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바이오 연료의 명암] ① 브라질 꾸이아바 사탕수수 에탄올공장을 가다

2007.10.22 | 미분류

42℃ 땡볕서 12시간 일해 일당 1만원

“노예노동? 그래도 일하게 해주세요”

사탕수수, 옥수수 그리고 콩. 바이오에탄올이 세계적 화두다. 국제유가 배럴당 86달러 시대, 석유고갈과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대체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별 관심없는 것 같지만, 세계 최대 에탄올 생산국가인 브라질과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이미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에탄올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석유품질관리원도 내년 8월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위한 연구를 마감한다. 상용화를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곡물에탄올은 빈곤심화와 노예노동 등 또 다른 차원의 환경·인권문제를 낳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세계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바이오에탄올의 명암을 살펴보기 위해 브라질·미국·멕시코 3개국을 현지 취재했다. ‘곡물에탄올 전쟁, 바이오연료의 명암’ 10부작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 취재에는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이 동행했다. 현지 통역은 공흥식 ‘이벤트브라질’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주>

▲ 브라질 꾸이아바 사탕수수 공장을 가다        ⓒ 장윤선

남위 15도, 해발 188m, 평균 한낮기온 42℃. 브라질 중부 내륙고원 꾸이아바는 건조한 사바나 기후였다. 90일째 단 한 방울도 비가 내리지 않은 지독한 건기. 먹구름이 잔뜩 끼어 스콜이 한바탕 대지를 적시고 떠날 폼새였지만, 꾸이아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마른 땅, 누런 풀. 드넓은 평야에 방목중인 흰 소들도 마른 풀을 뜯느라 목 줄기에 생선가시 같은 뼈대가 드러났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너른 벌판. 트럭 한 대가 지나가면 사람 키 높이만큼 짙은 황갈색 먼지기둥이 솟았다가 묽게 풀어졌다.

지난달 18일 오전 7시,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브라질 연방환경경찰청(IBAMA)과 함께 꾸이아바의 한 사탕수수 에탄올공장을 급습했다. 유럽 언론들이 잇달아 지적한 브라질 사탕수수밭 ‘노예노동’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에드와르도 IBAMA 연구원은 취재진이 급습하게 될 사탕수수 에탄올공장에 아무런 사전정보도 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IBAMA의 환경단속은 항상 불시에 이뤄진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들은 불시점검 항목으로 불법 노예노동, 불법 폐수방류, 불법 소각 등을 꼽았다.

덜컹거리는 에탄올전용 레저차량(SUV)에 몸을 싣고 지평선이 좌우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약 4시간가량 달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커다란 공장굴뚝에서 시커멓게 피어오르는 연기기둥이었다. 육중한 대형트럭들은 2~3m 높이로 수십 톤의 사탕수수를 가득 실어 나르고 있었다. 곁에서 얼핏 바라본 사탕수수 더미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7년 된 사탕수수밭은 폐허와 같다”

바하알콜(Barralcool) 에탄올공장. 이곳은 꾸이아바 공항에서 약 20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최소 면적 1만2000㏊. 여의도 면적의 156배. 브라질 에탄올공장은 대부분 이 정도로 넓다.

에탄올공장의 방대한 여러 시설을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IBAMA와 동양여성 취재진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공장 측을 당황하게 했다. 바하알콜의 관리부장인 마르코스는 IBAMA가 서류점검을 하는 동안 취재진에게 공장현황을 설명했다.  

설탕 50㎏들이 120만 포대, 에탄올 1억7000만ℓ 그리고 에너지 생산. 바하알콜이 한 해 생산하는 설탕과 에탄올, 그리고 에너지의 총량이다. 생산 공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매년 11월 사탕수수를 수확하면 사탕수수 대를 밭에서 대형트럭에 담아 실어 나른 뒤 커다란 물 기계를 돌려 세척합니다. 깨끗하게 세척한 사탕수수를 기계에 넣어 엑기스를 짜 내죠.

첫번째 주스가 된 사탕수수 액체는 설탕공정으로 보내고, 두번째부터는 물과 섞어 에탄올 공정으로 보냅니다. 한번 짜내고, 또 물을 섞어 더 짜내죠. 그 다음 이 액체에 효소를 넣어 발효시키고, 열을 가해 증류시킵니다. 설탕과 에탄올을 만들고 남은 사탕수수 껍질 같은 찌꺼기는 말려서 에탄올 공정의 연료로 씁니다. 우리 공장에서는 버리는 게 단 하나도 없지요. 그런 면에서 매우 친환경적입니다.”

마르코스는 1980년에 건립된 바하알콜에서 첫 번째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데 15~18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사탕수수 농사는 씨 뿌리는 농사가 아니기 때문에 매년 1마디나 2~3마디로 줄기를 잘라 심어 그 이듬해 수확한다고 했다.

첫해는 작황이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당도가 떨어지고 작황도 나빠져 7년 주기로 땅을 뒤엎는다. 그 자리엔 콩을 심어 땅을 부드럽게 만든다. 콩농사는 주로 바이오디젤 연료용 작물로 쓰인다. 마르코스의 말이다.

“7년 된 사탕수수 밭은 폐허나 다름없어요. 1~2년 콩 농사를 지어 땅을 쉬게 해줘야 사탕수수 작황이 좋습니다. 콩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거든요. 7년에 한 번씩 이 방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바하알콜의 사탕수수 수확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42℃의 살인적인 더위와 싸우는 사탕수수 여성노동자들

공장 내부는 단내가 코를 찔렀다. 설탕창고에는 이미 포장을 마친 50㎏들이 설탕들이 10m 높이로 쌓여 있었다. 건물 밖에서는 굉음을 울리며 에탄올을 뽑아내는 생산라인이 부지런히 가동됐다. 36시간 이내에는 무조건 설탕과 에탄올 공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수확된 사탕수수들은 대형트럭을 타고 줄지어 공장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에드와르도 연구원에 따르면, 농장 주인들은 사탕수수 밭에 뱀을 없애고 무성한 사탕수수를 좀더 쉽게 벨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확 전에 불을 지른다. 이때 대규모 소각으로 발생하는 CO2 방출량은 환경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고. 사탕수수 재배면적이 가장 많은 상파울로에서는 매일 밤 농장주들이 IBAMA와 ‘소각전쟁’을 벌인다고 전했다.

바하알콜도 사정은 같았다. 마르코스의 안내로 약 20분간 차로 달려 찾은 사탕수수밭에는 숯덩이가 된 채로 밭고랑마다 누워 있는 사탕수수 더미들이 가득했다. 집게차가 한 뭉치씩 집어가기 좋게 군데군데 모아둔 사탕수수 더미에서는 탄내가 폴폴 피어났다.

“사진 찍지 말아요!”

밀레의 그림 ‘이삭줍기’에서처럼 1만2000㏊에 널린 사탕수수를 줍는 아낙들이 지평선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왼쪽에는 그들을 싣고 온 낡은 버스가 그림처럼 서 있었고, 아낙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흩어진 사탕수수 대를 주워 한 데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숯검정이 묻어난 작업복의 아낙들은 이방인의 셔터소리를 거부했다. 인터뷰도 사양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주눅 든 채로 물끄러미 힘겨운 노동을 바라보고 서 있던 이방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우리는 이 뙤약볕 아래서 하루 12시간씩 일합니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에요.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벌판에 누워 휴식을 취합니다. 5일에 한번 휴일입니다. 월급은 한 달에 600헤알(30만5000원). 하루 일당은 20헤알(1만185원)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일당은 없습니다.”

서른아홉에 손자 둘을 둔 달바나. 이 여성은 브라질 동북부 알라고아스에서 돈을 벌기 위해 꾸이아바까지 이주해온 노동자였다. 시간당 1.6헤알(815원)을 받고 일하고 있다. 고된 노동에 비한다면 값싼 임금이다.

달바나의 얘기를 들으면서 둘러본 노동현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허허벌판, 몸을 숨기고 용변을 처리할 장소도 없었다. 깨끗한 물로 손을 씻고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잠깐이라도 햇볕을 가릴 데라곤 챙 넓은 모자가 유일했다.

낡은 버스 옆에 작은 간이천막이 있었지만 그곳은 관리하는 남자들의 공간이었다. 42℃의 살인적인 더위와 싸우며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그들은 숯덩이가 된 사탕수수와 다를 바 없는 신세였다. 달바나가 입을 열자, 주변 여성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1000명의 노동자 해고가 예고된 기계농의 현실



올해 서른둘의 이자벨 크리찌나도 브라질 북부에서 이주해왔다. 이자벨의 남편은 사탕수수 커팅노동자다. 한 사람의 상반신만한 칼을 하루 종일 휘둘러 10톤의 사탕수수 대를 자른다. 남편은 그 대가로 매월 1000헤알(50만9000원)의 돈을 번다. 이자벨의 말이다.

“우리는 이게 노예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꾸이아바에서 터 잡고 살게 됐는데 기계가 도입되면 우리 모두 길거리로 나앉게 됩니다.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햇볕을 피해 버스 밑으로 기어들어가 낮잠을 자도 좋아요. 붉은 태양 아래 땅바닥에 누워도 좋아요. 제발 우리의 일을 빼앗지 말아요.”

그녀는 절규했다. 깊은 한숨으로 이자벨 곁을 지키고 있던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내년부터 바하알콜에 사탕수수 수집기계가 도입되면 1000명의 노동자가 해고된다. 마르코스는 100%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노동이 기계화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집단이 노동자들이라고 걱정했다.

그렇지만 바하알콜은 노예노동 비판 등을 피하기 위해 내년 초부터 모든 작업을 기계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바하알콜의 사탕수수 경작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3800명. 이 가운데 1000명이 해고된다. 전체 노동자의 25%가 실업자가 되는 셈이다.

마르코스는 “사탕수수 노동자 대부분이 저학력이기 때문에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기도 어렵다”며 “기계농으로 본격 전환하게 되는 12월~내년 4월 사이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에드와르도 IBAMA 연구원은 바하알콜이 인권과 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공장은 아니라고 전했다. 서류상의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특별히 문제삼을 게 없다고 했다.

“사탕수수는 공해를 일으키는 작물이 아니다. 브라질 입장에서 보자면 경제작물이고 연료전환작물이다. 무엇보다 재생가능에너지다. 석유처럼 고갈될 위험도 없다.”

동행한 안델손 IBAMA 연구원도 비슷한 견해였다.

“브라질은 땅이 넓다. 우리에게 사탕수수는 돈이 되는 작물이다. 브라질 국민으로서 사탕수수 영농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20세기 브라질에게 면화의 시대, 커피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에탄올의 시대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취재진은 브라질 에탄올정책에 비판적인 환경운동 측의 입장을 듣고자 깜뽀그란지 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싸니까! 환경에 좋다니까! 에탄올”

[길 위의 사람들 ①] 의료기기 판매원 데니스

“브라질 신차 가운데 가솔린 전용 차량을 찾기는 어려워요. 젊은층 사이에서는 인기도 별로예요. 아마 브라질에서는 더 이상 가솔린 전용 차량은 출시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 플렉스(FFV)의 인기가 좋습니다. 한번 타보실래요?”

의료기기 판매를 한다는 데니스(26). 지난달 18일 브라질 상파울로 시내 산타나 거리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그는 새로 뽑은 그의 차에 대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배기량 1000cc의 소형차이지만 에탄올과 가솔린 겸용인 플렉스이기 때문에 관리하기도 좋고, 성능도 좋아 어딜 가도 인기라고 자랑했다.

데니스는 “에탄올이 지구온난화 해소와 온실가스 저감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들었다”며 “브라질의 많은 사람들은 환경문제 때문에 자동차 연료로 에탄올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가솔린 연료에 비해 에탄올 연료는 배기가스 등 이산화탄소 발생률이 낮고 환경오염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고 강조했다.

플렉스를 타는 사람들이야말로 지구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본인은 환경문제보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플렉스를 선호한다고 솔직한 내심을 털어놓았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솔린에 비해 에탄올 가격이 저렴합니다. 사탕수수 에탄올 생산량이 더욱 늘어나면 더 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신문보도도 봤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값싸고, 환경에 기여도 하니까 에탄올을 주유하고, 나중에 에탄올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그때는 가솔린 가격과 비교해 좀더 저렴한 것을 선택하겠지요.”

이 주유소의 매니저 로드리고는 “지난 1월부터 에탄올 주유 차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가솔린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에탄올을 선호하는 차주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실제 가솔린과 에탄올 가격을 비교하면, 가솔린은 2399헤알, 에탄올은 1099헤알이다. 근소하게 2배 차가 난다.

그에 따르면 이 주유소의 하루 에탄올 판매량은 2만~3만 리터. 가솔린은 4만5000리터~5만 리터다. 여전히 가솔린을 주유하는 차량이 많기는 하지만 브라질에서 에탄올 차량은 매우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향후 플렉스 차량이 대세를 이루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브라질은 2003년 법으로 가솔린에 바이오에탄올 23%를 섞도록 했다. 바이오에탄올 세계 수출 1위 국가인 브라질은 2011년까지 사탕수수 생산능력 확충에 62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지난 4월말에는 에탄올 수출량을 51만t(4억9000만 달러)으로 늘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108.1%)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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