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45일, 지율스님이 노무현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

2003.11.16 | 미분류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관통반대를 위한 내원사 지율스님의 단식이 오늘로 42일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뭇생명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스님의 의지는 42일 단식에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우리를 깨우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계신  스님과 천성산 뭇생명을 살려야하기에, 지금 10만 도롱뇽소송인단 모집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죽어가는 스님과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은 대선 당시 두 차례나 천성산 구간의 백지화약속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인륜은 그 약속을 다시 백지화 한 것입니다. 지율스님께서 대통령님께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부디, 그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시길 바랍니다. 그것만이 대통령과 이 나라의 정신이 사는 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한걸음 한걸음  40 날의 긴 계단을 올라 오늘에 이르렀읍니다.
그리고 마침내 글을 쓸 용기를 냅니다.

아득하게 멀기 만해서 영영 우리 곁에 다시는 서주지 않을 것 같은 당신이지만
이미 강을 건너버린 당신이지만
기다림은 우리 몫이기에,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놓고 간 당신은
“나는 부산 사람으로 내 고향의 정기를 끊는 일을 할 수 없다. 조상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 할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고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잊고 있는 당신은
부처님 앞에 발원하며 “자연환경 수호를 위해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노선을 전면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며 불교계의 자율성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공약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의 기억을 지워버린 당신은
지난 겨울 노상에서 단식중인 한 비구니의 손을 잡고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  백지화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이 우리 몫이기에
마른 창자가 항거하는 40 여일의 긴 굶주림을 견디어내면서
3 번의 만남 속에 깃든 진실한 힘을 믿으며
사람들에게 이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읍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당신은 우리가 떠내보낸 희망의 배에 가득히 살상의 무기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아, 그러나 그것만은 마셔요
이 땅에 뿌려지는 전쟁과 살상의 무기를 거두어 주셔요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님이 조금만 주의하고 자신의 발 밑을 내려 본다면 님이 밟고 서있는 곳은 바로 피투성이가 된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님이 조금만 귀 기울여 듣는다면  지금 님 주위에 들리는 밤 피리 소리는 바로 많은 생명이 빛 그늘 속으로 사라지면서  울고 있는 애절한 절규입니다.

그들은 피로 물들어 갔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하고
그들은 영혼으로  울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빛이 되고 소리가 되었던 어두운 밤의 기억을 당신은 정녕 잊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 스스로 이야기 했듯이
이땅의 정기를 끊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 사람 되지 마셔요
동족을 향해 총칼을 들지 마셔요

불전에서 했던 언약 지켜 주세요
원칙과 약속을 지키겠다고, 믿어 달라고 했던 그 마음 보여 주셔요

당신이 부두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며
당신이 타고 있는 배가 폭풍속에 가라 앉아 가는 것을 지켜보는 슬픔이
더 이상 번저가지 않도록 ….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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