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에 핵이 없는 날이 미래세대에겐 희망의 날이다.

2003.11.27 | 미분류

11월 25일,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한 골목에는 청와대 근처에는 얼씬도 못한 채, 울음을 쏟아내고 있는 80여명의 부안주민들이 서 있다. “노란 옷이 그리 무섭냐?”, “참여정부, 참여정부라고 외칠 때는 언제고, 그 먼 곳에서 진통제 맞아가며 올라온 사람들은 왜 근처도 못 가게 하냐?”
  
우리곁에 핵이 없는 날이 미래세대에겐 희망의 날이다.



넉 달을 넘겨가며 힘겹게 싸우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외로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뿐이다.
거동조차 하기 힘든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4번씩 진통제를 맞아가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그들은 그렇게, 그렇게 서울로 올라왔다.
힘겹게 올라온 서울이지만 그들을 반기는 것은 카메라 셔터뿐이다.
실망한 그들은 다시 부안에 내려간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안으로 들어가는 차량은 우리뿐이다. 부안에 들어서니 보이는 것은 새까만 옷을 입은 전경들뿐이다.

저녁 9시, 노란 촛불로 가득 메워진 부안 성당에서는 오늘도 촛불집회가 한창이다. 비린내 나는 옷을 미처 갈아입지도 못하고 성당으로 달려온 아주머니와 엄마 품에서 졸고 있는 아이, 노란 반핵외투로 추위에 무장한 할머니들까지, 부안성당은 노란색으로, 노란색으로 점차 뜨거워진다.
이 날은 반핵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온 외국인들과 민중연대 사람들로 더욱 북적였다. 특히 일본인 특유의 멋진 두건을 쓴 로카쇼무라의 야마모토 유키코씨는 며칠 동안 한국말을 연습해서 왔을 정도다. 유창한 한국말로 ‘부안군민 만세, 핵폐기장 결사반대’를 외쳐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단식중인 문규현 신부를 방패로 때려,,, 



핵이 싫은 이들과 함께 부안군민들은 강제로 빼앗긴, 그리고 행동하는 성직자 문규현 신부가 단식하는 수협광장을 향해 나섰다. 그러나 날카로운 방패를 든 새까만 전경들에 금방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때 일어난 이는 일본에서 온 ‘후꾸자와 죠까꾸’씨였다. 그는 ‘지금 막고 있는 전경들 너머에는 핵폐기장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가면 막혔고, 또 뚫고 나아가면 막혔고, 그러다 끝에 가보니 핵폐기장이 있었다. 부안군민들은 우리와 다르게, 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그들이 희망하는 뜻대로 될 것이다.’라고 용기를 북돋았다.  
경찰과의 다툼을 우려한 집행부의 자진해산 결정으로 군민들은 그 뜻에 따랐으나, 군민들이 염려되어 수협 광장에 나왔던 대표단들은 오히려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특히 단식 중이던 문규현 신부가 이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를 방패에 찍히는 등 부안의 어둡던 밤은 그렇게 길고도 길었다.
  
언론에서는 ‘폭도’니 ‘민란’이니 듣기만 해도 선정적인 단어들로 부안의 현 상황을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로 부안에서 와서 본 모습들은 언론에서 떠들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핵폐기장’에 대해 알고자 열심히 공부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열심히 토론한다. 대책위사무실에는 에너지 관련된 책들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으며, 할머니나 꼬마아이에게 ‘핵폐기장’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도 척척 대답한다. 넉 달 동안 많이 알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 새삼스레 내가 환경단체 활동가인지 의문스러워졌다.
특히 외국에서 온 이들은 쏟아지는 질문공세로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 일본은, 독일은, 프랑스는 어떤 방식으로 전력을 수급하는가, 폐기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정부에서 광고에서 떠드는 것처럼 농사짓는 밭 옆에 핵폐기장이 들어서 있는 것인가 등등.
  
핵시설이 한 번 들어오면, 추가 핵시설들은 따라온다.



건설된 지 30년이 되어간다는 ‘로카쇼무라’의 경우, 주민들을 속인 체 국유지에 핵폐기장이 지어졌단다. 처음에 반입된 드럼통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처럼 깨끗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구멍 뚫리고 녹슨 드럼통이 로카쇼무라에 들어왔다.
게다가 저준위폐기장에 이어 고준위 임시저장소, 재처리공장, 우라늄농축공장까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어졌다.
우리나라 고리 지역에 발전소가 지어지자, 신고리에 발전소가 또 건립된 것처럼.
그들은 말한다.
한 번 핵관련 시설이 지역에 들어올 경우, 또 다른 시설의 유입은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진다고.
그래서 신중하게 받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정부가 방사능준위가 낮은 ‘중저준위폐기장’만 지을 것처럼 선전하면서 ‘고준위폐기장’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듯이, 로카쇼무라 또한 그러했다고.
  


유럽에서 유일하게 핵확산 정책을 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경우, Jean-Yvon Landrac씨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650개의 단체가 모여 있는 ‘핵추방 네트워크’의 활동가인 그는 프랑스 총 에너지원의 15%만이 원자력이라 언급한다.

프랑스의 경우, 퀴리부부가 처음으로 ‘방사능’에 대해 알아냈고, 그러므로 핵무기에 대해 선점하고 싶은 국가적 욕심이 있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핵발전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가 ‘군사기밀’로 분류되며, 논의하는 자체 또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의 61%가 핵발전소 추가건설에 반대하며, 실제로 2차례나 건설저지를 이끌어냈다. 원자력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자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부안주민들의 모습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재생에너지의 천국’이라 언급해도 손색없는 독일의 경우, ‘핵발전소 단계적 폐쇄’라는 정책변화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40년 가까이 ‘핵(核)없는 세상’을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해왔고, 특히 체르노빌 사고 이후 인식전환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체르노빌 사고가 난 뒤, 독일주부들은 방사능계측기를 들고 다니며 야채를 사야했으며, 생선을 사야했다. 그러한 경험들이 운영하던 핵발전소의 절반가량을 문 닫게 했으며, 전력의 30%정도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게 만들었다.

핵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핵폐기장 반대’를 주장하는 이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그럼 지금껏 나온 폐기물들은 어쩌란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한 질의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계속 나오는 폐기물은 어쩌란 말이냐?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으면 폐기물은 계속 나올 것이며, 설상 위도에 핵폐기장이 지어진다해도 폐기장은 부족해질 것이다.
전국을 핵폐기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핵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민주주의와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싸우는 이가 부안 주민들이다.
우리에게서 핵이 떠나는 날, 미래세대에게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

작성 : 녹색연합 시민참여국 김윤희 / 문의 : 대안사회국 이버들 (02-747-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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