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프랑스 각지를 전전하면서 집필한 자전적 작품 ‘고백록(Les Confessions)’에서 장 자크 루소가 한 말처럼, 3000여 명의 영덕 주민은 걷고 또 걸으며 몸과 마음을 한 뜻으로 모으는 의식처럼 집회를 맞이했다.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자, 투쟁을 택하라!
[핵폐기장 건설반대를 위한 영덕 군민 총궐기대회 현장보고]
14년 전에도 영덕에는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1989년에 핵폐기장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이끌어낸 김병강 위원장은 삭발과 함께 비통한 눈물을 쏟아냈다.
“도대체 왜 우리에게 생업을 접고 집회현장으로 뛰어다니게 만듭니까? 나는 평범하게 조용히 살다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89년도에만 열심히 반대하면 다시는 ‘핵’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그의 눈물을 보면서 희끗희끗한 머리의 마을 주민들도 메마른 손으로 눈가를 쓸었다. 고물고물한 손주 안고 마실이나 다닐 연세든 분들에게 ‘핵은 죽음이다’, ‘끝까지 투쟁합시다’ 라는 어떻게 보면 선정적인 문구의 머리띠나 어깨띠를 멜 수밖에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덕읍 덕곡리 일원에서 시작된 집회에는 핵폐기장 후보지로 발표된 4개 지역의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대거 참여해서 영덕 주민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최승국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은 연대사를 통해 핵폐기장 후보지가 1989년 3월 영덕을 시작으로 90년 안면도, 91년 울진을 비롯한 12곳, 94년 굴업도, 2003년에 영덕을 비롯한 4곳을 선정하는 등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핵폐기장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 인식의 부족함을 언급하고, 4개 지역이 함께 힘을 모아 전국의 어느 곳도 핵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4개 지역이 공동으로 작성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동대표들의 삭발식과 함께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핵의 장례식’을 의미하는 꽃상여를 짊어진 청년회를 선두로, 연이은 깃발과 함께 영덕 주민들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았다.
어린 꼬마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거리를 매웠고,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점심 시간을 이용, 집회에 참여해서 구호 외치는 모습은 마음 한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여 포항에서 강원도를 잇는 동해안 7번 국도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영덕 주민들의 힘찬 결의와 투쟁의 마음들이 모여 하나가 됨으로써, 경찰의 저지와 먼 거리를 걸은 피곤함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도로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는 ‘무조건 반대’를 연거푸 말씀하시며 ‘핵폐기장 들어서면 나중에 하늘가서 영감 볼 명목 없다’는 말로 심경을 나타내셨다.
1 개의 핵발전소를 짓는데 드는 비용이 2조원이며, 원료인 우라늄 또한 전부를 수입해야하는 현실에서 과연 정부가 주장하는 데로 핵발전소가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라늄의 매장량이 향후 5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 동안 전력 생산하자는 명목 하에 몇 천 만년 방사능 유출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니 정부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 하는 정책에 마음이 쓰렸다.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인디언 부족의 ‘영혼의 달리기 대회’를 연상시키는 영덕의 집회는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겨냥한 인형과 ‘핵 장례식’을 치룬 상여를 불태우고 영덕 주민의 마음 속에 힘찬 결의를 다진 채 끝을 맺었다.
“영원히 죽기를 원하는 자, 침묵을 택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자, 투쟁을 택하라!”
이버들 대안사회국 qjemfl@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