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자, 투쟁을 택하라!

2003.03.06 | 미분류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프랑스 각지를 전전하면서 집필한 자전적 작품 ‘고백록(Les Confessions)’에서 장 자크 루소가 한 말처럼, 3000여 명의 영덕 주민은 걷고 또 걸으며 몸과 마음을 한 뜻으로 모으는 의식처럼 집회를 맞이했다.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자, 투쟁을 택하라!
[핵폐기장 건설반대를 위한 영덕 군민 총궐기대회 현장보고]



14년 전에도 영덕에는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1989년에 핵폐기장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이끌어낸 김병강 위원장은 삭발과 함께 비통한 눈물을 쏟아냈다.
“도대체 왜 우리에게 생업을 접고 집회현장으로 뛰어다니게 만듭니까? 나는 평범하게 조용히 살다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89년도에만 열심히 반대하면 다시는 ‘핵’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될 줄 알았는데…”  
그의 눈물을 보면서 희끗희끗한 머리의 마을 주민들도 메마른 손으로 눈가를 쓸었다. 고물고물한 손주 안고 마실이나 다닐 연세든 분들에게 ‘핵은 죽음이다’, ‘끝까지 투쟁합시다’ 라는 어떻게 보면 선정적인 문구의 머리띠나 어깨띠를 멜 수밖에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덕읍 덕곡리 일원에서 시작된 집회에는 핵폐기장 후보지로 발표된 4개 지역의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대거 참여해서 영덕 주민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최승국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은 연대사를 통해 핵폐기장 후보지가 1989년 3월 영덕을 시작으로 90년 안면도, 91년 울진을 비롯한 12곳, 94년 굴업도, 2003년에 영덕을 비롯한 4곳을 선정하는 등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핵폐기장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 인식의 부족함을 언급하고, 4개 지역이 함께 힘을 모아 전국의 어느 곳도 핵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4개 지역이 공동으로 작성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동대표들의 삭발식과 함께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핵의 장례식’을 의미하는 꽃상여를 짊어진 청년회를 선두로, 연이은 깃발과 함께 영덕 주민들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았다.
어린 꼬마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거리를 매웠고,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점심 시간을 이용, 집회에 참여해서 구호 외치는 모습은 마음 한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여 포항에서 강원도를 잇는 동해안 7번 국도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영덕 주민들의 힘찬 결의와 투쟁의 마음들이 모여 하나가 됨으로써, 경찰의 저지와 먼 거리를 걸은 피곤함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도로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던 할머니는 ‘무조건 반대’를 연거푸 말씀하시며 ‘핵폐기장 들어서면 나중에 하늘가서 영감 볼 명목 없다’는 말로 심경을 나타내셨다.  

1 개의 핵발전소를 짓는데 드는 비용이 2조원이며, 원료인 우라늄 또한 전부를 수입해야하는 현실에서 과연 정부가 주장하는 데로 핵발전소가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라늄의 매장량이 향후 5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 동안 전력 생산하자는 명목 하에 몇 천 만년 방사능 유출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니 정부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 하는 정책에 마음이 쓰렸다.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인디언 부족의 ‘영혼의 달리기 대회’를 연상시키는 영덕의 집회는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겨냥한 인형과 ‘핵 장례식’을 치룬 상여를 불태우고 영덕 주민의 마음 속에 힘찬 결의를 다진 채 끝을 맺었다.
“영원히 죽기를 원하는 자, 침묵을 택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자, 투쟁을 택하라!”

이버들 대안사회국 qjemfl@greenkorea.org

이 땅 어디에도 핵폐기장은 안 된다! 지역이기주의, 악선전 중단하고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 즉각 백지화하라.
< 고창, 영광, 영덕, 울진 핵폐기장 4개 후보지 대책위 공동 성명서>

오늘 우리는 핵폐기장 백지화와 핵발전을 추방하기 위한 영덕주민들의 역사적인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이곳에 섰다. 지난 2월 4일 김대중 정부는 정권말기 혼란스런 국면을 이용하여 핵폐기장 4개 후보지를 무책임하게 발표하였고, 2월 25일 취임한 노무현 정부에서는 전 정권의 잘못된 결정을 수수방관하여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약속은 헌신짝이 되어 버렸으며 신뢰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한국수력원자력(주), 원자력문화재단 등 핵발전소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는 무리들은 세계가 외면하는 핵발전소에 집착하여 이를 고수하기 위해 핵폐기장 추진의 시급성과 해외 사례를 왜곡, 거짓 선전하면서 오히려 우리들의 정당한 투쟁을 지역이기주의라 매도하고 있다.

자기 뱃속을 채우기 위해 핵발전소를 확대하고 핵발전소 확대를 위해 핵폐기장을 강행하는 저들이야말로 지역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집단이기주의이다. 우리 4개 후보지는 물론 이 땅 어디에도 핵발전 확대를 전제로 하는 핵폐기장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핵폐기장도 필요 없고 지역 지원금도 필요 없다. 지역 지원금 몇 푼에 대대손손 지켜갈 우리 고향을 맞바꾸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팔 수 없다.



저들이 핵폐기장을 지난 15년 동안 고집해 올 때 우리는 이미 핵폐기장 문제가 이 나라가 핵발전 중심의 전력 정책을 고수해 왔기 때문에 따른 폐해임을 깨달았다. 인류가 그동안 의존해왔던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는 모두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를 동반하며 지역 공동체를 파괴해왔다. 언제까지고 현실 핑계를 대며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에 고집하여 세계 흐름을 외면할 것인가. 이 나라 곳곳이 환경파괴의 고통으로 신음함은 물론,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에, 핵폐기장 후보지 4개 지역은 4개의 후보지 선정이 모두 백지화되고 핵발전 중심 전력정책이 철회되는 그 날까지,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공동 투쟁할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을 요구한다.

하나, 노무현 정부는 핵폐기장 4개 후보지 선정을 즉각 백지화하라.
하나, 신규핵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하고 지속 가능한 전력정책 수립을 위한 민관 합동 기구를 즉각 구성하라
하나, 핵폐기장 사업자는 지역주민들의 정당한 투쟁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악선전을 중단하라.

                        범고창군민대책위원회                    영덕핵폐기장반대대책위원회
                        울진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           핵폐기장반대영광범군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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