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다섯째마디-시간, 기억, 산줄기 그 흐름에 대하여

2004.11.02 | 미분류

한북정맥 탐사는 이번으로 다섯 번째다. 지난번 탐사 때와는 확연히 다른 날씨의 변화를 느끼면서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기억 또한 일정부분은 잊혀지고 일정부분 보태지며 흘러간다. 산줄기도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산위에서 보면 그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오듯이 흐르면서 비워내고 또 담아내면서 그렇게 흐른다.



이번 탐사 구간은 339지방도에서 노채고개, 원통산, 운악산을 거쳐 47국도까지의 흐름이다.
토요일 저녁 우리는 함께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를 하고, 별자리 선생님께 별자리와 하늘의 움직임을 배우면서 시간을 공유한다. 함께한다는 것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기에…서로가 느끼는 기억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경험을 그 시간에 공유하게 되었다.

산을 함께 걸으면서 여러 종류의 나무가 함께 공존하는 산의 단풍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종류의 나무만 존재하면 다양한 색이나 아름다움을 낼 수 없다는…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나와 다르면 벌써 눈빛이 달라진다.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나는 이 단어가 참 맘에 든다. 다른 사람의 다름을 취향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 그것이 내가 이 모든 경험들로부터 얻고 싶은 자산이다.

다양성…우리의 눈으로 느껴지는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에….그리고 다양한 나무가 공존하는 곳의 단풍이 아름다운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이 하모니를 이루고 존중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나 진리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사회에 훌륭한 소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모습을 가진 다수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믿음…

기억 또한 지나고 보면 좋은기억, 나쁜 기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간다. 나를 이어온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나다. 내게 행이라 느껴졌든 불행이라 느껴졌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 때문에 집착하지 않음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성장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것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산이 이미 그렇게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운악산을 가기 전 암릉구간에서 10여미터 하강하는 것이 있었다. 나를 뺀 나머지 팀원들은 이미 바위에 대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적으며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2톤까지의 무게는 끄덕 없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 성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닌데도 몸이 자일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완전한 감각에 의존한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내 감각이 자꾸 오판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성이다. 또한 이글을 통해 내가 심리적으로 느끼기에는 더 많이 길었던 하강 구간을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산줄기 팀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내가 믿지 못해 발을 못 디딘 것이 아니라는 변명과 함께…

운악산은 개인적으로 몇 번의 오를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사정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인연이 닿지 않던 곳이다. 그러나 그 바위의 웅장함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생각보다 운악산의 주 등산로는 많이 피폐해 있었다. 산을 오르면서 갖고 싶은 평화로움 대신 정상에서는 많은 행락객들과 그 속에서 날리는 먼지만큼 메마른 산이었다. 산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도구적 사고에서 벗어나 산이 우리와 생과 사를 나누고 공존하는 존재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리라 보여진다. 이 한북정맥 탐사가 그 물꼬를 트는 작은 발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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