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물범 조사를 다녀와서 – 생명과 평화의 바다에서 보낸 2박3일

2004.11.06 | 미분류

일반적으로 물범은, 다른 야생동물에 비해 관심 밖의 문제였다. 삼면이 바다와 맞닿은 반도의 땅에서, 해양포유류가 갖는 이 상대적인 무관심에 대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움직임이 근래에 들어 대두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Global GreenGrants Fund(GGF)로부터 소정의 지원을 받아, 쉽게 실행할 수 없었던 백령도 물범 현장조사는 조금씩 구체화 되어갔다.

겨울이 오면 중국의 발해만으로 이동하여 분만과 번식과정을 거치고 돌아오는 백령도 물범의 특성상, 시기적으로 이 즈음에 가지 못한다면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이번 조사를 고민했던 동료들의 마음가짐은 평소와 달랐다. 그러나, 첫날부터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서해의 격한 해풍이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거대한 배가 부두에 묶여 여지없는 출항불가를 알려올 때, 자연… 바다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만약 내일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쩌면 이번 조사는 불가!라는 최악의 상황이 예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드디어 바다가 허락을 알려왔을 때, 드디어 가는 것이구나하며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인천연안부두로부터 4시간여의 바다를 항해한 뒤, 백령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용기포항에 도착하여 일행은 곧 두무진으로 향했다.
물범관찰을 위한 최적의 시간은 최대간조시인데, 정오와 오후 1시 사이의 시간을 놓친 터였다. 다행히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선주(船主)의 빠른 안내로 두무진에서 가까운 물범바위를 돌아보기로 하고 배에 올랐다. 그러나 두무진을 떠난 어선이 잠시 후 물범바위에 도착했을 때, 물범바위는 이미 물 속에 잠겨 있었고, 우리가 목격한 물범은 고작 여섯 마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녀석들은 단지 물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는, 쑤욱 바다 속으로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다. 첫날은 이렇게 주변의 서식처와 생태환경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배를 돌려야 했다.



백령도에 서식하는 물범은 점박이물범(spotted seal)으로, 한국전쟁 당시에도 목격되었다는 증언을 취재 결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약 350여 개체로 추정이 되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물범들이 살았다고 한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물범이 확인된 것은 1973년 무렵이고, 이후 십년이 지난 뒤 천연기념물 331호로 지정되었다. 그 비공식과 공식의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라, 우리는 추측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부터 서둘러 바다에 나간 우리의 계획은 물범바위에 오른 녀석들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두무진 코끼리바위 근처, 하늬바닷가 앞의 물범바위,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의 연봉바위를 모두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먼저 두무진 부근을 다시 돌았는데, 어제와는 달리 물범들은, 근처에서 조업중인 멸치잡이 어선을 따라 이동하며 먹이를 쫒고 있었다. 어선이 쳐놓은 그물을 따라 여섯 마리의 물범이 유영과 잠수를 반복하는 모습이었는데, 통발 속에 갇힌 물고기를 꺼내먹기 위해 통발을 찟는 경우도 있고,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동안 녀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지켜보다가, 우리를 태운 선주 아저씨의 표정을 보니, 어민의 입장에서 본 물범은, 자신들의 생계를 방해하는 단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는, 그런 것이었다.

일행은 두무진 물범바위를 거쳐 다음 예정지인 하늬바닷가의 물범바위(용기포구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약 3Km 떨어진 곳)로 이동하였다. 바닷물이 빠지고 야트막한 모양의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물범들은 그 바위에 올라 휴식을 취한다. 멀리서 그 모습을 확인한 우리는, 어선의 속력을 늦추며 조금씩 다가갔다. 행여 녀석들의 휴식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우리의 모습에 놀라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며… 녀석들이 구체적으로 보일 때까지 좀더 가까이 다가가, 어선은 엔진을 멈춘다. 그렇게 불과 20여 미터 앞에 녀석들이 있다.  바위 위에 누워있는 한 무리의 녀석들… 손을 대면 미끄러질 듯 하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질거리는 피부, 얼룩달룩한 점박이 문양의 회색빛 생명체… 백령도 물범의 온전한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녀석들의 온전한 전체를 마주하는 순간, 호흡이 가늘게 흔들렸다. 물살에 배가 출렁거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참 동안 일행들은 물범의 외형과 개체수, 행동의 특성, 주변환경 등을 체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녀석들은 알고 있을까? 멀리서 배가 다가올 때의 엔진소리 탓인지, 어선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바위를 내려와 재빨리 물속으로 몸을 숨기는 녀석, 인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고 배짱 좋게 일광욕을 즐기는 녀석, 눈치를 보듯, 사람과 배를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녀석들을 보면, 이들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었다.

바다는 평화롭고 고요했다. 엔진을 끈 채 선상에서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그들은 평온해 보였다. 검고 동그란 눈동자를 말똥거리거나, 옆으로 누운듯 한 자세로 머리만 빼꼼히 쳐들어 사람을 보거나, 바위를 차지하기 위해 두 녀석이 서로 다투는 듯한 소리를 듣거나…
다른 서식지인 연봉바위의 물범들 또한 같은 모습이었다. 대청도와 백령도 사이라서 그런지, 그나마 사람들의 영향을 덜 받아서 그런지, 연봉바위의 녀석들은 다른 곳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물범들의 평온한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백령도 점박이 물범은 개체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결과, 현재 백령도 주변 세 곳에 서식하는 물범의 개체수는 약 350마리 정도다. 예전에 비해 절반 수준이라는 어민들의 증언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그런 징후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전복이나 미역, 홍합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하늬바닷가 앞의 물범바위도 어민들이 점령하고 있다.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하지만, 물범들은 자신의 터전을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상황이다. 또한 두무진 근처에는, 여행객을 태운 유람선이 ‘물범관광’을 목적으로 하루에도 수차례씩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물범바위 근처를 너무 근접해서 즐기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물범은, 관광자원으로서의 대상일 뿐, 생명체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는 듯 보였다. 물범을 위협하는 것은 이곳에서 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겨울철 중국의 발해만으로 이동하는 물범의 특성상, 그곳의 중국 어선들이 녀석들을 밀렵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호랑이와 늑대가 사라진 오늘의 숲이 된 것처럼, 그래서 이제 저 물범들도, 저 생명들도 멀지 않은 시간에 다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충고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중요한 사실은, 물범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이다. 백령면사무소 관리팀에서는 물범에 대한 최소한의 실태파악이나 천연기념물에 대한 어떠한 보호조치도 없었다. 또한 용기포항의 관광안내판에 ‘바다사자’로 오기된 사실도 모르는 상태였으며, 그 밖에 어민들이나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결과적으로 물범 따위에 관심없다는 것이 현재의 상태다. 먹고 사는 문제, 법보다는 밥의 문제가 더 급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어민들의 생계활동과 물범의 생태보전이라는 가치의 충돌을, 우리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또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사는 약 4,300명의 주민과 그 만큼의 군인들이 있는 곳. 곳곳이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함께 갖는, 잠재적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 곳. 그런 백령의 바다가 왜 평화롭게 느껴졌을까… 물범들의 평온함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거나 혹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생명들… 그런 것들이 함께 하기 때문은 아닐까…

조사를 하며 돌아본 백령도의 현재는 심각했다. 용기포항으로 모자라, 새로운 항을 만들기 위해 천연의 갯벌을 버젓이 죽이는가 하면, 섬 곳곳의 땅을 파헤치는 공사현장을 보며, 끝없는 개발이 가져오는 문명의 편리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만 만들 것이라 믿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용기포항을 떠나는 만다린 호에서 바라본 백령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리곤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혼곤한 잠을 깨우는 해풍의 숨결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 생명이 일렁이는 저 푸른 바다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박종석 (야생동물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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