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 자연의 권리소송에 대하여

2004.06.23 | 미분류

얼마전 고향인 지리산 자락 생초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생초는 외가가 있는 곳이어서 어린시절 그곳에 가면 맨 먼저 하는 일은 냇가에 내려가 물장구를 치고 피라미를 잡던 일이었다. 가랑이 사이로 송사리며 피라미들이 떼 지어 다녀 고무신 한 짝으로 넉넉히 피라미를 낚아 올렸고 그 피라미들은 저녁 반찬으로 밥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20년 만에 내려선 냇가에는 검은 물이 잔뜩 거품을 물고 흐르고 있었고 강바닥은 방둑을 쌓기 위해 파헤쳐져 있어 추억으로 내려섰던 마음은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가슴에 아득한 것이 밀려왔고 달아나고 싶었고 울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천성산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 묻곤 한다. 그것은 지리산 자락의 냇가에 내려서 일어난 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은 추억 때문이 아니라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 때문이었다. 높은 산 위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면 뿌연 연기 슬픈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거품을 물고 썩어 있는 시커먼 강바닥과 다르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누군가 “저것을 공기라고 마시고 살아가는가”고 푸념한다.

개구리가 울어주지 않는 봄, 새 울음소리가 사라진 숲, 나비나 벼메뚜기 한 마리 볼 수 없는 가을 들길, 토끼의 발자국조차 만나기 어려운 눈 산을 타면서 지금 나는 어디를 가고 있는가하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자신을 질문에 던져넣지 말기”라고 슬그머니 회피하여 왔던 많은 순간의 질책들이 나를 천성산 문제로 향하게 하였다. 손톱으로 튕기면 쨍하고 금이 갈 것 같다던 맑은 하늘과 별이 총총하던 은하수 길이 머리 위에서 사라진 후……..  
밤하늘의 아름다움보다는 밤거리의 현란함에 길들여지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안타까움을 나는 천성산을 문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 파괴되고 있는 우리 국토의 실상을 한번 들여다 보자.

함부로 터널은 뚫고 길을 낸 뒤 산은 물길을 잃고 계곡은 물을 깊이 간직하지 못하여  규모가 작은 하천은 대부분 건천화 되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산간 지류가 마름으로 해서 강은 자체적인 정화의 능력을 잃어버려 썩어가고 있다.

바다 역시 제방과 방조제를 쌓은 뒤 자체 정화의 능력을 잃고 썩어가고 있으며 이제 대부분의 산과 강과 바다는 다양한 생명들을 기를 수가 없게 되었다. 누군가 인간이 있는 세상이 인간이 없는 세상보다 더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는 모든 땅은 병들어 가고 수많은 생명들이 인간의 간섭으로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 지구상에 하루의 한 종의 생물이 멸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맨 마지막에 남은 종이 인간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멀지 않은 시간에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경고를 내릴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알지 못함이 바로 이대로 더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경고임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풀이나 풀벌레, 도롱뇽의 이야기는 감성적이며 논리적이지 못하고 반사회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주의 연관과 연기를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유정 무정이 모두 진화엄이라 말씀하셨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동체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에서 불살생의 계율을 제정하셨다. 만일 불교가 小利와 小我에 국집하여 제1의 계율인 생명의 문제의 접근을 포기한다면 우리 마음밭에 영원히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며 스스로 불종자라 이르지 못할 것이며 대승을 논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10월 15일, 천성산을 지키기 위한 법률적 대응의 방법으로 천성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인 꼬리치레도룡뇽을 원고로 「자연의 권리」소송을 법원에 제기하였다.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양서류의 인간에 대한 권리요구”라는 점과 “건국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고 하는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도롱뇽이 막아서고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적지 않은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도롱뇽 소송을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 아니며, 이제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져 갈지도 모를 작은 생명의 외침을 통해 그동안 자연과 생명에 대한 배려없이 극단까지 와버린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돌이켜보고 인간중심으로 기록되었던 무뢰한 지구의 역사를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조화로운 세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작은 단초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도롱뇽 소송의 변론을 맡고 계신 이동준 변호사님은 말씀하신다.
“도롱뇽 소송은 이 시대가 안아야 할 새로운 법의 창조”라고. 천성산의 아픔이 결코 천성산만의 아픔이 아니며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의 신음소리이기 때문이다.

– 지율 합장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