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기후회의, 이제 행동이 필요한 때!

2002.11.11 | 미분류

지난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제 8차 회의(COP8)’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본과 마라케쉬에서 미국의 불참속에서도 교토의정서의 이행방안이 합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캐나다, 호주 등이 교토의정서를 아직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열리게 되었다.

교토의정서가 발효되기 위해서는 당사국 중 55개국 이상이 비준을 하여야 하고, 90년도 AnnexⅠ 국가의  CO2배출량의 55% 이상을 점유하는 AnnexⅠ 국가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90여개국이 비준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AnnexⅠ 국가의 36%를 차지하는 미국과 17%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비준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비중은 37%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이번 COP8에서는 러시아의 조기비준을 통해 교토의정서를 발효시키는 동시에 이를 위한 재정체계, 보고체계, 의정서에 대한 적응 방안 등 구체적인 세부 이행방안을 합의하는 자리였다. 또한 교토의정서 체제가 출범하게 되면 한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의무감축 참여에 대한 압력이 강화될 상황이기에 이번 회의는 심각한 의제는 별로 없었음에도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서는 미국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은 OPEC 국가들과 캐나다 등의 국가들이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본래의 목적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주장함으로써 결국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모든 결정을 내년 6월 열릴 부속기구회의로 미루고 말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주요 석유 수출국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에너지소비를 줄이게 되면 결국 석유 수출이 줄어들게 되어 자기네 나라들이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같은 주장은 처음에는 전혀 터무니없는 억지로 치부되었으나 협상이 진전됨에 따라 주요한 이슈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캐나다는 미국 등에 천연가스, 수력 전기 등을 수출하는 부분을 CO2 감축으로 인정하여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지적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와 더불어 판단을 내년으로 넘김으로써 교토의정서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불씨를 남겨놓게 되었다. 또한 이번 논의의 기술적인 부분의 핵심 사항인 국가보고체계와 재정체계, 적응 방안 등에 대한 내용도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채 회의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번 회의에서 유일하게 합의된 것은 껍데기 뿐인 ‘델리 선언’이었다. COP8의 의장인 인도 환경부 장관인 ‘바루’에 의해 제안되어 회의 마지막 날까지 열띤 논쟁 끝에 채택된 이번 선언은 약 두달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채택한 WSSD의 정치적 선언문과 마찬가지로 어떤 구체적인 내용도 담지 못한채 선언적 수준의 합의문만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참가자들은 왜 굳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이번 회의에서 선언문을 채택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마 각 국가들의 이해에 발목을 잡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애써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델리선언문을 채택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하였다.

그리고 COP8에 참여한 주요 국가 대표들은 기후변화 방지를 바라는 대부분의 참가자들과 인류에게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어쩌면 그들은 이같은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 정부 대표단과 산업계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대표단은 지난 2000년 헤이그에서 열린 COP6에서부터 줄곧 어떻게 하면 의무감축 목표를 늦게, 그리고 조금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였을 뿐 정작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델리 선언문에서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참여 부분이 숱한 논쟁 끝에 결국 빠지게 된 것에 대해 큰 만족을 표현하였으며, 여전히 현실성 없는 2018년, 3차 공약기간부터 감축 목표를 받을 것이란 입장을 고수하였다. 뿐만아니라 기후회의가 열리는 기간에 국내 사정이라는 애매한 이유로 수석대표로 내정되었던 환경부 장관의 출국을 금지시키고 현지에 와 있던 국장급 인사로 수석대표를 맡김으로써 국제사회의 빈축을 삼은 물론, 한국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행태까지 연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회의 도중 한 도서국가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이제 하나의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토론만을 해왔으나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COP9에서도 똑 같은 논의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토의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다”

그렇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이 만들어진지 10년, 97년 교토의정서가 만들어진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회의에서 수없이 많은 논의들이 기후변화 방지를 통한 인류와 생태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어떤 실질적인 조치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니, 어렵게 합의한 교토의정서 이행방안마저 갖가지 이유로 흠집을 내기에 급급해 있다. 이제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시간도 우리에겐 없다. 더 머뭇거리다간 모두들 함께 기상재앙 속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바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행동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열에는 반드시 한국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세계 9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개도국이라는 명분으로 OECD 국가의 대부분을 포함하여 3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의무감축 대상국인 AnnexⅠ 국가에 포함되지 않아 1차 공약기간인 2008년부터의 감축의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이 처한 위치로 인해 선진국들로부터 계속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참여를 요구받고 있고 이러한 추세라면 2차 공약기간인 2013년부터는 구속력있는 감축목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고 그것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지구적 노력에 동참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여전히 3차공약기간인 2018년부터 감축목표를 받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도 구속력이 없는 자발적인 목표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을뿐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만 증대될 것이며, 결국 미루기만 하다 아무런 준비없이 감축목표를 받게될 것이고 국가경제와 국민들에게 더 큰 부담만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시민단체들은 한국이 2차공약기간에 구속력 있는 의무감축 목표를 받을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당장은 국익에 손해를 가져올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고 기상재앙으로부터 인류와 지구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 최승국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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