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은 싸우고 있다.

2003.09.16 | 미분류

나는 부안군민의 ‘핵폐기장 유치 반대운동’에 처음부터 동참해 왔다. 그 기간 내내 정부의 무능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리고 아직도 부안 군민과 함께 절규하고 있다. 지난 9월8일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부안군수가 다친 사건이다.



어쩌면 이 사태는 예고된 것이었다. 정부는 부안 군민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밀어붙이기와 침소봉대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경과 트럭으로 주민들의 표현을 가로막기 일쑤였다. 검은색 정부군과 노란색 시민군의 대치 상태의 나날이었다. 차량시위, 해상시위, 고속도로 점거, 문화공연, 난타(양철통 플라스틱 등 닥치는 대로 두들기는 오케스트라), 상경투쟁, 밤샘농성을 거쳐 마침내 등교거부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군민들은 지금껏 평화스런 방법, 힘을 쓰는 방법의 양동 작전을 벌여 왔다. 머리를 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절벽이었다. 절규를 들을 귀도 없다. 과거 군사독재 행태를 반복할 뿐이다. 부안에서는 지금 교육, 민주주의, 의로움의 의미조차 다 깨진 상태다. 가치관의 혼란 자체다.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행자부 장관, 교육 부총리가 다녀갔지만 신뢰마저 깨버리는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 두 장관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군민은 이제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부안 군수 폭행 사태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가 군민의 감정을 모를 리 없다. 하물며 김종규 군수가 살벌한 군민의 감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군수는 부안군 문화관광과장과 사복경찰을 대동하여 대명천지에 내소사를 방문하였다. 군수가 무엇하러 거기에 갔는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당당했는가 의구심이 생긴다. 폭행 사태 뒤 전북대학교 총장과 강현욱 도지사가 군수를 문병하였다.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다. 도지사가 부안 지역의 치안을 담당할 수 없어 중앙에 병력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극에서 극으로 치닫자는 것이다.

군수만 다쳤는가 주민도 다쳤다. 군수와 군민의 몸값은 결코 다르지 않다. 군수가 다친 것만 문제인가 군민이 다친 것은 문제가 아닌가 언론은 군민이 다쳤을 때와는 다르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 코뼈 부러진 사람이 어디 군수뿐인가 수십 명 군민의 코뼈가 부러졌다. 경찰의 방패로 코가 함몰된 한 군민은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아픈 것은 처음 알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방치한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핵 폐기장 강행 방침만 밀어붙이고 있다.

군수는 지금까지 숨어살다시피 하였다. 군수가 감히 부안에서 군민 앞에 나설 수 없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도 대명천지에 내소사에 갔다. 군민을 달래거나 토론할 분위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더구나 군수는 구국지사처럼 당당했다. 사과를 해도 부족한 판에 뻔뻔하게 군민을 가르치려 했다. 심하게 말해 폭력 사태를 자초한 것이다.

대중운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부안사태는 민란 자체다. 민란의 최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생업을 포기하고 싸우러 길거리에 나선 지 오래다. 불합리한 정부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다. 더는 호소할 길이 없다. 정부가 주는 돈도, 떡도 독약이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핵폐기장 유치를 기정사실로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촛불집회 연단도 강제로 철거하였다. 핵폐기장 유치 반대의 글귀가 적혀 있는 펼침막조차 다 걷어냈다. 입이 잘려나간 것이다. 정부와 군민 사이 신뢰는 박살이 났다. 정부가 폭력을 유발시키고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핵(산업)으로 먹고사는 이기주의자들만 살고 주민은 죽어가고 있다. 참담하다.

글 : 문정현 신부

* 본 글은 2003년 9월 16일자 한겨레 신문 ‘왜냐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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