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없는 고향(非核家園) 위한 눈물겨운 그들의 노력 – 대만 핵발전소 반대운동 현장 보고 –

2005.06.17 | 미분류

지난 6월 2일부터 8일까지, 대만 타이페이에서는 ‘반핵아시아포럼’이 열렸다. 한국에서 9인, 일본에서 9인, 싱가폴 1인, 네델란드 1인, 대만 약 60인이 참석하여 동북아 지역의 핵문제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반핵아시아포럼에 참여했던 김복녀 반핵운동가가 참가기를 보내왔다.

수도 타이페이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태북현의 꽁랴우(貢寮鄕) 지역에 다다른다. 꽁랴오향 엔랴오(鹽寮)마을에 있는 대만 제4핵발전소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1995년 꽁랴우에 갔을 때에는, 부지 정리가 거의 끝난 언덕에 올라 건설 중단을 염원하며 “고향의 봄”을 불렀었다. 그리고 3만 여명이 타이페이 주요 도로를 몇 시간이나 행진하며 反核四(제 4핵발전소 반대)를 알렸다. 당시 타이페이 시장이던 천수이벤이 2000년 총통이 되면서, 건설 중단을 선언하고 드디어 꿈이 실현된다고 가슴 벅차 하던 곳이다.

제 4핵발전소 건설 여부를 묻는 투표를 네 곳에서 해서 모두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여당 민진당 의석이 모자라 건설중단은 좌절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 4핵발전소의 원자로는 135만kw 신비등수형로(ABWR)로, 일본의 도꾜 전력스캔들을 일으킨 원자로와 동일한 모델이다. 도꾜 전력스캔들은 일본의 도시바와 히타치사가 각각 1기씩 만든 이 원자로 내부의 노심격벽 균열을 은폐하다가, 내부고발로 드러나 17기의 원전을 모두 가동 중단한 바 있는 사건이다. 일본의 핵산업계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운운하다가 도꾜전력스캔들로 그동안의 선전이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대만의 제 4핵발전소도 같은 전례를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대만 시민.환경단체는 대만독립문제와 연관되어 국민투표를 결행하기도 어렵고, 미국 핵산업의 압력으로 건설 중단도 어려워 현재로선 건설을 용인하고 가동을 못하게 하는 쪽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고도 전했다. 대만은 현재 전기가 남고 있고,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제 4핵발전소 2기가 완공되면, 기존 핵발전소 6기 총 발전용량의 50%를 훨씬 넘게 되어 누가 봐도 낭비임을 알 수 있다. 전력수요도 소득증대와 정비례하지 않음은 이미 유럽에서 증명되었고, 최근 대만의 전력수요증가율은 2%에 불과하다고 한다.

10년 전 제 2발전소에선가 열심히 설명하던 대만전력 직원이 제 4발전소를 끝으로 이제 핵발전소는 더 이상 짓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게 좋은 걸 왜 그만 짓느냐고 비꼬던 한 참가자의 말이 기억난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ꡐ탈핵(脫核) 국가ꡑ를 실현하겠다는 천수이벤은 지난 2000년에 제 4발전소 건설 중단을 시도했으나,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반대해 결국 건설지속을 선택하고 말았다. 지금도 민진당에서 제 4핵발전소 반대운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전만큼 열심이지는 않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비등수형 원자로는 다른 원자로보다 훨씬 더 방사능 누출 소지가 높다. 부두건설만으로도 해류가 바뀌어 아름다운 해안 모래를 휩쓸어 가버려 관광객 감소와 어획감소로 현지 주민은 생활고를 겪고 있는데, 이제 방사능 누출까지 겹치면 그들이 겪을 고통은 뻔하다. 벌써 어로를 포기하고 노동판에 뛰어든 마당에 그들이 고향을 지키고 살길 바라는 건 무리다.

방문 이튿날 6년 동안 찍었다는 ‘꽁랴오 니하오마?’ 다큐영화를 봤다. 건설 중단되었던 제 4핵발전소가 다시 공사를 시작하자, 그 충격으로 아직은 건강하게 잘 살았을 50, 60, 70대들이 다수 병사하였다. 십 수년간 그들의 반핵 운동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는지 짐작케 했다.

제 4핵발전소 부지엔 사용후핵연료 보조 저장수조까지 짓고 있다. 빨라야 가동 기준 15년 후에야 사용하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은 걱정이 더 늘었다. 이곳에 다른 발전소 사용후핵연료까지 옮겨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다. 제1발전소 저장수조는 2008년, 제2발전소는 2009년이면 가득 찬다고 한다.

저준위폐기물은 모든 발전소에 보관중인 것보다 더 많이 란위섬에 옮겼다. 국외 반출(북한)까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해 반출약속을 몇 번이나 어기며 2016년까지 미뤄놓았다. 제 1발전소 창고는 용량을 훨씬 초과하고 있고 다른 발전소 또한 별 여력이 없어 여차하면 란위에 보관 중인 것까지 비교적 여유 있는 제4부지로 옮겨올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하기 참담한 일들이 현실로 벌어질까 봐 그들은 정말 끈질기게 오래 잘 싸웠다. 그러나 민진당 정부조차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젠 좀 지쳐있다.

6월 5일 환경의 날, 정부청사가 많은 도로에서 타이뻬이 행진을 끝냈다. 대열 맨 뒤에서 휴식하던 꽁랴오 주민들을 만났다. 더듬더듬 몇 마디를 주고 받다가 시간에 쫓겨 ‘질긴 놈이 이긴다’는 우리식 명언을 필담으로 나누고 ‘찌아유(화이팅이라는 뜻)’를 함께 외치고 헤어졌다.

부디 그들의 반핵 염원이 이뤄지길 빌며, 혹 가동이 되더라도 끝까지 핵발전소를 감시해줄 것을, 하루빨리 가동을 중단시킬 것을 빌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 잘 알기에, 또한 내가 사는 가까이에 신고리 핵발전소가 기공된 사실들을 떠올리며 그만큼 숨이 막히기도 했다.

글: 김복녀(부산 반핵운동가), 사진: 녹색연합

* 대만은 총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현재 2기의 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대만은 원전 2기를 묶어 제 ○발전소라 부르는데, 제 4발전소가 논란의 핵심이다. 그동안 많은 반대운동으로 지난 2000년에 공사가 중단되었으나, 건설업체인 미국의 GE와 거대 야당인 국민당의 압력으로 다시 공사가 재기되었다. 현재 제 4핵발전소 건설중단을 요구하는 여당인 민진당과 시민단체의 요구가 여전히 대만 사회에서는 주요한 이슈다.
한편 지난 2002년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비핵가원(非核家園) 원칙에 동의해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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