방어벽이
                                                                             설치된 칸쿤 컨벤션 센터 ⓒ 연합뉴스 김영섭


흐르는 시냇물에도 임자가 있다.
지구의 벗, 그린피스와 같은 세계의 환경운동가들도 칸쿤으로 달려갔습니다. 왜냐면 WTO는 지구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의 정반대 편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렸던 3차 각료회의에서 논의된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의 ‘생명특허’ 허용여부 및 범위는 뜨거운 쟁점이었습니다. 땅, 바다, 하늘 이 모두가 특허권의 대상이고,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기업들에겐 이 세상에 못 팔 것이 없습니다. 호수의 물을 그대로 마시는 토착 원주민들에게 어느날 정장을 잘 차려입은 사람이 찾아와 “이 호수는 우리가 돈을 주고 생수를 만들어 팔기위해 구입했으니 당신은 이 물을 더 이상 마실 수 없소” 라고 한다면?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WTO 체제하에서는 현실이 됩니다. 세계적인 프랑스의 물기업 수에즈와 비벤디는 “물은 미래 황금알을 낳는 최고의 상품으로 물을 상품으로 개발해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우리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라고 표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민간 기업이 물을 공급하면서 수돗물 값은 150%까지 인상되었으며, 심지어 인도에서는 수입의 25%를 물값에 지불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생명특허는 제 3세계 생물자원 약탈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은 특허에 의해 보장되는 독점권리를 20년까지 보장하고 있고, 미생물과 식물품종에 대한 특허도 인정했습니다. 인도에서 님나무는 나병, 당뇨, 변비 및 피임을 포함하는 넒은 범위의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으로 수천년간 사용되었지만 다국적기업들이 이 나무의 성분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였고, 그 후 인도인들은 님나무를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업에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위생 및 식물 위생에 관한 조치협정(SPS)은 WTO 내에서 농축수산물 및 무역에 대한 국가간 검역과 위생 조치를 약화시킵니다. WTO는 정부의 식품안전에 대한 규제가 자유무역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WTO는 유럽연합이 미국산 호르몬 소고기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자 미국과 캐나다가 이 협정에 따라 유럽연합에 무역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도 19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 이후 계속 식품 검역 체제가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도하개발의제’는 지구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환경 협정을 무력화시키고 자연 자원의 자유무역 촉진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다자간 환경 협약의 조항과 WTO 조항의 내용이 상충될 경우 지금대로라면 WTO가 우선순위를 점하게 됩니다. 자유무역에 장벽이 된다면 환경보전을 위해 각 나라에서 제정한 최소한의 ‘환경법’도 WTO의 판단으로 규제할 수 있습니다.

     ▼  ⓒ 오마이뉴스 신용철
.jpg,align=left,width=300,height=226,vspace=5,hspace=10,border=1]돈 없으면 생명을 포기하라!
이번 WTO 협상에 많은 환자들의 생명이 달려있습니다. 무역관련 투자조치(TRIM)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가난한 나라가 에이즈 치료약을 싼값에 제조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낸 조항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4천만 명의 인구 중 300만 명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남아공 정부는 1997년, 에이즈 치료제를 값싸게 만드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남아공 정부를 특허권 위반혐의로 WTO에 제소했고, 미국은 남아공정부가 이 법률을 통과시키면 ‘무역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에이즈 치료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는 곳은 거의 미국의 미국제약회사 들입니다. 전세계 에이즈 환자 가운데 80% 이상이 치료는커녕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며, 엄청나게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제를 써 보지도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먼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올해 초, 다국적제약회사 노바티스에서 만들어낸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엄청난 값 때문에 병든 몸을 이끌고 거리에서 ‘약값 인하’를 외치던 백혈병환자들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실제 글리벡의 한달 약값은 무려 300-450만원이 넘습니다. 글리벡 1알 가격은 845원, 현재 노바티스가 신청한 가격은 25,005원입니다. 특허권을 무기로 노바티스는 30배나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윤보다는 생명입니다’.

WTO에서 미국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에이즈 감염자들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독점적인 특허권과 돈을 벌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해 강력히 반대를 하는데도 부시 행정부는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전자조작식품(GMO)을 식량 원조로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인도주의적 명분(?)도 챙기고, 미국내 거대 유전자조작식품 생산기업의 시장 판로도 개척하려는 속셈입니다. 이번 칸쿤 사전 협상에서도 가난한 나라의 보건을 위해 의약품의 지적재산권 남용을 제한하려는 논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미국의 반대 때문입니다.

구멍가게와 대형할인점이 경쟁하면 누가 살아남을까?
WTO, IMF, 세계은행은 자유무역과 세계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990년부터 1998년까지 하루에 1달러도 못버는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4백만명이, 남아시아에서는 2천7백만명이, 아프리카에서는 4천9백만명이 더 늘어났습니다. 2003년 ‘세계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0.1%에 불과한 사람들이 전 세계 부의 40%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상 이렇게 급격하게 빈부 차이가 커지는 현실을, 즉 지구차원의 부는 증대되는데 빈곤은 세계 곳곳에서 증가하는 상황이 있었던가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지금 WTO체제는 구멍가게와 대형할인점이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판매방식, 접근성, 가격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되는데 똑같은 조건에서 달리라고 합니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반경 몇 십 킬로미터에 자리잡은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생계수단을 잃어버린 이들은 갈곳이 없습니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대형할인점과 파리만 날리는 재래시장에서 눈물짓는 상인의 모습을 비춰주었습니다. 무역이 각 나라의 장점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민중들을 일방적으로 몰락시키는 것이라면 그리고 일부 힘있는 대형 메가톤급 기업의 이익만 살찌우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공정하지 않은 자유경쟁시장에서 약체로 시작하는 가난한 국가들은 점점 더 고전을 면치 못하고 결국 ‘빈곤의 바다’를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 시애틀에서 WTO 뉴라운드 각료회의를
       반대하는 한국 시위대  ⓒ 연합뉴스


시애틀을 꿈꾸는 사람들
WTO를 반대하는 1만5천여명의 시위대가 멕시코 칸쿤에 모일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도 농민들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운동 단체 활동가 200여명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농민단체인 ‘전국자율농민조직연합’과 전세계농민연합체인 ‘비아 캄페시나’가 이끄는 1만명의 농민들이 세계무역기구의 농업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도하개발의제’협상은 일부 선진국에만 이로운 내용으로 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개도국의 반감, WTO안의 비민주성 때문에 협상이 순탄하게 성공할 것 같지 않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과 환경을 지키고, 생명을 영위할 권리를 일부 강대국과 다국적기업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멕시코 칸쿤에 모여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세계무역기구 5차 각료회의 무산. 이들은 또 다시 씨애틀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민주적인 세계무역기구(WTO) 만들기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요? 어쨌든 이번에는 한번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WTO의 숨겨진 ‘비밀의 방’, Green Room !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는 국가 간 공산품,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 교역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집행하는 기구이다. 전 세계 146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WTO에 속하지 않고서 세계무대에서 무역활동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WTO는 ‘자유무역’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국가간 무역거래에 대한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모든 결정은 회원국의 ‘합의’에 결정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4인방이라 불리우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대부분의 결정은 선진국, 그리고 다국적기업의 강력한 로비가 비밀스럽게 이뤄지는 “그린 룸”이라는 밀실에서 내려진다. 25-27개국 대표만 초대된 소규모 각료회의에서 모든 것은 결정된다. WTO의 다른 100여개 회원국들은 소외 될 수 밖에 없다. 인도의 상공장관이었던 무솔리 마란은 도하 각료회의의 마지막 이틀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소수의 WTO 회원국만이 그린룸 회의에 참여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11월 13일과 14일에 걸쳐 38시간 동안 지속된 회의기간 동안 논의 자료들이 한시간 단위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결과 그린룸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각국 대표들은 이 문건들을 한번 읽어볼 시간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은 양의 초안들을 준비한 것입니까? 저는 개발도상국들이 자신들에게 매우 중요한 분야의 초안을 마지막 순간에 강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 시스템이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가난한 나라들은 WTO에 대사를 파견하지 못하거나 단 한 명의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 게다가 협정 조항의 내용과 세부항목이 엄청나게 방대하며 까다롭게 기술되어 있다. 미국은 매번 WTO 회의가 열릴 때마다 250여명에 달하는 전문 변호사들을 파견해서 협정 조항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미국의 경제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이의를 제기하며 압력을 행사한다. 대표단 비행기값 마련 자체가 부담스러운 가난한 나라들은 WTO회의에서 입장을 표명할 기회조차 심지어 협상내용을 이해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정리: 정책협력실 국제연대 이유진 leeyj@greenkorea.org
발췌: 각종 WTO관련 글을 비롯 WTO 반대 국민행동에서 만든
        ‘WTO 반대투쟁을 위한 자료집’ 홈페이지 http://antiwt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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