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바라옵건데, 살아오소서.

2003.10.06 | 미분류

지난 10월 3일, 양산 내원사의 20여 비구니 삼보일배 행렬은 천성산 산비탈을 기어기어 화엄벌에 올랐다. 낙동정맥 산세들이 가로로 그어놓은 하늘 아래 스카이라인은 한겹 두겹 첩첩이지만, 고개를 조금만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산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결코 견고한 땅이 아니다. 계곡 사이로 비집고 올라선 아파트, 공장, 관광유흥지들, 군데군데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곳에서 포근하게 감싸는 산의 기운은, 언제 빼앗길지 모른 채, 까딱까딱 숨 넘김을 힘들어한다. 천성산은 이미 고립된 하나의 생태섬이었고, 그것도 이제 고속철이란 거인에 생사여탈을 맡길 뿐이었다.



1000명의 대중을 앞세워 ‘화엄’을 설법하던 곳, 여러 가지 수행을 하고 만덕의 기반이 된 도량 천성산 화엄벌.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고 이어 대지의 어머니 가이아가 생겨난 개천절, 왜 하필 이 날에 비구니 스님들은 만덕의 기반인 땅과 생명을 위한 진혼제를 지내고 있었던가. 혼돈에서 생성의 과정을 거쳐 ‘땅’이 생겨났고 이를 일컬어 생명의 모체라 한다.
그러나 자연적인 생성을 인위적인 혼돈으로 뒤섞는 것이 가증스런 인간의 변증법이다.



부드러운 듯 꺽어지고 미끌어지는 품새, 기어기어 올라가더니 턱하니 한 바위 넘고 다시 올라 턱, 두 바위, 준엄하게 벼랑지며 능성능성 넘어가는 그 모양새란, 동양화의 준법을 총동원한들 한낱 인간의 장난뿐 아니겠는가. 천성산의 자연과 문화와 역사는 인간의 욕망으로 뒤틀어지고 있다. 시대는 살아남기 위해 ‘생명’을 준엄하게 요청하지만, 넘쳐나는 것은 ‘생명’의 공문구뿐이다. 고속철마저도 ‘친환경적인’ 생명의 꺼리들을 자신과 사회의 중요한 동력으로 인식하는 듯하지만. 온 동네 떠돌고 다니는 유령에는 생명의 실체가 없다.

비구니 스님들의 부산역~천성산 화엄벌에 이르는 삼보일배는 8일 동안 계속되었다. 국가의 상부구조로서 권력을 위한 일체화된 경찰은 아니나 다를까 아시안게임 1주년 기념행사에 동원되는 천박한 지팡이였고, 부산시장은 통반장 동원하여 반상회 자리를 돌아다니며 고속철 강행 싸인을 받고 있으니, 세인들의 고민들은 미약한 비구니 삼보일배와 평행선을 긋고 그들의 잇속을 차리는데 여념이 없다. 천성산 너른 벌판의 안타까운 진혼제, 바라춤, 살풀이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율은 처절한 운동만으로는 상황역전이 어렵다고 하였다. 작고 약하여, 힘이 없음의 극대화, 만약 내가 생명운동을 하고 있다면, 잔잔하고 서정적인 운동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제 지율은 ‘이 무상한 육신을 버려 천성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몸과 목숨을 버리겠다고 한다. 육신의 힘듬을 머릿 속에서 놔 버렸다는 지율은 이제 영혼의 괴로움조차 놔 버려, 화엄의 언덕에서 방황하는 넋과 밤마다 갈대 숲에 깃드는 영원의 꿈을 꾸고자 한다.



화엄벌의 회향은 아마도 현생에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첫 대면이자, 천성과의 마지막 약속이다. 그는 진실로 그렇게 하여, 그렇게 될 것이다. 눈치 빠른 우리는 살아서 만날 수 없음을 알아차렸고, 마른 하늘에 쥐어 짠 눈물은 자기만족 외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율은 목숨을 던지고자 싸우고, 너희는 목숨을 부지하려 버티기에, 결국 지율은 죽어도, 죽는 것은 지율이 아니다. 지율은 다시 부산시청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치밀어오르는 눈물, 분노, 배고픔, 고통의 인간감정은 한 세월 삭혀야 웃음이라더니,
지율에게 그 웃음은 죽음이던가.
부디 바라옵건데, 살아오소서.

지율을 보내며

화엄벌의 가을은 이리도 고운데 / 지율은 저렇게 가는구나
못내 떨쳐버리듯 / 작은 등짝 보이며 저렇게 가는구나

천성이 이고 사는 하늘은 저리도 맑은데 / 지율을 보내는 우리 속은
이리도 섧구나. / 툭 툭 털어버리듯 돌아서 버리는구나

빈 손 하나로 / 삭풍을 헤치며 하염없이 걸어도 보고
오만한 빌딩 그늘에서 굶어도 보고
뜨거운 햇볕 아래 / 큰 바람 장대비 흠빡 맞으며 / 삼천 번 허리 굽히다 못해

그예 아스팔트에 머리 쌓듯 조아리기 백여 리,
발 부르트고 / 무릎 깨어지고 / 이마 피멍 들어도
돌아보면 눈에 차는 내 도반들 / 우리 같이 간다는 든든함. / 그 하나로
억새 흐드러진 화엄벌까지 왔건만

이제 지율은 오던 길을 돌아 천성의 품을 떠나고
우리 지율을 등지고 천성 속으로 안긴다
따나는 지율 / 천성을 떨치지 못해 천성을 떠나듯
남는 우리 / 지율을 보듬기 위해 천성의 자궁 속으로 든다

우리가 떠나고 / 지율이 남는다 해도 / 천성은 늘 그 자리

부처가 그러하듯 / 천성은 그렇게 그 자리
날 것, 길 것, 땅 것 / 온전히 생명 안고
설사 / 지율이 남고 / 우리가 가더라고 / 천성은 생명의 아기집
뭇생명, 뭇생명의 혼과 백까지 / 안기고 품어 줄 부처 천성

지율의 삶이 / 지율 자신의 것이 아니듯
우리의 삶도 / 우리 것은 아닌 것을
천성의 허리가 끊기는 날 / 지율과 천성의 끈도 끊기고
지율과 우리의 끈도 끊어버린다. / 천성을 우리 가슴에서 끊어버린다.
우리 자신조차 끊어버린다.

화엄벌의 가을은 이리도 고운데 / 천성이 이고 사는 하늘은 저리도 맑은데
우리는 내치듯 지율을 보낸다.
천성의 품에서 / 서로 보듬고 얼싸안기 위해 / 지율을 보낸다.

천성의 품에서 / 작은 몸뚱아리 새까만 얼굴 / 지율을 떠나 보낸다.

꼬마잠자리 / 배나온 도룡뇽 함께 / 지율을 떠나 보낸다.

지율을 떠나보낸다.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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